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석/수필가
▲김창석/수필가

1998년 크리스마스 날, 미국의 군인 찰스c, 크룰랙 장군은 판티고 해병대 기지에 도착했다. 크룰랙은 당연히 사병 한 명이 초소에서 보초 근무를 서고 있으리라고 예상했다. 놀랍게도 보초는 없었다. 더 놀라운 것은 제임스 매티스 준장이 보초를 서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특별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보초근무 당번인 병사에게는 가족이 있었고, 매티스는 그가 가족과 함께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티스는 그 병사보다 20살 이상 연상이고, 그 시간에 할 일들이 많았을 텐데도 평범한 병사의 지루한 보초 임무를 대신 맡았다.

하나의 ‘가십’에 불과했던 이 일화는 소문을 타고부터 상관의 부하에 대한 감동적인 사랑과 특권을 내려놓는 전설적인 이야기로 세상에 회자되고 있다. 재목 매티스는 2017년 미국의 제26대 국방장관에 오른다.

지도자는 이기심이 없어야하고 희생할 줄 알아야 하며 조직 내의 결핍을 다른 모든 구성원과 똑같이 감내해야 한다.

매티스는 이를 영국의 군인 윌리엄 슬림 장군이 쓴 글에서 배웠다고 한다.

언젠가 매티스는 임무를 게을리 하는 한 중위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휘권의 특권은 지휘하는 것이다. 더 큰 막사를 배정받는 것이 아니다.”

최고의 지휘관은 오히려 더 작은 막사를 선택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식량을 병사에게 넘긴다. 자신에게 더 관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엄격하다.

어려울 때마다 역사의 교훈은 우릴 일깨운다.

고대 그리스의 군인이자 작가 크세노폰이 그리스의 1만 병사를 이끌고 페르시아에서 철수할 때 한 보병이 이렇게 불평했다.

“우리는 바닥을 걷고 있습니다. 당신이 말을 타고 가고 있을 때 나는 지친 몸으로 방패를 짊어지고 가란 말입니까?” 이 말을 들은 크세노폰은 바로 말에서 내려 방패를 짊어지고 갔다.

‘상사’라는 것은 하나의 직위다. ‘지도자’ 라는 것은 언행으로 얻어내는 위치다. 그 자리는 자기 절제를 발휘함으로써 다른 누군가를 대신해 비난을 받아 내거나 책임을 지는 희생의 순간을 통해서 도달해야 한다. 우리는 대장동에서 그 반대의 상황을 목도했다. 비아냥과 검은 양심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절제를 말할 때 그리스인은 전차를 모는 마부의 모습과 비교해 설명하곤 했다. 전차의 마부는 엄격함과 다정함, 부드러운 손길과 억센 주먹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줄 알아야 한다. 

성공은 자기 통제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는 않는다. 힘든 일이나 행위의 결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성공하고 나서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 짐을 지고 가는 것도 기꺼이 도와야만 한다. 보상을 받아들일 때는 그에 따르는 책임도 받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안토니누스는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 때 아내에게 이제부터 더욱 관대해야 함을 상기 시켰다. 또한 자신에게는 더욱 엄격해지고, 통제해야 한다고도 말했다.“이제 우리는 제국을 얻었으니 예전에 가졌던 것조차 잃은 것이요.”

오늘날 정치권력 집단은 음모, 협잡, 부정 비리의 온상으로 타락해 버렸다. 어떤 지도자는 제국을 얻을 것 같은 만용에 아내의 비서실을 넓히고, 직원을 시종 부리듯 특권을 남용한 의혹과 사법 리스크 다발을 지고 이웃집 드나들 듯 법정에 소환 되면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 통 큰 행보가 기이하다.

속절없이 이를 지켜보는 속인들은 분노마저 체념한다.

지도자는 가장 먼저 나타나 마지막으로 떠난다. 비판과 비난을 받는 것도 지도자의 몫이다. 나머지 모든 것은 허울과 직함뿐이다.

자명해 보이는 일이지만 애석하게도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 하지는 않는다.

선거구민은 역병과 가뭄 등으로 고통 받고 있을 때 의정활동을 구실삼아 관광성 해외출장을 즐기는 의원도 있다.

또한 팬데믹 기간에 자기 봉급을 포기한 경영자가 있는가 하면 정부 보조금을 챙기고, 직원들을 해고 한 후 저들끼리 경영진에게 상여금을 지급하는 회사도 있고, 공중보건을 위해 일선에서 밤샘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골프게임 뒷 풀이로 고급요정 이나 레스토랑에서 화려한 만찬을 즐기는 특권층도 카메라에 흔히 잡힌다.

이뤄낸 일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반드시 충족해야 할 기준도 더 높아진다. 가진 것이 더 많아질수록 더욱 이타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도자는 위험한 상황에서는 가장 앞에 서야 하고 보상받는 자리에서는 맨 뒤에 서야 한다. 임무에는 가장 먼저 나서고 상훈에는 뒤로 물러서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을 자신이 하겠다고 표를 달라며 나선 일이 아니던가, 그것이 바로 지휘의 특권이다. 잠시 위임된 명예이자 만능지팡이 즉 특권 말이다. 그걸 따내기 위해 눈물까지 보이며 저리도 안달이다.

앞으로 22대 총선에서 당선된 선량들이 명념해야 할 덕목이며 가치일진데 과연 해 낼까, 또 4년 동안 유심히 지켜볼 일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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