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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군(貞海君) 백수장(白壽長)의 묘역, 묘각, 신도비문화탐방/栢江 위성록 이야기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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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08  17: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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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栢江 위성록/장흥위씨 씨족문화연구위원

장흥군 안양면의 진산(鎭山)은 사자산(獅子山 666m)이다. 이 산의 중앙 가장 높은 상봉에서 남으로 뻗어 내린 낙맥에는 월암산(일명 달바우산 399m)과 주산(舟山 241m)이 있다. 이중 주산은 당암리와 운흥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풍수설에서는 바다로 나가는 배 형국이라 하여 지역민들은 배산이라 부른다. 주변에 관련된 지명으로는 배다리의 주교(舟橋)마을과 배 돛에 해당되는 청송(靑松)마을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사자산의 지류(支流) 홍거천 하류에 위치한 모령리 목단마을은 득량만 바다의 주요 뱃길 포구이었다. 1926년(丙寅) 일제강점기 때 토사가 쌓여 일대를 간척사업을 추진하여 비옥한 농토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어 풍수설을 뒷받침 하고 있다. 안양면 당암리 산 77-1, 고당마을 우측 주산 자락 명당에는 조선 중종 때 공조판서를 지낸 정해군(貞海君) 백수장(白壽長)의 묘역이 위치하고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 백수장(1469~1543년) : 수원人으로 자는 팽조(彭祖)이다. 평택ㆍ연기현감을 지내고 호조판서에 추증된 백맹하(白孟夏)와 配 贈 정부인 공주이씨 아들로 장흥군 안양면 동촌에서 태어났다. 1498년(연산군 4)에 무과 중시(重試)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함경도 영흥판관(永興判官)으로 임명되었다. 1506년(연산군 12) 연산군을 폐위 시키고 동생 진성대군(이역)을 중종으로 즉위시킨 중종반정 때 활약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에 녹훈되고 정해군(貞海君)에 봉해졌다. 1509년(중종 4)에는 전라도 진도(珍島)에서 민란(民亂)이 일어나자 진도군수(珍島郡守)에 제수되어 민란을 안정시키고 질서를 회복시켰다. 이후 훈련원도정(訓練院都正) 등을 거쳐 공조판서(工曹判書)를 지냈다. 만년에 사촌마을 장재도에 백사정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고 傳한다. 배(配) 정부인 광산김씨 사이에서 함평현감(世雄) 등 아들 3人을 두었다. 유품으로 1507년(중종 1) 2월에 중종이 내린 교서 백수장정국공신록훈교서(白壽長靖國功臣錄勳敎書)와 교지 등이 전해지고 있다.
수원백씨의 집성촌 용산면 상금마을 진수재(進修齋) 좌측 에는 公의 별묘(別廟)가 있으며, 기양사(岐陽祠)에 배향되었다.

 

   
 

주산 묘역(墓域)에는 10기의 묘가 있고, 상위에는 정해군의 선친 해성군 백맹하의 묘가 위치하며, 묘역 중간 우측에 정해군 묘가 위치한다.

   
 

묘갈명(墓碣銘) 전서는 工曹判書貞海君白公之墓 貞夫人光山金氏부우라 새겼다.
1946년(甲申) 윤 4월 후손 잠계(潛溪) 백형기(亨璣 1881~1948) 선생 근술(謹述)하다.

묘각(墓閣) 주산재(舟山齋)는 장흥군 안양면 고당길 58-67, 정해군 묘역에서 좌측으로 300여미터 떨어진 산 아래에 위치한다.

   
 

이곳은 4칸 목조 건물로 상량문을 근거로 1938년(戊寅)에 중수함이 추정되며, 다기능 강당이 아닌 순수 묘각 제실이다. 매년 陰 10월 18일 17세 해성군 백맹하, 18세 정해군 백수장, 19세 함평현감 백세웅 3位 제향을 봉행한다.

   
 

제실 내부에 소장되어 있는 주산재상량문(舟山齋上樑文)은 1938년(戊寅) 4월 후손 잠계(潛溪) 백형기(1881~1948)선생 찬(撰)하다.
포하(褒賀 잘함을 축하) 글 현판은 1957년(丁酉) 3월 주산문중(舟山門中)에서 지어 걸었다.
주산제각창건실기(舟山祭閣창建實記)는 1957년(丁酉) 10월 상순 후손 일곡(一谷) 백형택(1878~1962) 근지(謹識)하다.
성금 명단 현판 글은 1976년(丙辰) 7월 후손 설봉(雪峰) 백상순(1933~1982) 근서(謹書)하다.
 처마에 걸려 있는 주산재 액호 편액은 보성군 출신 송곡(松谷) 안규동(죽산人, 1907~1987)이 썼다.
재원(財源)은 주산 임야 50정, 답(畓) 15두락, 전(田) 20두락이다. 이는 중종 임금이 정해군을 정국공신 3등에 훈록하면서 하사(下賜)한 사패지(賜牌地)로 현재까지 후손에게 전해지고 있으며, 수원백씨 주산문중 소유로 관리되고 있다.

