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을 가리는 꽃나무 잘라 없애니 석양 하늘 아래 아름다운 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초의 스님께서 대흥사 일지암에서 도 닦으실 때 쓰신 시의 한 대목이다. 지관(止觀)을 함축하고 있는 선시(禪詩)이다. 요즘 차를 마시면서 지관에 대하여 공부를 하고 있다.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 만행하는 선재소년이 선지자 문수보살을 찾아갔다. 둘은 들판 길이 끝나는 곳에 우뚝 솟아 있는 산기슭 밑에서 만났다. 세상에서 가장 참다운 지혜를 터득하고 싶다는 소년의 까만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있던 선지자는 소년에게 숙제 한 가지를 내주었다.

“너의 어둠(迷妄)을 걷어내고 참 지혜를 터득하게 하는 약초가 이 산 속에 있다. 그것을 뜯어가지고 오너라.”

소년은 그 약초를 구하기 위해 이 산 저 산을 헤매어 다녔다. 대관절 어떠한 풀이 그 약초란 말인가. 소년은 그 숙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몇 해가 지나갔다. 이른 봄 한낮에 지친 몸을 이끌고 터덜터덜 한 이내(嵐) 자욱한 산골짜기로 들어섰다. 거기에 머리털과 수염이 하얗지만 얼굴은 발그스름한 노인이 귤나무와 비슷한 나뭇가지에서 바야흐로 자라나는 눈(嫩-어린 순)을 따고 있었다.

“노인장께서 따고 계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가타(藥)이니라.”

노인이 대답했다. 소년은 노인에게 자기가 이때껏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숙제를 말하고 “이 잎사귀가 혹시 그 약 아닐까요?”하고 물었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말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봄철이면 이 나뭇잎을 따다가 덖어 말려놓고 상음을 하는데, 모두가 소년처럼 발그레한 얼굴로 백 살을 훨씬 넘도록 살고 있고, 머리와 마음과 눈과 귀가 한없이 밝고 맑아, 사람들의 마음은 물론, 하늘과 땅 저 너머의 미래 세상까지도 뚫어본단다.”

소년은 노인에게 머리 숙여 절하고 그 나뭇잎을 뜯어다가 선지자에게 바쳤다. 선지자는 그 잎사귀를 손에 들고 말했다.

“이 약(藥)을 ‘알가’라고도 하는 것인데, 능히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것이다.”

소년은 선지자의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어리둥절하여 그의 얼굴을 멀거니 건너다보기만 했다. 선지자가 덧붙여 말했다.

“사람을 죽이는 칼을 ‘살인도(殺人刀)’라 하고, 살리는 칼을 활인검(活人劍)이라 한다. 살인도는 사람들의 미혹(迷惑-어둠)된 마음을 끊고 생멸을 그치게 하는 칼이고, 활인검은 세상에서 가장 참다운 지혜(고요한 깨달음)를 얻게 하고, 그윽한 영원의 빛의 세상을 보게 하고 그곳으로 나아가게 하는 칼이다.”

그 ‘알가’라는 나무의 어린 순이 차(茶)이다. 차는 마법 같은 각성(깨달음)의 약이다. 나는 그것을 ‘지관(止觀)의 약’이라고 푼다.

차는 두 가지 무기를 가지고 있는데, 그 하나는 미혹과 탐욕과 자기 오만을 그치(止)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밝고 맑은 지혜로써 세상을 깊이 멀리 뚫어보게(觀) 하는 것이다. 술은 사람을 미망 속으로 빠져들게 하고 미치게 하지만, 차는 어둠에 갇혀 있는 사람을 깨어나게 한다. 다산 선생은 술 마시는 사람이 많은 나라는 쇠하고 차 마시는 사람이 많은 나라는 부강할 것이라고 했다.

요즘의 오탁악세(五濁惡世) 속에서 우리들의 몸과 마음은 탐욕으로 찌들어 있다. 이 더러운 세상을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 앞에 ‘차 한 잔’이 놓여 있다. 차, 그것은 선(禪)의 또 다른 얼굴이다. 차의 어원은 범어로 ‘알가(argha)’인데, 그것은 우주 시원을 뜻한다. 새 우주를 싹트게 하고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눈(胚芽)이 거기 들어 있다. 그 눈 싹트게 하는 방법을 초의 스님 시에서 배운다.

‘눈앞을 가리는 꽃나무 잘라 없애니 석양 하늘 아래 아름다운 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200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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