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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 정체성을 찾는다(2)>>정자문화①이대흠 시인의 정자기행(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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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2.03  21:4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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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세월을 거슬러 흐르지 않는다


▣ 동백정 단상

맨 처음 인간의 길은 물길을 따라 이루어졌으리라. 숲에서 나온 인간이 농경과 목축을 하면서 정착을 하거나 유목 생활을 하였을 때, 가장 먼저 문제되는 것은 물이었을 것이고, 물이 만들어 놓은 퇴적지는 가장 쉽게 길을 낼 수 있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사람의 길은 물길을 베끼고, 짐승의 길을 따르고, 그러다가 그것들을 배반한다.

동백정은 강 건너에 있다. 강이라도 한 뼘 남짓한 부산천이다. 이전에는 수심이 꽤나 깊었던 봇물이 지금처럼 얕아진 것은 1981년에 있었던 태풍 에그니스 덕분이다. 당시 이 근처는 극심한 폭우로 인하여 도로가 끊기고 여러 곳에서 산사태가 났다. 20년이 지났는데도 이전의 모습대로 복원되지 않는 것을 보면, 자연이 가지고 있는 시간의 관념이라는 것은 참으로 길다는 생각이 든다.

장흥의 정자들은 대개 세 가지 요소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깊고 푸른 물과 큰물이 져도 끄덕 없을 것 같은 암벽. 그리고 인위적으로 가꾸지 않는 정원(숲)이 그것이다. 탐진강은 그다지 큰 강이 아니기 때문에, 깊고 푸른 물이 있으려면 보가 필요하다. 그래서 장흥의 정자들은 어김없이 보를 하나씩 끼고 있다. 그 보에는 또 소가 있다. 소가 있는 보의 물은 여러 색깔을 지닌다.



마을 회관을 뒤에 두고 동백정 원림을 바라보면, 언뜻 잡히는 풍경 하나가 있다. 동백정을 중심으로 왼편에는 커다란 고인돌이 있고, 오른쪽에는 비닐 하우스가 있다. 이른바 집(무덤. 정자. 하우스) 세 채가 날날하게 서 있다. 고인돌은 최소한 오 천년 이상 된 집이다. (무덤도 집이다. 그래서 풍수에서는 무덤을 陰宅이라고 하지 않던가.) 영혼이 날아가지 못하게(?) 오 천년 이상을 무거운 돌로 눌러 둔 고인돌. 풍류로서 영혼의 자유로움을 꿈꾸었던 정자. 영혼이 없는 하우스. 공통분모를 영혼으로 잡고 세 집을 비교하면, 인간의 문명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천천히 봇둑을 건너보라. 잔물결 소리가 하늘에 닿는다. 역시 동백정은 겨울이라야 제격이다. 잡목들이 우거진 여름의 숲하고는 전혀 다르다. 이 나라 어디에 이만한 솔숲이 있던가. 나무들은 일제히 정자를 향하여 엎드려 있다.
둑을 건너면 동백정으로 향하는 돌계단이 나온다. 그러나 내친걸음에 동백정으로 향한다면 그 사람은 동백정을 절반도 모르는 사람이다. 계단에 발을 놓기 전에 강과 숲 사이의 비좁은 시멘트 둑을 따라 장항 마을 쪽으로 가라. 발 아래는 용소이다. 독실보의 용소와 연결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던 곳이다. 용소를 지나 열 걸음쯤 걸으면 농로가 나온다. 그곳을 따라 2번 국도가 있는 곳까지 쭉 걸어가라. 뒤돌아보지 마라. 속된말로 노가리나 까면서 걸어 가다보면 시커먼 아스팔트가 나온다. 그쯤에서 뒤돌아서면, 동백정의 참모습이 보인다. 갈잎에 어우러진 동백정은, 해질 녘이면 속세를 버리게 한다. 연애를 하려거든 동백정에 오면 된다. 천천히 석양을 걸으면서 만상이 하나됨을 이야기한다면, 그 연애는 100% 성공한다. 연애가 아니라도 좋다. 동백정은 마른 갈대 잎에 올려놓아야 그 맛이 난다. 멀리 보이는 수리봉은 배경이라도 좋다.

다시 지나온 길을 더듬어 가더라도 그 길은 알고 있는 길이 아닐 것이다. 돌아보면 늘 다른 길이 있는 것이다, 내가 이미 지나온 곳이더라도.


