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출신으로 지난 2000년에 정치에 입문한 뒤 두 번의 총선에서 고배를 마시고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순천시장에 당선되었던 전직 법조인 출신의 노관규(48) 시장. 전임 시장 3명 모두 구속되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순천시의 수장(首長))으로 나선 노관규 시장에겐 순천시의 민선 4기 출범은 당초부터 상당한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그러나 노시장은 시장 취임식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정직, 공정,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하며 청렴하고 건전한 생활을 솔선수범함으로써 순천 시민의 기대에 보답할 것을 다짐한다'는, 이른바 '청렴서약식'을 치른다.

청렴서약의 실천사항은 '업무관련 부정부패행위를 하지 않는다, 부당한 청탁을 단호히 거절한다, 내부 부패유발 요인이 있는지 항상 점검한다' 등 4개 항목이다. 순천 시정의 첫출발부터, 재임 중 공정하고 투명한 시정을 펼쳐 한 점 부끄럽지않은 시장이 되겠다는, 시장으로서 강한 의지를 시민 앞에 천명하고 스스로의 결의도 다진 것이다.

■노관규 순천시장 시장 10계명

지금 순천시청 노시장실 책상 옆 벽에는 '시장 10계명' 록이 결려 있다. 그는 그 10 계명록을 매일 낭송하고 숙지한다.

이 계명은 지난 해 6월 15일 시장학교 워크숍 때, 희망제작소 박원순상임이사가 자치단체장들이 명심해야 할 계명으로 소개한 내용이다.

이때 박이사는 10계 명 중 ‘청렴하면 탈이 없다’를 첫번째로 꼽았다. 또 ‘큰 뜻을 세우면 반드시 청렴하기 마련이다. 사람이 청렴하지 못한 것은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는 목민심서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지도자의 필수덕목으로서 청렴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시장이 공부하는 만큼 지역은 발전한다' '잘 설계된 시정 밑그림 10년을 좌우한다' '주민참여가 지역발전의 원동력이다' '재선 생각을 버리면 재선 그 너머가 보인다' 등의 열 가지 내용도 소개한다. 이때의 10 계명이 노시장실 벽에 걸린 ‘시장 10계명’이다.

노시장의 시장으로서 철학은 청렴, 원칙, 정도(正道)이다. 그리고 정대함이고 당당함이다. 그 가치관 위에서 희망을 꿈꾸며 희망을 창출해간다. 이제, 30만 순천시민에게 그 희망을 부여해주겠다는 게 노시장의 확고한 약속이다.

사실, 시장 이전의 노관규도 그 인생관으로 최선을 다하고, 고난을 극복하며, 희망을 꿈꾸어 와 오늘의 노관규를 만들었다.

■노관규 시장은 이런 사람


36세에 뒤늦게 검사로 입문했던 그는 검사시절인 1998년, 변호사와 판사간의 유착으로 문제가 된 의정부 법조 비리 사건 수사를 맡아 회유와 압력에 굴하지 않고 파헤친 주인공이다. 당시 수사 결과 의정부 지원 소속 판사 8명이 옷을 벗었으며, 나머지 판사 30명 전원이 다른 지역으로 전보되는 사법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는 또 세무공무원 출신답게 세무장부 분석과 계좌추적에 탁월한 실력을 발휘해 김영삼 전 대통령 아들 현철씨를 조세포탈죄로 구속하는 데 일조했다.

그는 또 1992년 한보그룹 대출특혜 비리사건과 관련, 당시 검사경력 2년차임에도 불구하고 수사팀에 합류해 ‘자물쇠’로 알려진 정태수 총회장의 입을 여는 수훈을 세웠다. 그리고 2000년 총선 때 수원 지검 특수부 검사직을 사직하고 정치권에 전격 입문한다.

노시장은 2000년 민주당에 입당, 서울 강동갑에 출마해 당시 한나라당 이부영과 맞붙어 분루를 삼킨다(정치 초년생으로 한나라당 거물에게 42%인 4만2000여 표를 얻는 선전이었다).

또 2003년 민주당 예산결산위원장이던 그는 대선자금 폭로를 주도하면서 정치권을 뒤흔들며 국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작은 거인’이 되기도 했다.

세무공무원에서 날리는 검사, 그리고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인생역정을 걸어온 입지전적인 인물이지만 노시장에게는 개인적인 아픔이 있다. 두 아들 중 장남(15세)이 혈액종양(에반스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 다음은 노관규 시장과 1문1답.