정해군 묘역에서 우측으로 200여미터 떨어진 안양면 고당길 58-154, 묘각 원모재(遠慕齋)가 위치한다.

   
 

이곳은 4칸 목조 건물로 1969년(己酉) 3월 용산면 금곡리 영광김씨 금곡파종중 종가의 서실 금화재(金華齋) 건물을 뜯어 옮겨지었다. 지역민들과 후손들은 아래 배산 제각이라 부른다. 매년 陰 10월 19일 20세 어모도사공 백 형(白珩, 1514~1595) 이하 선조 4위 제향을 봉행한다.

   
 

제실 내에 소장되어 있는 원모재상량문(遠慕齋上樑文)은 1970년(庚戌)가을 후손 만암(晩菴) 백형주(1893~1977) 근지(謹誌)하다.
원모재중건기(遠慕齋重建記)는 1970년(庚戌) 가을 후손 오천(梧川) 백종기(1910~1978) 근서(謹書)하다.
묘각 건립시 분담미(分擔米), 의연금(義捐金) 내역 현판 글은 1970년(庚戌) 봄에 썼다.
처마에 걸려 있는 원모재 액호 편액은 청파(靑坡) 전형윤(~?)이 썼다.

재원(財源)은 답(畓) 15두락, 전(田) 40두락 이다. 수원백씨 주산문중 소유로 관리되고 있다.

신도비(神道碑)는 안양면 수양리 355-2번지 장흥읍~회진면 간 23번국도 도로변에 위치한다.

   
 
   
 

원래의 신도비는 수원백씨 주산문중에서 1901년(辛丑) 8월 20일(仲秋 二十日) 당암리 청송마을 뒤에 세웠으나, 1950년 6.25 전쟁 후 일부 훼손되자 안양면 기산리 동계마을 기양사(岐陽祠) 내로 옮겨 세웠다. 이후 문중에서는 1956년 현 장소에 公의 주산(舟山) 묘소를 바라보는 동향의 신도비를 새롭게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비신석(碑身石) 상단 전자(篆字)는 秉忠奮義靖國功臣資獻大夫工曺判書貞海君白公神道碑銘이라 새겼다.
1900년(庚子) 11월 하순(上章困敦 復月 下澣) 월성人 면암 최익현(1833~1906) 선생 찬(撰)하였다. 14대손 중인(重寅) 서(書), 13대손 영직(永直) 전(篆), 도유사 기옥(基玉), 유사 유인(由寅) 등 원래 비문 기록을 그대로 새겼다.
1956년(丙申) 9월 17대손 종기(1910~1978) 근서(謹書)하고 유사 형완, 종현 참여로 주산문중에서 중수(重竪)하였다.

수원백씨 17세조 白孟春, 白孟夏, 白孟秋, 白孟冬 등 4형제는 분파되었다. 이중 첫째 백맹춘의 후손들은 안양면 기산ㆍ동계ㆍ동촌ㆍ모령ㆍ수양, 관산읍 당동, 해남군 옥천면 송산, 고흥군 점암면 장남, 광양시 태인 등의 태생이다. 둘째 백맹하의 후손들은 용산면 상금, 안양면 여암ㆍ비동 태생이다. 셋째 백맹추의 후손들은 경남 고성, 제주도 태생이다. 넷째 백맹동의 후손들은 함평군 손불면 석창리 태생이 해당된다.

정해군 직계 후손들 중, 현대의 대표적인 인물은 백정기 예비역 육군 준장(장평면 청룡), 백형배 前 상공부 차관(안양 여암), 백도선 前 장흥군수(안양 여암), 백종헌 프라임산업 회장(용산 상금), 백 익 前 문화체육관광부 국장(용산 상금), 백경준 前 KBS 이사(용산 상금), 백광준 前 장흥군의회 의장(용산 상금), 백종한 前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장흥읍 예양), 백인준 회계사(용산 상금), 백승호 前 경찰대학장(용산 상금), 백종대 서울시 교육청 이사관(용산 상금), 백종섭 광주광역시 선거관리위원회 사무국장(용산 상금), 백철수 남양주 백병원장(용산 상금), 백무준 순천대학병원 부원장(용산 상금), 백형수 전남개발 대표이사(용산 상금), 백형용 변호사(용산 봉동), 백형석 前 장흥경찰서장(용산 봉동) 등이다.

3)자문 : 정해군 16세손 남강(南崗) 백균(1940년, 용산면 상금리 거주), 15세 백주원(1949년 용산면 상금리 거주), 18세 종손 금계(金溪) 백은준(1952년 용산면 상금리 태생, 광주광역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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