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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군 모산리 영광김씨(金氏) 용강사(龍岡祠)문화탐방/栢江 위성록 이야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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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02  16: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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栢江 위성록/장흥위씨 씨족문화연구위원

장흥군 용산면 모산리 12번지(용안로 307-16)에는 용강사(龍岡祠)가 위치한다. 본 사우의 성관(姓貫)은 영광金氏이다. 시조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의 3세손으로 영광군(靈光君)에 훈봉된 문안(文安) 김심언(?~1018)이다. 고려 1014년(현종5) 내사시랑평장사와 서경유수를 역임하였다. 장흥파 1세조는 고려말 공조전서인 문경(文敬) 김태용이다.

   
 

용강사는 1882년(壬午 고종20) 창건하였다. 향중 유림의 제발에 의해서 난옹(懶翁) 김광범, 우수(愚?) 김상범, 뇌수당(牢垂堂) 김성범 등 효자 3형제와 김광범의 손자 죽옹(竹翁) 김정서를 배향하였다.

   
 

이후 1936년(丙子) 閏 3월 25일 현재의 건물로 중건하였다. 1961년(辛丑) 학남(學南) 김우를 추배하여 5位의 위폐를 봉안하고 있다. 1980년(庚申) 사당 기와 번와, 담장 시설 등 중수하였다. 용강사의 전체 배치는 전학후묘(前學後廟)로 후면의 높은 단에 사당을 배치하고 전면 아랫단에는 강당 월산재가 위치한다.

내삼문인 백원문(百源門)을 통하여 사당에 입실한다. 실 내에 모셔져 있는

   
 

난옹(懶翁) 김광범(1571~1647)선생,
우수(愚?) 김상범(1583~1643)선생,
뇌수당(牢睡堂) 김성범(1588~1666)선생 3位 효자 형제는 중시조 문경의 9세손으로 어려서부터 천성이 지효하고 뛰어난 재기가 있어 학문에 열중하였으며, 장성하여서는 충성심도 남달랐다. 8세 때 양친이 중병에 들자 단지주혈(斷指注血)하고 효심이 지극정성, 신인(神人)을 만나 선약을 구하여 드리고 상분(嘗糞)하는 등 지극한 간병을 다하였다. 상(喪)을 당하면 3년 동안 시묘의 정성을 다하였다. 1624년(인조2) 이 괄의 난 때에는 병곡을 모으고 의병을 일의켜 충주까지 출전 평정케 되니 1661년(현종2) 3형제 모두 동몽교관 조봉대부에 증직되었다.
죽옹(竹翁) 김정서(1651~1732)선생은 태어난지 이듬해 부친을 여의고 조부 슬하에서 모친 봉양에 효성을 다하여 승정원 좌승지에 증직되었다.
학남(鶴南) 김우(1833~1910)선생은 일찍 학문에 명성이 높아 남주고사(南州高士)라 일컬어지고 면암 최익현과 도의지교를 맺고 학문과 충절 유풍진작에 힘쓰다가 1910년(庚戌) 국치(國恥)의 소식을 듣고 식음을 전폐 10여일만에 졸하였다. 
5분의 학덕을 추모키 위해 매년 음 9월 상정일에 지역 유림에서 제향을 주관 봉행한다. 사우 제위답은 12두락이다.

월산재(月山재)는 용강사의 강당으로 앞의 산이 반월형 같다하여 山은 월산이요 川은 월내천이라 부르는데서 연유하여 월산재(月山齋), 월내서재 또는 낙영재(樂英齋)라고도 한다.

   
 

경관이 수려한 이곳은 조선조 순조 때 任氏, 崔氏가 살던 곳이었으나, 1824년(甲申) 김몽흠, 김상철 주도로 매입 후 서재를 창건하고 문중 및 향중 자제를 강학하여 영재가 배출되었다.
마당 중앙에는 조그마한 정원이 있다. 전면에 6칸의 月山齋가 위치한다.
중앙 좌측 처마에는 樂英齋, 우측 처마에 月山齋 액호 편액이 걸려 있다.

   
 

우람한 큰 현판으로 “忠孝節義”란 글자가 크게 걸려 있어 교육관을 짐작하고도 남을 수 있다. 좌측에 창고, 우측에 관리사옥이 위치한다. 
 경내에는 시운 편액(扁額)글 6점과 주련(柱聯) 10점이 소장되어 있다.