-취임 후 8개월이 지났다. 그간 순천시정의 성과는?

▶순천시장에 취임한 후, ‘물과 숲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가꾸어 가는 정겨운 순천’을 목표로 평생학습도시, 생태정주도시, ‘머무는 순천관광’ 건설,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자치도시 구현에 역점을 두고 있다.

순천시는 전국 으뜸의 평생교육도시 건설을 위해 올해 석현동 구군부대 부지 8천평에 평생학습타운을 만들고 작은 도서관을 60개로 늘리고, 순천대와 청암대 구간의 원도심 학교를 교육문화벨트로 묶는 사업이 추진한다.
또 환경 친화형 생태정주 도시건설을 위해 광역친환경 농업단지 조성을 마무리해 친환경 농업의 메카로서 토대를 구축하고, 농수축협등 전국 유통망과의 연계판로 개척과 가공유통부문에 행정력을 총력 집중하고, 농산물 공동 브랜드인 ‘순천미인’의 경쟁력 제고로 비전 있고 살고싶은 농촌을 만들겠다는 각오이다.

또한,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는 ‘머무는 순천관광’ 실현을 위해, ①동천에 웰빙, 자전거도로, 보행자도로 등 사람중심의 녹색도로 개설을 추진하고 ②300만 그루 나무심기 등 푸른도시 조성하며 ③동천, 세계 5대 연안습지 순천만, 낙안읍, 선암사, 송광사로 이어지는 관광루트 조성 등으로 머물러 가고, 먹고 자고 가는 ‘머무는 관광’ 을 적극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시정의 성과를 들추어 본다면 ▲세계 청소년들의 꿈과 희망의 장이었던 “제2회 국제 패트럴 잼버리대회”의 성공적 개최, ▲프랑스 낭트시의 ‘순천동산 건립’ ▲서울 포스코 본사와 마그네슘 판재공장 유치 협약 체결 ▲엠보이스, AIG, LG텔레콤 등 3개 콜센터 유치-신소재 산업 메카로 자리매김 등이 주요 시정의 성과였다. 그러나 그간 수 개월째 농성을 벌여왔던 공무원노조와의 갈등은 양자 모두에 큰 교훈을 남겼다. 지역 이미지나 투자유치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되었다는 점과 서로간의 갈등은 모두 한 걸음씩 양보하면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순천에 온 이후와 시장이 된 후의 고향 방문 횟수는? 그리고 감회는?

▶순천에 정착한 이후 두 번 선거를 준비하고, 시장 취임하기까지 거의 밤잠도 제대로 못 이룰 만큼 바쁜 날의 연속이었다. 시장 취임 후에도 현장방문, 행사참석, 주민상담 등 관내에서 이루어진 업무 외에 투자유치, 국비확보, 해외교류 등 국내외적으로 발로 뛰어야 할 일이 산적해 고향 방문이 쉽지 않았다.

지금 고향 마을은 장흥댐 건설로 수몰되었지만. 여전히 고향에는 선산이 있고, 전답이 있어 명절 같은 때 꼭 찾아가 둘러보고, 고향 어르신들도 뵙고 있다. 그러나 고향에 갈때마다 수몰된 옛 마을을 쳐다보면서 풀벌레 울음소리를 들으면 향수에 젖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프기도 한다.

-순천시장으로서 고향 장흥의 발전 방향, 미래 비전 등을 생각해본다면?

▶장흥은 지리적으로 전남 중ㆍ남부권의 중심거점지역으로 전남에서 유일하게 읍이 3개 소재하고 있다. 또, 천관산은 천혜의 관광자원이라 할 수 있다. 요즘에는 지역브랜드가 지역 경쟁력이라고 할만큼 브랜드 가치를 중요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정남진 이미지를 브랜드화하여 정남진을 전국적인 이미지로 심화, 확대해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표고버섯도 전국에 널리 알려져 있는데, 친환경농업을 더욱 활성화시키고 유통망도 더욱 확대해 판로를 개척해 나가면 더욱 잘 사는 장흥이 되리라 확신한다.

-순천, 여수, 광양 등지의 향우회 활동이 대단하다. 이들 향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시장이 되기 전에는 순천 시내에서 열리는 장흥향우회 총회 등에 몇 번 참석하곤 했다. 그러나 시장취임 후로는 공식 일정에 매달려 거의 참석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점은 향우들도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많은 향우들이 지역사회에서 인정받고 성공했다.