해가 진다. 겨울이다. 순간 느끼는 가벼움은 인간사의 것이 아니다. 돌아와 둑이 끝나는 곳에서 계단을 오른다. 솔향은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우리의 선조들이 느꼈을 것과 같은 향기를 맛보게 한다. 천년 세월의 내음이다. 계단을 오르면 시누대들이 가장 먼저 반긴다. 활시위를 만드는데 썼다고 해서 시누대라고 했다던가. 전쟁시에는 시위가 됐을 것이고 평화시에는 마당 빗자루가 되었을 시누대. 우리 선비들의 정신인것만 같아 마음 깊은 곳이 푸르게 차오른다.

소나무와 대나무. 송죽이 어울리니, 하늘은 자꼬 높아진다. 팽야 그 하늘이라고 말한다면 우둔한 자일 것이다. 송죽이 푸르르니 하늘은 명경이다. 하늘이 거울이고 물 또한 거울이니, 우둔한 내 모습이 한꺼번에 들킨다. 겨울이다. 얼음 같은 거울이다.

왼쪽에는 허물어져 가는 관리사가 있다. 걸레질 한 번하지 않았을 것 같은 마루. 꽉 찬 쓰레기통. 이것이 장흥 문화의 현실이다. 하지만 동백정은 그따위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궁둥이 딱 깔고 '인자 이 집 귀신잉께' 하는 오래 전의 새색시처럼, 가만히 앉아있다. 하늘은 팽야 그 하늘이다.

▣강은 세월을 거슬러 흐르지 않는다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온다. 토골 토골 흐르는 물결 따라 한 해가 흘러가고, 새해가 흘러온다. 강은 세월을 안고서 한사코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지와몰 쪽으로 흘러내려 가는 물이나 노루목이나 만손리 쪽에서 내려오는 물이나, 수량 면에서 그다지 차이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금 같은 강. 이곳은 탐진강의 상류이다. 어느 강이건 상류는, 이 땅 어머니들의 악착같음을 닮아있다. 아득바득 흐르는 것 같지만, 한없이 맑은 어머니의 심성. 물빛은 언제고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흐르는 강물처럼 풍경 좋은 동백정에 다시 몸을 담는다. 동백정을 처음 지은이는 김린(金麟)이다. 그는 한때 의정부 좌찬성에 이르는 벼슬을 하였지만, 세조가 단종을 폐하고 왕위를 차지한 후, 모함에 의해 좌천되어 장흥부사로 재직하였으나, 세조 4년에 스스로 은퇴하였다. 김린의 호는 동촌(桐村)인데, 그가 처음 살았던 곳은 효자리의 서남쪽이었다고 한다. 깽밴 혹은 뒷들보로 불렸던 곳이다. 효자리는 쇄깃들, 쇄얏평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후에 김린은 호계리로 거처를 옮기는데, 지금의 호계리 주민 대부분이 청주 김씨인 것으로 미루어, 마을의 입향조를 김린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동백정은 두 개의 축대 위에 있다. 위쪽 축대 위에는 최근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담장이 있는데, 멋을 아는 사람이 쌓았는지, 높이가 낮은 돌담은 ‘마치 맞다’는 느낌을 준다. 예술이란 때로 파격이지만, 결국엔 ‘마치 맞은’ 어떤 것을 지향하지 않을까?



동백정의 오랜 주인은 김린이지만, 그가 지금의 정자를 지은 것은 아니다. 그는 이곳에서 가정사(假亭舍)를 짓고 은거하였는데, 그의 후손인 雲岩 金成章이 1584년에 정자를 짓고, 선조가 심었던 뜰 앞의 동백나무가 하도 아름다워 동백정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사당이자 서당, 정자였던 동백정-

동백정의 묘미는 실용성에 있다

현재의 동백정은 1985년에 증수한 것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이전에는 정면 3칸이었는데, 동쪽 한 칸은 나중에 증수하였다. 뒤켠으로 돌아가니 백년은 넘어 보이는 동백나무 한 그루가 있다. 애초의 그 동백나무는 아니겠지만, 너른 품을 지닌 나무는 덕성이 있어 보인다. 잎새 하나를 따서 합장한 손 사이에 넣고 피리를 불어본다. 삐- 하는 소리가 허공을 쏜다. 오랜만에 자연의 악기를 만져본 탓에 재미 붙은 나는, 이번에는 시누댓잎을 입에 물고 불어본다. 이 음악 또한 이전에 뒤지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음악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연이 주는 음악보다 향기롭지는 못 할 것이다.

