장흥군에는 호남5대 명산 천관산(723m) 등 산세가 뛰어난 산이 많다. 이중에 제일 높은 제암산(807m)은 장동면·안양면에 걸쳐 있으면서 보성군 웅치면과 경계되고 있다. 정상에 수십 명이 한자리에 앉을 수 있는 바위를 향하여 주변의 여러 바위와 봉우리들이 임금에게 공손히 절을 하고 있는 형상이어서 임금바위, 즉 제암(帝岩)이라고 하며 산 이름을 제암산이라 부른다. 곰재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연결되어 있는 산은 안양면의 진산 사자산(666m)이다. 임금 뒤 자리에 한일(一)자 형태로 병풍이
●과업의 목적 및 범위▶문화예술의 개발문화 창조산업이 경쟁력있는 지역경제 발전의 중요한 화두가 되는 가운데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앙트레프레너(Entrepreneur)라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경제성장 효모의 등장으로 세계의 도시들은 도시재생프로젝트로 지역 발전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단순한 외형적 개선과 정량적 발전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을 접목시킨 다차원적 가치추구를 지역발전의 골(Gole)로 접근시키고 있는 것이다. 본 요약서는 전라남도 장흥 지역의 특화 브랜드가 성취되는 문화 예술 클러스트를 조성하고 지
장흥군 안양면의 진산(鎭山)은 사자산(獅子山 666m)이다. 이 산의 중앙 가장 높은 상봉에서 남으로 뻗어 내린 낙맥에는 월암산(일명 달바우산 399m)과 주산(舟山 241m)이 있다. 이중 주산은 당암리와 운흥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풍수설에서는 바다로 나가는 배 형국이라 하여 지역민들은 배산이라 부른다. 주변에 관련된 지명으로는 배다리의 주교(舟橋)마을과 배 돛에 해당되는 청송(靑松)마을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사자산의 지류(支流) 홍거천 하류에 위치한 모령리 목단마을은 득량만 바다의 주요 뱃길 포구이었다. 1926년(丙寅) 일
한국고용정보원이 국가통계포털의 주민등록 인구를 파악하여 2013-2018 전국 시군구와 읍면동의 도시 소멸 위험지수를 계산한 결과에 의하면 장흥은 소멸위험지수 0.5 미만으로 나타났다. 30년 후 장흥이 사라질 수 있다는 조사에도 받아드리는 군민들은 무덤덤한 표정이다. 하기야 모든 농촌지역의 소멸현상을 막아낼 힘이 우리들에게는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일본도 설마설마 했는데 전체 도시 절반이 소멸중이란다.인구감소는 소비감소가 뒤따라 세수가 줄고 경쟁력 약화에 의한 양질의 서비스 혜택이 줄어들며, 부동산 가치하락으로 빈집은 늘어나고 학
장흥군 용산면 모산리 12번지(용안로 307-16)에는 용강사(龍岡祠)가 위치한다. 본 사우의 성관(姓貫)은 영광金氏이다. 시조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의 3세손으로 영광군(靈光君)에 훈봉된 문안(文安) 김심언(?~1018)이다. 고려 1014년(현종5) 내사시랑평장사와 서경유수를 역임하였다. 장흥파 1세조는 고려말 공조전서인 문경(文敬) 김태용이다. 용강사는 1882년(壬午 고종20) 창건하였다. 향중 유림의 제발에 의해서 난옹(懶翁) 김광범, 우수(愚?) 김상범, 뇌수당(牢垂堂) 김
본 사우는 관산읍 죽교리 418번지에 위치한다. 원래 1688년(戊辰) 지역유림 100명의 발의로 창건되었다. 창건 당시에는 임진왜란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달량진사변(達梁津事變) 때 순절한 장흥부사 한 온(청주人, 1511~1555)과 임진왜란 때 피난 간 선조를 90일간 걸어서 의주(義州)로 찾아가 배알한 호성공신 청계(聽溪) 위덕의 선생을 배향한 사우이었다. 당시에는 솔치재 아래에 세웠고 명칭도 충렬사였다. 1689(己巳)년 후손들과 장흥의 유림들이 장흥읍 충렬리에 충렬사를 건립한 후 한
장흥군 안양면의 진산(鎭山) 사자산(獅子山 666m) 아래에는 수원백씨의 집성촌 기산리가 위치한다.인근의 동계마을은 행정구역상 기산마을 동계에 속해 있었으나 1980년 동계마을로 새롭게 마을명을 구성하였다. 풍수설에 의하면 마을은 챙이(키) 형국이라서 챙이 끝부분은 터가 좋지 못하다 하여 챙이 안쪽으로 들어와 마을이 조성되어 있어 이를 뒷받침 한다. 조선조가 건국되면서 불복신(不服臣) 마을로 폐촌되었다. 그 후 중엽 선조 때 기산 팔문장의 한분인 백광성(白光城)이 장흥의 제일(第一) 기산마을 동
안양면 수양리 앞에는 장흥~회진 간 23번 국도(장흥대로)가 있다. 마을 뒤에는 억불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지류 수대천이 사자산의 지류 도곡천과 합류하여 홍거천으로 이어져 주변 평야를 관수한다. 전면에는 안양면 소재지와 드넓은 운흥들판이 펼쳐져 있다. 수양리는 양옆 산 형세와 마을 앞 도로가 활모양의 궁형(弓形)으로 수서(水西)마을과 양사(養士)마을을 합한 첫 자를 따서 붙여진 지명이다.수양리 96-2번지(용안로 709-28) 양사마을 언덕바지에는 김해김씨 사현사(四賢祠)가 위치한다.
