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박는 소리로 비가 내리고

탕탕탕 제 몸에 못을 박아 관이 되는 나무들

돌 속에 앉은 우리는 밥을 먹는다

아카시아 뿌리가 돌 속을 파고들면

진한 그 향기에 취해

우리는 짐승이 되어 밥을 먹는다

('오래된 경전' 중).


북은 치는 것이 아니여

타는 것이제

더덩더덩 덩따쿵따

가락을 따라감서 손을 움직이먼

어긋나는 것이여

가락이 몬야 쩌만치 가불제

떵따쿵따 덩따쿵따

그냥 가락에 몸을 얹어사제

('춤꾼 이씨' 중)


장흥군 장동면 만손리 출신인 이대흠 시인이 최근 발간한 시집 <물속의 불>에 실린 시의 일부분이다.

애달프고 흥건한 전라도 사투리와 억양에서 남도의 한과 정서가 흠뻑 묻어난다. 90년대 시단의 젊은 시인 군 중에 가장 독특한 시법을 가진 이대흠(40) 시인이 6년이라는 긴 침묵과 장고 끝에 세 번째 시집 <물 속의 불>을 펴냈다.

이 시인은 인터넷 홈페이지‘이장닷컴’을 운영하며 전라도 사투리에 대해 오래동안 취재, 연재할 만큼 전라도 사투리와 사투리적 시어법, 애달프고 흥건한 전라도 억양의 시어 표현으로 유명하다. 그의 시적 생기는 어째쭉지를 흔들거리게 하는 남도 소리와 가락에서 나온다. 또 그런 그의 시어들은 어머니의 문법을 닮아 있다고 평자들은 평한다.

이번 시집에는 ‘소떼가 사라져간 작은 구멍’ ‘연리지’ ‘구강포에서’ 등 서정성 짙은 작품과 함께 ‘불 속의 물’등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시대상을 소재로 한 비장한 분위기의 작품 31편이 1, 2부로 나뉘어 실렸다.


이 시집은 제목에서 암시하고 있듯이 상반되는 두 개의 심층이 서로 충돌하면서 내용을 이끌고 있다. 1부에 주로 등장하는 개인서정과 2부에 나타나는 광기의 역사의식이 바로 그것이다. 지킬과 하이드처럼 상반된 얼굴의 시들이 서로를 바라보게끔 배치한 이 시집은 시인의 세계에 대한 인식변화로도 읽을 수 있다. 1부가 안온한 것처럼 보이는 현재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면, 2부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광기로 가득한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좀 더 깊이 있게 살펴보면, 상반된 것처럼 느껴지는 1,2부의 내용은 결국 나의 줄기를 통해 연결된 한 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평온해 보이는 1부 개인서정 세계의 표층을 뚫고 들어가면 거기에는 치명적인 독이 들어 있다. 그리하여 개인서정의 세계에 있어서도 그의 시는 심한 에로스적 파탄의 형태를 보인다. 이것이 바로 광기의 과거 역사와 연결된 개인의 병든 정서인 것이다.

이렇게 광기로 점철된 세계와 개인의 시간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시인은 어머니들의 생활감각을 제시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것을 끌어안고 삭히는 어머니의 품, 그것이야말로 가장 평화와 상생을 이끌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임을 시인은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대흠 시집에 대한 평은…

이대흠의 시에 대해 손택수 시인은 “이대흠 시의 생기는 몸을 흥얼거리게 하는 남도의 저 유장한 가락에서 나온다.

'가을이란 게 뭐 별거간디/서석대 입석대 저 물오른 무등이/억새꽃 흐드러진 흰 꽃 냄새로/대구 분지쯤에 콱 박혀버리는 것이제'(「철푸덕 철푸덕」)라고 말할 때 그의 시는 한껏 달아오른 몸을 들고 난 호흡의 결을 알뜰하게 옮겨놓고 있다.

몸을 통과한 말들은 모두 저저끔의 고유한 풍경을 지니고 있기 마련. 몸과 세계의 울림을 통해 싱싱한 날비린내를 뿜어내는 그의 시는 무엇보다 둥근 어머니의 문법을 닮아 있다. 세상의 모든 각을 둥글게 구부려 품어주는 ‘우리들의 받침인 어머니’. 이번 그의 시집은 고단한 삶의 굽이굽이에서 간힘으로 어머니를 쥐었다 논 흔적(「손금」)이라고 할 수 있다.

각별한 것은 원형적인 음들의 상징으로 가득 찬 시편들의 맞은편에 근대의 폭압적 역사와 문명에 대한 뼈아픈 성찰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와 신화, 문명과 원시 사이에서 다채로운 파문을 일으키며 일관된 해석으로부터 끝없이 미끄러져나가는 시. 자신이 공들여 쌓은 문법을 허물면서 늘 새로운 성채를 건축하기 위해 무모한 열정에 사로잡혀 있는 시. 누군가 파악된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붉은 심장을 가진 나무’의 이 아픈 박동음을 먼저 들어볼 일이다.”라고 평했다.

또, 박성우 시인은 “돌에서 ‘타닥타닥 솟구치는 물소리’를 듣거나 아지랑이를 타고 올라오는 뱀의 숨소리를 ‘랑랑랑’ 듣기도 하는 이대흠 시인은, 내가 도무지 들을 수 없는 영역의 소리를 낭랑하게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시인이다.

이렇듯 다소 몽환적으로까지 보이는 시인이 ‘불에 닿은 쇠붙이처럼’ 뜨겁게 녹아내리며 써내려간 이번 시집 <물 속의 불>은 ‘시인의 손끝에서 파닥파닥 발기하는 꽃들’로 가득하다.”고 평했다.

■이대흠 시인은 누구인가

이씨는 지난 94년 그의 나이 26세 때 <창작과비평>에 ‘제암산을 본다’ 등 6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시는 조금 난해한 편이다.

“시인으로서 예술가가 아니라, 예술가로서 시인을 꿈꾼다”는 이 시인은 난해함에 대해 “아직 힘이 넘칠 때 극한까지 가보자는 생각이다, 에베레스트를 오른 자에겐 마을 뒷산은 쉬울을 것이다”면서 말한다. 그런 이유에선지 1999년 간행된 그의 첫시집 <눈물속에는 고래가 산다>(창작과비평)는 대중적 인기보다는 문학도들에게 꾸준히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이 시집을 텍스트로 한 시평론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작가세계>1999년 여름호에 단편 ‘있었다 있다’로 소설부문 신인상을 수상, 소설가로서도 등단하고, ‘사랑방 신문’ 등 여러 매체에 전라도 문화기행 등을 연재하는 산문가로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 시인은 지난 1999년 여름, 고향의 선배인 사진가 마동욱씨와 목포에서 문산까지 철길 도보여행의 풍경을 담은 산문집 <그리운 사람은 기차을 타고 온다>를 간행하기도 했다.

▲1967년 전남 장흥 만손리 출생 ▲서울예술전문대학, 조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 1994년 <창작과비평>으로 작품활동 시작 ▲1999년 <작가세계> 소설 등단 ▲시집 <상처가 나를 살린다>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 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자 ▲현대시동인상, 애지문학상 수상 ▲<시힘>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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