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학당은 지난 2월 23일, 장흥종합사회복지관에서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윤수옥 전장흥 문화원장을 신임 당주로 선출하는 등 제2대 집행부를 출범시켰다.


장흥학당이 장흥군의 새로운 미래비전을 위한다는 목표로 집행부가 세워진 것은 지난 1994년. 당시 손수익 전 건설교통부 장관의 주도로 지역 저명인사 300여명이 회원으로 참여해 설립됐다.
그동안 장흥학당은 매월 2일과 16일, 한 달에 2번 강사를 초청해 지역의 현안을 놓고 강연과 토론으로 진행되는 연찬회를 가져왔으며, 매년 4차례의 역사와 문화 유적, 산업 및 개발현장 등을 둘러보는 현장탐방, 연 2회 연수회를 통해 대두된 중요한 과제를 선택, 지역의 현안과 연관시켜 보는 세미나 및 심포지엄 형식의 발표토론회를 개최해 오는 등 활력 있고 발전하는 장흥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해 왔다.

이렇듯 장흥의 미래발전을 위해 활동해온 장흥학당은 설립이래로 손수익씨가 계속 당주를 맡아오며 주도해 왔다. 그러므로 이번 새로운 당주 선임 등 제2대 집행부는 장흥학당 창립 13년만에 이루어진 셈이다.
이날 총회는 또 차기당주이며 연찬담당 부당주 이길원(장동), 연수담당 부당주 김조운(청룡한의원대표), 감사 박용주, 상임이사 이형찬, 이사 박용주 외 15명을 선임했다.
현재 장흥학당 회원은 모두 311명이다.
이날 새로운 당주에 선임된 윤수옥 신임당주를 만나보았다.

■문화예술인대회 정착- 가장 큰 업적
올해로 19년째 장흥문화원에 몸담아온 윤수옥 전원장은, 문화예술단체의 불모지인 장흥 땅에 회원 1100명을 확보하며 자립문화원의 기반을 다지는 성과를 올렸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특히 지역민과 출향민이 함께 하는 저비용의 문화예술인대회는 다른 문화원이 부러워할 정도로 윤전원장이 일궈놓은 가장 큰 업적이며 성과다.


이는, 문림고을로서 향맥을 이어 온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주축이 돼 지역문화를 발굴·육성해 왔으며, 출향예인들 역시 고향에 대한 진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이를 문화축제로 승화시켜온 것은 순전히 윤전원장의 몫이었고, 또한 그의 그만한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흥문화- 선비정신의 바탕위에 현대의 옷 입혀야, 경쟁력 갖는다
“옛문인, 선비 1백분의 150권 문집-반역 편집하는 일하고 싶다”


한국방송공사(KBS) 장흥출장소장을 지냈던 윤 전원장은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서예와 수필에 조예가 깊어 1987년 장흥문화동호인회를 창립했다. 동호인회는 당시에는 유명무실했던 문화원을 대신했고, 문학 미술 서예 등 전 장르의 문화예술인을 아우르며 지역사회 구심점 역할을 했다. 이것이 인연이 돼 장흥문화원 이사, 부원장 등을 맡은 그는 1998년 문화원장에 오르며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온 군민이 참여하는 예술회관을 지어 입주하는 등 지역문화를 단단한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이러한 장흥문화에 대한 헌신적인 공로와 모범적인 지역문화원 운영의 공로로 지난 2004년 ‘문화의 날’을 맞아 문화관광부 장관으로부터 화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10여년 동안 함께했던 동회인회는 장르별로 자체 능력이 생겨나면서 지금은 모두 분가해 나가 독립적인 모임체를 만들어 해마다 몇회 씩 전시회를 열거나 문집을 만든다거나 공연문화를 창출하는 등 나름대로 지역문화 활성화를 주도하며 지역문화의 첨병이 되고 있다.


“문림(文林)이 없는 의향(義鄕)은 사상누각과 같습니다. 또 그 문림의향의 토대는 늘 단단한 사상적인 무장을 전제로 해야 보다 확고하게 전승되고 발전됩니다. 굳이 장흥학당을 문화와 연결시켜야 한다면, 바로 이런 점에서 장흥학당은 장흥문화 활성화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으며, 이러한 관점을 염두에 둔 장흥학당 운영에도 노력할 것입니다.”

■장흥문화에 ‘학술의 옷’ 입히겠다
그동안 학술방면에서 그 역할을 담당해 온 장흥학당의 정체성을 문화의 활성화와도 연계시켜가고 싶다는 게 윤전원장의 심임 장흥학당의 당주로서 포부이기도 했다.


“우리는 자찬해서, 장흥을 흔히 선비의 고장이라고 합니다. 선비는 계급이 아니라 정신입니다, 그러므로 문림골의 정신은 바로 선비정신이었던 것이지요. 우리는 흔히 장흥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하는데, 장흥의 정체성이 별다른 게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에서 우리는 그 정체성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선비정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선비정신 속에는 바로 문림文林이, 사림士林이, 의향義鄕이 함축되어있으며 함께 맞물려 있습니다. 해서 저는 장흥의 선비정신이 그만큼 건강하고 단단하며, 그 맥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선비정신이 있었기에 국가 위란을 맞아서는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져버리고 분연히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임진란, 병자란 때 참가했던 사람들이 타 지역에 비해 월등하게 많았던 것은 바로 이러한 선비정신 때문이었습니다.
장흥은 이러한 선비정신이 강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할 일은 그 선비정신을 제대로 계승하는 일입니다. 그 바탕 위에 새로운 것은 첨가시켜 가야 합니다. 이러한 운동이 일어나고, 이러한 정신에서 장흥의 문화가 활성화된다면, 그것은 다른 고장의 것들을 충분히 능가해내는, 비교우위의 경쟁력을 갖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점에서 앞으로 장흥학당이 더욱 큰 힘을 보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학당의 신임당주로서 그의 역할이 새삼 기대된다.
“당주 임기가 1년입니다. 그러므로 그 1년 후에는 본업인 문화원 쪽 분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입니다. 문화원에서 무슨 직책을 맡는다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문화원 서고에는 장흥 문인 1백여분의 문집 1백50여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집을 그대로 묵혀둬서는 안됩니다. 더욱 우리 군이 문림고을이고, 지금 장흥문학을 자원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날로 높아가고 있는 실정이고 군에서도 장흥문학을 문화상품화하려 하고 있는 실정인데, 이러한 장흥문학의 위상을 위해서는 더욱 이 문집들이 현대적으로 변역되고, 이것이 우리 장흥문학의 소중한 전통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해서 누군가 발 벗고 나서서 이것들은 번역하고 총서 같은 것으로 재편집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일은 누가 쉽게 할 수도 없고, 특히 장흥문화에 대한 애정 없이는 이루어질 수도 없는 일이고 해서, 물론 과한 내 욕심일지 모르지만, 내가 이를 맡아서 해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1년 후 학당 임기가 끝나면 무슨 일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윤수옥 당주의 말이었다. 윤수옥 전 문화원장, 그의 영원한 고향은 역시 장흥문화원, 아니 ‘장흥문화’ 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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