안양면의 진산 사자산(666m)의 동쪽 낙맥 중에 하나인 칼바위산(劍岩山 500m) 아래에는 선인봉(220m)을 따라 옥녀봉(160m)이 형성되어 있다. 옥녀봉 요치(蓼峙) 아래에 세거한 보성宣氏는 1530년(?) 7세 양진당(養眞堂) 선대륜(宣大倫 1504~1568)이 보성에서 안양면 동촌마을로 입촌하여 장흥파 파조(派祖)가 된다. 배(配) 광산김씨 사이에서 아들 세분을 두었다. 장자는 선봉명(宣鳳鳴 1532~1593)으로 후손들은 안양면 고당마을 출신이다. 차자는 선봉문(宣鳳聞 1537~16
신도비(神道碑)란 종2품 이상의 품계 또는 관직에 해당된 벼슬아치의 평생 사적을 기록하여 무덤 앞이나 무덤으로 가는 길목 큰길가에 세운 비석을 말한다. 임진왜란 때 호성ㆍ선무원종공신으로 호조판서에 추증된 위덕화의 신도비는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650-3번지 방촌유물전시관 앞에 위치한다.비신석 상단 두전(頭篆)은 扈聖宣武功臣贈資憲大夫戶曹判書魏公神道碑銘이라 새겼다. 전면 양서(陽書)는 扈聖宣武功臣 贈資憲大夫戶曹判書兼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都摠管行通訓大夫軍資監正魏公神道碑銘 ?序라 새겼다.懷州의 魏氏는 대대로 忠義를 崇尙하여 왔는데 宣祖 壬辰倭
栢江 위성록/장흥위씨 씨족문화연구위원 장흥군 안양면 용안로 535-89, 모령리 봉동(鳳洞 샛골)에는 장흥고씨 소유 봉강사(鳳岡祠)가 위치한다. 이곳은 문열공 건재(健齋) 김천일(金千鎰), 충의공 일휴당(日休堂) 최경회(崔慶會), 효열공 준봉(?峰) 고종후(高從厚), 호조참의공 기봉(箕峰) 고수위(高守緯), 곡성현감공 문성(文成) 고언장(高彦章)등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954년(甲午) 설단(設壇)하고 陰 9월 15일 지역 유림의 주관으로 향사해왔다. 이후 1979년(己未) 후손들의 헌성으로 사당을 신축하여 위패를 봉안하여 오늘에
신도비(神道碑)란 가선대부(嘉善大夫)이상의 종이품 품계 또는 참판(參判)·관찰사(觀察使)·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등 관직이 종이품 이상에 해당된 벼슬아치의 평생 사적을 기록하여 무덤의 길목 큰길가에 세운 비석을 말한다. 유교사상을 중요시한 조선시대에서는 가문의 영예로움을 의미하는 상징물로 인식되기도 했다.현재 장흥군내에는 1)장흥위씨/충렬공 위계정(1038~1107)/고려 수태보 문하시중/2018년 장흥읍 평화리 회주사 앞 2)청주김씨/고려 참찬 김린(1338~1410)/부산면 호계리 동백정 옆 3)초계변씨/변효경(?~1458)/이
소신공양 [燒身供養]이란?자기의 몸을 불살라 부처 앞에 바치는 일 베트남하면 우리들은 월남 전쟁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여행이란 장소를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꿔 주는 것이다”라는 아나톨 프랑스의 말처럼 베트남의 다낭과 후해 등을 여행하면서 월남전쟁의 참혹함을 느낄 수 있었으며 지금도 고엽제의 고통속에서 신음하는 환자들을 보게 되어 가슴 아팠다. 베트남에선 오랜 기간 전쟁이 벌어졌다. 2차대전 당시에는 일본과 싸웠고, 그 이후에는 베트남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프랑스와 무려 9년간이나 싸웠다. 프랑스를
관서별곡 저자 기봉 백광홍 선생의 친동생인 옥봉 백광훈에 대한 역사적 조명을 우리군은 소홀히 하고 있다. 어쩌면 형의 ‘관서별곡’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옥봉의 천재적인 시 문학을 덮었는지? 아니면 선생의 묘소와 유물관이 이웃 해남에 소재하여 해남의 인물로 착각한 것은 아닌지? 선생은 안양면 기산리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을 해남군 옥천면 송산리 외가에서 생활했다.옥봉 백광훈 선생의 영정 봉안식 및 묘정비ㆍ행장비 제막식이 관내 기관사회단체장 및 수원백씨 전남종친회장과 제자손이 참석한 가운데 해남 향교 주관으로 지난 3월16일 해남군 옥천면
“구제역ㆍ관ㆍ군 초동대응 협조, 역대 가장 짧은 기간에 마무리 보람” 한미 FTA, 중국 무역 협상 등 농산물 수출 시장이 세계화 경제 논리에 밀려 수입 품목이 늘어나는 등 위기의 일로를 걷고 있다.국내여건은 쌀 소비 시장 축소, 1인 혼밥족 증가 등으로 소비시장은 점점 위축되는 가운데 정부가 농촌경제 활성화를 위해 청년농업인육성 및 농촌경제 지원 정책을 내놓고 있어 향후 1차 산업의 비전과 정부 정책을 들어본다. < 편집자주> ●반갑습니다. 장관님, 올해 초구제역 확산 방지에 구슬땀을 흘리셨는데, 예년에 비해 확산을 빨리 막은 것
