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2007년 04월 10일

한승원의 소설은 언제나 바다를 담고 있다. 한승원 문학의 고향, 덕도 신상리를 찾았다. 덕도로 들어간다는 표지가 있었지만 거기는 섬이 아니었다. 간척이 되어 이미 육지가 되어 버렸다. 문학은 위대하다. 세상의 누구 하나 주목하지 않고, 먼 변방으로만 가라앉아 있던 장흥 회진포는 한승원의 소설들로 인해 사람들 속으로, 세상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회진포 인근의 바다와 크고 작은 섬들, 논밭과 산으로 이어지다가 갯벌에서 끝이 나는 무수한 길들은 모두 한승원 소설로 인해 살아 숨쉰다.

신상리 앞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 그리고 긴 방파재. 방파재가 시작되는 지점에 ‘해산한승원문학현장비’가 있었다. 꼬뺑이 끄트머리, 짝귀, 응달개포, 넙바위, 도리섬 등의 지명과 함께 이곳이 바로 바다와 함께 한승원의 삶을 아래에서부터 떠받들며 지탱해준 것들이다. 한승원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년 동안 아버지 밑에서 머슴 살았던 곳이 바로 여기다. 현실에 대한 막막함으로 밤이면 막걸리를 연거푸 마셨고, 무작정 해안을 배회하지 않고는 잠을 이루지 못했고, 봄이면 소를 길들여 쟁기질을 하고, 조각조각 나눠진 ‘다랑치’논들에 모를 심었고, 겨울에는 바다에 나가 김 양식을 도맡아 한 곳도 여기다. <새터말 사람들>은 당시의 이러한 체험에 기반을 두고 있다.

농어민들이 겨우 한탕을 치는 것은, 나락농사 흉년 든 해에 나락 농사 잘 지어놓고, 고추나 마늘 흉작일 때에 그것 잘 가꾸어놓고, 소가 귀할 때 소를 많이 키우고 그러는 일인데, 그때마다 정부는 농어민들이 한탕 하는 꼴을 보지 못하겠다고 재빨리 수입해 와버리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천년만년 농사짓고 고기 잡고 김 양식 잘한다고 해보아야 잘살 수는 없는 일인 것이었다. -<새터말 사람들> 부분

방파재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영원히 여기에 머물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린 어차피 손님일 뿐이니까. 여기의 삶은 여기에 사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떠나야 할 사람들이니까. 한승원 생가를 찾아 나섰다. 해변이 보이는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아담한 마을이 한승원의 고향인 신상리였다. 신기하게도 마을에 들어서자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보통 볼 수 있는 농촌 마을의 풍경이라고 할까? 하지만 마을로 들어서자 농촌에서는 볼 수 없는 수많은 그물들이 골목마다 널려 있었다. 그렇구나. 그들의 삶은 이것과 함께 하는 거로구나. 한승원 생가는 마을 가장 위쪽에 있었다. 대문을 들어서니 주인은 없고 집을 지키던 개만이 손님을 반기고 있었다. 마을이 거의 다 보이는 높은 곳, 산등성이 너머 파란 바다도 보였다. 여기에서 한승원은 바다에 대한 꿈을 키웠을 게다. 아쉬운 것은 서울에서 살던 한승원이 여기로 내려오지 않고 장흥 안양면 율산마을에서 ‘해산토굴(海山土窟)’을 짓고 산다는 점이다.

자신이 쓰고 있는 문학의 현장에 살고 있기에 소설쓰기가 언제나 기쁨이라는 사람, 그는 천성이 글쟁이이고 바다 사람이다. 섬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덕도 신상리를 돌아 나오면서 한승원이라는 인물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겼다. 바다가 존재하는 한 한승원이라는 이름도 영원하지 않을까?

바다로 경운기를 몰고 나가는 아저씨에게 “어디 가세요?” 하니까, 싱긋 웃으며 하는 말. “농사 지으러 가지요.” 그렇지. 바다는 어부들의 땅이지. 버스는 아름다운 강진만을 왼편에 끼고 강진으로 강진으로 달렸다.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 한승원의 <새터말 사람들>

<새터말 사람들>은 비육우와 김 가공공장 문제를 모티프로 하여 새텃몰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한 번 생긴 문제가 악순환의 형태로 계속 이어지는 농어촌의 그늘을 짚어낸다. 빚을 얻어 김 가공공장을 만들고, 많은 김을 가공하기 위해 또 빚을 내 더 많은 김발을 막고, 너도나도 한밑천 잡아보겠다고 만든 김 가공공장 덕택에 생산과다로 망해 자빠지고, 지나가는 똥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던 새텃몰의 겨울에 사람들은 결국 자살에 이른다. 도시의 물질적 풍요가 동경의 대상이 되면서 새텃몰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도시로 삶의 자리를 옮겨간다. 그러나 볼펜공장 판촉과장으로 출세한 줄로만 알았던 아들은 버스에서 볼펜을 팔고 있다. 여기까지 이르면 도시와 농촌의 대립은 이미 대립이 아니다. 어디건 삶을 잡아먹는 거대한 늪일 뿐이다. 그러나 <새터말 사람들>에서 한승원은 새텃몰에 희망 하나를 남겨두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언제나 생명으로 들끓는 바다다. <목선>으로부터 시작된 한승원의 바다 이야기는 아마 그가 살아있는 동안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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