장흥이란 지연으로 사적으로 어려운 당부를 하지않은 공사 분명한 분들이어서 오히려 존경스럽고, 해서 더욱 이런 고향 분들을 위해서라도 한 치 부끄럼 없는 시장이 되도록 결의를 다지곤 한다.
향우들은 고향에 대한 홍보대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향의 장점을 잘 알리고, 지역경제에 보탬이 될 일을 찾아서 홍보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나도 시장이기 전에 장흥의 향우이므로 기회 있을 때마다 장흥을 홍보하려고 애쓴다.

-검사를 사직하고 정치에 입문한 후 국회의원 선거 등 어려움이 많았는데, 회고해 본다면?

▶정치를 선택한 순간, 간절한 기도를 하기도 했지만, 첫 선거에서 어렵고 힘든 지역을 선택해 고배도 마셨다. 낙선 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조금이나마 사회의 보탬이 되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했다. 변호사로서 소외된 이웃을 위해 무료법률상담을 해주기도 했고, 지역의 답답한 민원을 찾아 힘닿은 데까지 해결하도록 노력했고, 지역을 새롭게 바꾸는 문화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에도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

선거는, 어디까지나 유권자의 마음을 끌어내야 하므로, 그 표심을 잡기위해 여러 가지 공약들을 구상하고 실천해 내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무엇보다 능력, 자질, 도덕성은 물론 정서적으로 평가받고 선택되도록 해야 하므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해서 천운(天運)이니 하는 운명론이 작용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살아온 인생과 정치를 별개의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다만 하는 일이 다를 뿐이라는, 원칙은 같고 역할이 다를 뿐이라는 생각이었고, 이점에선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도덕적인 삶과 청렴하고 정직한 정치, 공사(公私) 분명한 삶과 사심없는 공익중심의 정치 등은 같은 의미가 아닌가.

-가정적으로, 투병 중인 아들 때문에 마음 고생이 많았던 것으로 아는데...


▶장남이 태어나자마자, 의사가 진단하지 못하는 병(혈액종양인 에반스 증후군)으로 입원하게 되어 부모로서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안아 왔다. 그 후에도 자주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어느 날인가 아들을 안고 서울대병원을 비참하고 허탈한 심정으로 내려오는데, 내가 흘린 눈물을 보던 아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며 “아빠 울지마, 나 이제 안 아프거든? 아빠가 울면 엄마도 울고, 우리 식구 다 울잖아. 나 안 아플 테니까 울지마.”라고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는 순간, 울컥 솟구치는 눈물을 참으려고 무진 애를 쓰기도 했다.

-어려운 청소년시절을 보내고 고등학교 졸업 후 독학으로 공무원과 고시에 합격하고, 검사, 변호사를 거쳐 시장까지 됐는데.

▶세무공무원 생활 8년째를 맞이하던 어느 날,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생이 독후감을 쓰기 위해 읽고 있던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을’이란 책이 내 인생 행로를 바꾼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극기와 인내로 위대한 결실을 얻어낸 고시 선배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이었다. 무엇인가 도전하기 위해 몸을 던져 자신을 시험한다는 점, 목표를 정해놓고 자신을 던져가며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괴롭고 외로운 일이지만, 이 과정을 거쳐 이겨냈을 때는 그만큼 큰 보람이 기다리고 있다.

‘할 수 있다’는 신념과 확고한 비전만 가지고 있으면 주경야독을 통해서 자기의 꿈을 얼마든지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사회가 대학 안 나와도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능력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어렸을 때 고생해야 훗날 어렵고 힘든 난관이 닥쳐와도 이겨낼 수 있는 극기력이 생긴다. 성장기에 어려운 환경에서 검소하고 청렴한 생활을 하면 이후 어떠한 불의나 유혹에도 현혹되지 않고 법과 원칙에 의해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출향 장흥인으로서 군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요즘 우리는 복잡 다변화 속에서 지역간 국가간 경쟁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러한 경쟁 속에서는 지역의 이미지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역을 자랑할 수 있는 브랜드 파워는 최대한 널리 알리고 안 좋은 면이 외부에 비치지 않도록 무엇보다도 지역안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장흥 군민 모두가 서로 아우르고 서로 마음을 모아서 정이 넘치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한 삶인지, 늘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사회, 살만한 세상, 누구도 소외당하지 않는 사회, 누구나 각자의 분야에서 모두 함께 일등이 되는 사회, 상대방의 아픈 눈물을 닦아주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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