●장흥 전국 5위 사육 두수 장흥은 대한민국에서 한우 사육을 위한 최고의 기반과 환경을 갖고 있지만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발전하기에는 약점도 적지 않은 곳이다.이에 오늘의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발전을 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현재 국내의 한우 사육 두수는 300만두를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그중 전남은 48만 두로 경북의 70만두에 이어 전국 2위의 사육 숫자를 갖고 있다.장흥은 전남에서 가장 많은 한우 사육두수를 보유하고 있다.약 5만두로 전남의 10% 의 한우를 장흥에서 사육하고 있으며 전국 시군 별 순위
도시와 다르게 문화혜택을 누릴 기회가 좁은 지역사회에서 "장흥신문 창사27주년 기념식 축하공연"을 한다는 광고를 보고 발길이 공연장으로 향했다지역신문사가 재정도 힘들텐데 독자와 군민을 위하여 창사 기념식과 축하 공연까지... 걱정반 우려반으로 갔는데 기대 이상의 감동이였다.지역 출신 가수님들 위주의 초대공연이였고 요즘 보기드문 장구치며 노래하는 장구의신 이라 불리는 박서진 가수님이불타는 금요일 광란의밤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어 버린 공간속에서 우리 장흥군민들의 모습에는 행복하고 환한 미소가 가득하고 남녀노소 할것 없이 흥겨워 소리
“경제폭락, 안보파탄, 정치실종, 비리은폐 문재인 정부 4대악정 규명할 것”일정금액 이상 지출 시 반드시 국회동의 받도록 당론으로 남북협력기금법 개정지역언론 제 역할 뒷받침 위해 정부광고법 개정 검토, 지역민에 필수적 공고 지역신문에 게재 전국 시군구 단위 대표적인 지역주간신문 165개사의 연합체인 사단법인 한국지역신문협회(중앙회장 정태영)에서는 2월 22일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만나 지역언론 활성화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지난해 12월 압도적인 표차로 원내대표에 당선된 나경원 국회의원은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간사를 역
‘해외역사문화탐방’ 이라는 목적아래 나는 중국으로 역사탐방을 갈 수 있게 된 기회를 얻게 되었다. 첫 해외여행이라는 점에서 나에게 이번 기회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 되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출발 하루 전날 나는 설렘과 기대, 한편으로는 걱정을 품은 채 여행사에서 나누어 주신 체크리스트를 보며 짐을 하나하나 챙겨나갔다. 마지막 까지 잊은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짐은 무겁게 챙겼지만 가벼운 발걸음으로 버스를 타기 위해 장흥으로 향했다.1월 11일/ 저녁 12시 30분, 장흥군민회관에 도착했다. 일찍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학교의 친
2019년 1월 10일, 평소라면 자고 있었을 시간이었겠지만 어두운 하늘에 오로지 달빛만을 의존해 집을 나서는 게 나는 새롭고도 설레었다. 뭐, 핸드폰의 손전등 기능을 사용하려면 사용할 수 있었겠지만 그 날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중국에 가기로 한 첫날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어서 일까. 자정이 지나서 다음날인 11일 새벽 1시쯤, 나는 출발장소인 군민회관 앞에서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버스에 올라탔다.버스가 장흥을 벗어나자 나는 이제야 진정한 여행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하며 창밖을 보는 것을 관두고 귓가에 울리는 노랫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