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석/부산면장


2007년 2월 21일 부산초등학교 졸업식장.- 단상 위에 한복차림을 한 수려한 용모의 여학생 여섯 명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촉촉한 눈망울에 가늘게 숨이 떨리는 듯 옷깃을 여미며 하객들의 분위기에 초연하려는 고독이 제법 어른스럽다.
"올해 전국 농어촌 초등학교 102곳 신입생 0명 전남 34곳"이란 속보가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다.

전교생이라야 고작 36명, 여기에 올해 졸업생인 여섯 명을 배출하고 나면 그만큼 학생 수가 또 줄어든다. 그렇지 않아도 면내에 다방은 물론 약방, 대중목욕탕, 이발소, 마땅한 선술집 하나 없어 한산한 면소재지의 쓸쓸함을 탄식하는 목소리가 신음처럼 새어나오는 외로운 지역으로서, 학생 수 미달로 인한 75년 전통의 학교존립의 위기를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돌고 있다.

이에 학교 측과 지역 유지분들께서 앞장서서 1학년 신입생 유치에 총동원령을 내리고 7~8명의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설득공세에 나섰으나, 규모가 큰 인근 장흥읍 학교로 취학을 희망하는 쪽으로 이미 굳어진 결정을 끌어내지 못하고 겨우 2명만을 확보 하였다고 울상이란다.
선생님들의 입장이 보기에 측은할 정도다. 다행히 교육정책이 이농현상과 저출산의 영향으로 섬과 두메의 학생 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나 학교가 지역의 문화중심이니만큼 여건이 어려워도 1면 1학교를 유지하겠다는 취지에 변함이 없어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언제 갑자기 또 개혁의 물살이 밀어닥쳐 학교 통·폐합의 피켓이 나부낄지 모를 일이어서 지역 민심이 결코 조용하지만은 않다.

규모가 초라한 졸업식장에 지역의 기관장으로 초대되어 가보니 식순에 축사가 없는 것을 보고 6년동안 수학을 하고 교정을 떠나는 학생들이 너무 고맙게 생각되어 졸변이지만 격려의 말 몇 마디를 해 주어야 체면이 서겠기에 대뜸 축사를 자청한 자신이 나중에 생각해 보니 퍽이나 대견스러웠다.
몇 명 안되는 급우들과 선생님이 마치 동화 속의 흥부 가족처럼 가슴 맞대고 지내왔던 학창시절을, 먼 훗날 생각하면 보석처럼 소중한 추억들을 가지고 있는 이들 시골 학생들이야말로 정이 삭막한 도시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들에 비하면 훨씬 부자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의 정서에는 올바른 인성교육의 토양으로 시골학교 진학을 더욱 권장하고 싶다. 물론 도시학생들과의 실력차이를 전혀 간과 할 수는 없겠으나 근본은 학생들 자신이 스스로 공부하기 나름이다.
경남 산청군의 산간오지에 있는 간디학교에 다니는 김현정양이 EBS 인터넷 강의만으로 보란 듯이 올해 서울법대를 합격한 우수사례를 배워둘 필요도 있을 것이다. 또한, 공부만이 전부가 아니다. 미국의 카네기공대 졸업생들을 조사해본 결과, 이구동성으로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성공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은 15%에 불과하며 85%가 인간관계를 원만히 하여 성공한 것으로 발표 되었다.
조언인즉, 우리군 학부모님들께서는 무턱대고 도시의 유명학교 진학만을 선호할 것이 아니라 자식들이 어렸을 때부터 뿌리를 알고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여 삶이 윤택해 질 수 있도록 해주는 배려가 필요하며 또 선조와 고향을 지키는 뼛살을 튼튼하게 해 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발 바라건 데, 올해 취학하는 아동을 둔 부산면 학부모님들께서는 지금이라도 전망 좋고 이모와 삼촌처럼 자상한 선생님들이 기다리고 있는 부산초등학교에 보내도록 이상적인 사고의 전환을 꼭 당부드리고 싶다.
우리 주변에는 자기를 희생해 가면서까지 고향의 지킴이가 된 자도 더러 있다. 물론 큰 강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물고기를 작은 호수에만 영원히 가두어 두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러나 가는 바람에 잔잔한 물결 거기에 오색단풍의 운치와 그림자가 드리워진 호수(고향)의 정서를 만끽한 어린 물고기가 설령 급류에 밀려 바다로 나간다손치더라도 일생동안 살아가면서 그 안락한 호수의 향수를 과연 쉽사리 지워버릴 수 있을까?

하여, 최소한 초등학교와 중학교만 이라도 고향학교를 보낸다면 인성교육과 병행 고향 인구 지키기, 명문학교 만들기 등 군으로서는 일석삼조의 소득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유력한 향우분들께서도 그런 깊은 뜻을 충분히 헤아리시고 단순히 어른들의 높은 학구열 때문에 고향의 집안 아이들을 유년기 때부터 도시지역으로 입양하려는 생각들은 지양하시고 고향학교 사랑에 적극 동참해 주었으면 좋겠다.
고독한 환경 속에서 의롭게 피어난 산유화처럼 밝게 보이는 졸업식장의 여섯 소녀의 해맑은 얼굴표정들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쉽사리 지워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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