동백정의 묘미는 실용성에 있다. 지금도 가을에 시제를 지내기 위하여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동백정은 정자만은 아니다. 시제를 모시는 사당이며, 불과 60여년 전만 하여도 서당의 구실까지 하였다고 한다. 덕망 있는 훈장님이 근처의 아이들을 모아서 소학이니 천자문을 가르쳤을 것이다. 시누대 회초리를 손에 든 훈장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훈장님은 떼끼놈- 하면서 게으른 나의 발길을 재촉한다. 누각과 거기에 붙어 있는 쪽문. 무언가 귀중한 것들이 있을 것만 같다. 문창살에 손을 대 본다. 내 살인 양 따스함이 느껴진다. 쇠때(열쇠)가 없는 방으로 들어선다. 아랫목 쪽에 조그만 문이 하나 있다. 열어보면 귀한 문서를 보관하면 좋을 것 같은 공간이 나온다. 오랜 전의 훈장님이 엿이라도 숨겨두었다가, 책거리하는 날이면 꺼내어 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때를 잊은 동백꽃 한 송이가 마당가에 피어있다. 접(겹)동백이다. 철을 모르는 게 어디 저 꽃뿐이랴. 겹처마 아래에 핀 겹동백을 보니, 수상한 시절이야 먼 데의 이야기이다.


사당, 서당, 정자인 동백정을 뒤에 두고 계단을 내려온다. 보안의 강돌이 많은 곳은 매년 정월 대보름날 별신제를 지내는 곳이다. 호계 마을은 별신제와 함께 당산제, 산신제, 맬구제 등을 지내고 있거나 지낸 적이 있어서 민속학 연구에서 중요한 마을이다. 예전에는 2번 국도가 지나는 곳에 당산나무 두 그루가 있어서 그곳에서 당산제를 지냈다. 도로가 포장되고 난 후 당산나무 한 그루가 죽더니, 몇 년 후에 짝을 잃은 나무가 마저 죽었다. 그 후 제를 지내지 않았는데, 교통사고가 잦았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별신제와 더불어 산신제를 지낸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이 마을 사람들이 사고로 다치는 일은 없어졌다고 한다. (제보: 이봉순. 64. 호계리)

별신제는 흔히 1715년부터 지냈다고 알려졌는데, 그것은 호계 대동계에 대한 자료들에 근거해서이다. 하지만 축문을 쓴 사람인 만수재 이민기(晩守齋 李敏琦. 1646-1704)의 생몰 연대로 미루어 그 연원이 더 거슬러올라간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강 안의 잔돌이 많기도 하다. 20여년 전만 하여도 노루목과 호계 마을 젊은이들이 돌싸움을 하였던 강둑에는 웃자란 풀들만 무성하다. 지금은 돌싸움을 할 젊은이들도 없다. 사람이 빠져나가고 민속놀이가 사라져 가는 농촌. 하지만 찬 겨울을 이겨내는 보리 싹의 푸르름과 함께 우리의 마을들은 건강하게 살아있다. 노을이 진다. 석양빛처럼 붉은 심장을 가진 사람들의 겨울이다.

<장흥신문2001-11-27>

이대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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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정을 지키는 김광원씨
“선조들의 얼이 담겨 있는 문화유산을 잘 가꾸고 보존하는데 힘을 다하겠습니다.”
전남도 유형문화재인 장흥의 `동백정(冬柏亭)'을 3대째 유지, 보존하고 있는 김광원씨(69·전장흥군의회 부의장)는 “외관상 풍치림으로 둘러싸인 동백정은 수백년된 노송이 우거져 있어 보존가치가 매우 높다고 밝혔다.
지난 1988년 도 유형문화재 제169호로 지정된 `동백정'은 세조 4년 의정부 좌찬성 동촌 김린(1392~1474)이 관직에서 은퇴한 후, 은거하기 위해 가정사를 건립한 데서 비롯했다. 가정사는 선조 17년 공의 후손인 운암 김성장에 의해 중건됐고 이때 김린이 심어놓았던 동백이 울창함에 정자의 이름을 `동백정'이라 개명했다.
“동백정은 예부터 고위층들이 여름에 풍류하며 머무르던 곳”이라면서 “이 때문에 지금도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 가운데 하나”라고 소개했다.
김씨는 “지난 35년 동백정을 비롯한 문중산 제각 등이 법원 경매에 처하게 됐으나 조부이신 고 김봉규 선생이 사재를 털어 오늘에 이르게 됐다”면서 “넉넉지 않은 살림에서도 동백정 등을 지키고자 했던 조상의 뜻을 받들어 청주김씨 문중과 함께 보존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앞으로 장흥군과 협의를 통해 `동백정' 앞의 공간을 활용, 준설작업을 통해 하천을 만든 후 배를 띄워 관광명소화 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동백나무 외에도 비자나무 등을 식재해 울창한 자연숲을 가꿔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의 동백정 건물은 1872년 후손들에 의해 중수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집이나 1895년 중건할 때 측면으로 1칸을 더 내어 현재는 정면 4칸의 형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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