   
 

1)낙영재기는 崇禎紀元後四甲午(1834년) 10월에 후손 김서국(1804~1859)이 근기(謹記)하다. 
2)낙영재기는 1885년(乙酉) 춘분에 지주천객 중암(重菴) 김평묵(청풍人 1819~1891)이 기(記)하다.
3)용강팔영은 丁巳 仲春(1857년 2월)에 후손 돈호산인(김서국 1804~1859)이 근고(謹稿)하다.
4)용강구곡운은 永曆二百三十九年乙酉春三月(1885년 3월)에 후손 학남거사 김 우(1833~1910)가 썼다.
 5)낙영재중수상량문은 永曆二百四十四年庚寅復月一陽(1890년 11월 1일) 후손 김 우(1833~1910)가 근서(謹書)하다.
6) 낙영재중수기는 崇禎五辛卯維夏(1891년 4월) 후손 김달현(1837~1905)이 근기(謹記)하다.

월산재 뒤  좌측에 충효지풍 산고수장(忠孝之風 山高水長)이라 표기된 석비가 세워져 있다. 이는 忠孝 집안과 君子나 仁者의 德이 후세에 길이길이 전함을 말한다. 후손의 강학 학훈을 뜻하여 숙연함이 베어난다.

   
 

사당 입구 중앙에는 崇禎五甲申四月 崇禎五甲申(1884년 4월) 김우가 세운 월산정사(月山精舍) 표석이 위치한다.
우측에는 1897년(丁亥) 김기현이 서재를 하고 있을 때 장흥부사 송기로(은진人 1830~1898)가 수회 내방하여 격려와 산수를 음미하면서 우정의 표석을 세우고 내방 기념 흔적을 남겼다.
 

   
 

외문은 부강문(扶綱門)이다. 월산재는 용강사가 건립된 후로 주로 후손들의 강학과 문중 행사 장소로 이용되었다. 1891년(辛卯)과 1936년(丙子) 중수하였다.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 문화재 제 73호로 지정되었다. 1995년(乙亥) 훼손되어가는 유적을 복원 보존코자 정부지원과 문원들의 헌성으로 중수하여 오늘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부강문 앞 월내 다리를 건너면 좌측 주차장 나무 아래에는 愛國之士 金斗煥 先生 功德碑가 위치한다.
용연(龍淵) 김두환(1909~1956) 선생은 용산면 원등마을 태생이다. 일제강점기 때 민초들을 대상으로 야학 등 교육을 실시하고 1933년 전남농민운동협의회를 조직하여 농촌 계몽 활동과 독립만세 사건을 주동하여 3년 옥고를 치렀다. 또한 중국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자금 지원 등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52년 전라남도 초대 의회 의원에 당선되어 지역발전에 공헌하였다. 이러한 선생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2006년 7월 무여(無餘) 위선환(1940년생, 관산읍 옥동마을 태생) 시인이 비문을 짓고, 아들 재윤 등 자손들이 삼가 세웠다.

   
 

찾아가는 길은 舊)계산초등학교에서 용산면 소재지 방향으로 600여미터 가다보면 도로가 우측 숲속 개천 앞에 안내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용강사는 사우 1동, 내삼문 1동, 강당 1동, 관리사옥 1동, 창고 1동, 외문 1동, 시석 1기, 표석 2기, 공덕비 1기, 연혁 표석 2기, 안내 표석 1기 등으로 조성되어 영광김씨 우수공종중 소유로 관리되고 있다.

후손들은 주로 용산면 원등마을, 계산리, 모산리 태생이다. 이중 현대의 대표적 인물은 김태경(한학자, 장흥향교 전교), 김민채(경희대 경제학박사), 김녹촌(초등학교장, 아동문학가), 김평환(장흥군 노인회장), 김용재(전남대 농과 교수), 김기홍(향토사 사료조사위원, 장흥문화원장) 김민환(고려대 교수, 신문방송학 박사), 김재욱(정형외과 병원장), 김평전(해양수산부 목포지방해양수산청장), 김영훈(예비역 준장), 김범환(YTN 호남 취재본부장) 등 이다.

본 사우의 앞 물줄기는 장흥읍의 진산(鎭山) 억불산(518m)에서 발원하여 포곡마을을 경유하고 용강사 앞 개천(월내)을 거쳐 남상천에 합류, 득량만 바다로 유입되고 있다. 주변 노송, 동백, 대나무, 배롱나무 등 자연 경관이 뛰어나고 사우와 조화되어 특별한 운치를 자아내고 있어 찾는 이들의 발길을 머무르게 한다.

자문 : 우수공 13세손 김기홍(1939년생, 제 11대 장흥문화원장, 부산면 내안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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