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정/한학자
 김규정/한학자

[지난 호에 이어]
卜地而居 神羊現形於雲門山之靈有白羊間百年 徃徃出遊 數百年來 無有見羊之言矣 今有白羊來遊道場 猶如豢犬一會 老少日日常見 有緣而至 靈龜幻胎於華藏岩形如龜 故云龜岩 難忘法恩 建影堂而奉安先師之眞影 不違佛制 立䂓繩而施設後昆之模䂓 且彜倫之重 不限空門 是以父母 生前盡力供給 至於死後 十薦魂於冥聖 屢遷墓於幽原四遷父墓 九遷母墓 自然至誠感天 畢竟明穴有地 又收錄祖父兄三世不替之孝行 先受行錄於當世大儒奇學士正鎭 次受墓誌於裕祿大夫洪駙馬顯周 又受序文於左議政洪相公奭周 奉朝賀金判書履易 於是縉紳先生 雄儒巨擘 爭闡叩鯉氷以爲登龍門 遠播口銘 永傳竹帛名爲松溪孝行錄 庶可免程子所謂不明不仁之責也 程子曰 父母有美而不知不明也 知而不現不仁也 孰謂我佛之敎 自外於三經五典耶 八萬藏中首揭大報父母恩重經者 良有以也 始知天叙天秩 亘古今磨滅不得 年至希四道光二十年庚子即憲宗六年也 切以己事未了爲慮 別搆小屋於先師影堂上 古寒谷道人行道之處 世諦諸緣 一刀兩段 欲以佛祖所傳之看話門無孔鎚 爲日用中茶飯 決期命盡前 了辦大事 以爲來生出頭現成受用之道也 歲在咸豊壬子今上三年四月二十四日未時 示有微恙 現入火定 應東身者八十六 春服西戒者六十八夏 瑞氣自西 而直貫龕上 光明環四而普照山中 欲壽美蹟 竪塔于禪雲 不忘尊儀 奉幀于華藏 門人奉琪 盥手焚香 謹誌一篇 一生事業 大都修學明倫而已 何也 戒行嚴淨 頗順佛制 習定均慧遠離痴邪 此是修學也 事親如佛 實爲至孝 孝爲行源 擧一例諸 此是明倫也 修學乃眞緇侶之模楷 明倫亦是俗士之慚愧 嗚呼 和尙雖生於此濁刼偏方之外 欽惟行德 且尊且貴 實不愧於古今天下之中 二十四日未時入滅 即日淸明無一點雲靄 唯瑞氣粲然 移時乃消 二十八日拾骨 而夜無月光 又霧罩雲籠 道場漸明 人影分明 遠山昭然 至於展經讀文 無不昭著 大衆歡喜讃歎 乃於設壇禮拜 念佛千周而畢

출전 : 설두 유형雪竇有炯(1824~1889)의 [少林通方正眼]

살 만한 곳을 가려 정해(卜地) 살지만 운문산(雲門山)의 신령함은 백양(白羊)이 백년간 살고 있으면 신양(神羊)으로 형체를 바꾸어 나타낸다고 하니 이따금씩 다른 곳에 나가 놀 때는 무려 수백 년 동안이나 양을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 백양이 도량에 와서 놀고 있지만 오히려 개를 기르는 사람을 한번 만나는 것과 같았다.

늙은이와 젊은이가 날마다 항상 보고서 인연이 있으면 찾아오고 신령스런 거북(靈龜)이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로 환태(幻胎, 변화하여 잉태함)하자 바위 형태는 거북과 같았으므로 구암사(岩寺)라 부르면서 법은(法恩)을 잊기 어려워 영당(影堂)을 건립하고 선사(先師)의 진영(眞影)을 봉안했다.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계율(佛制)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법도(規繩)를 세우고 후학의 규모를 만들고 또 소중한 인륜기강(彜倫)을 공문(空門)에만 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 생전에는 힘을 다해 봉양(奉養, 供給)하고 죽은 뒤에 이르러서는 그윽한 성인(冥聖)에게 열 번이나 천혼문(薦魂文)을 올렸다. 

유택이 있는 언덕의 아버지 묘전에서는 네 번 천혼문을 올리고 어머니 묘전에서는 아홉 번 천혼문을 올리며 자주 묘전에서 천혼문을 올리자 자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필경 명당(明穴)이 있는 땅은 또 할아버지 아버지 형 3세의 그치지 않는 효행을 수록하게 하니 먼저 행록은 당세의 대유 기 학사 정진(當世大儒奇學士正鎭)에게 받았고 다음에 묘지는 유록대부 홍 부마 현주(裕祿大夫洪駙馬顯周)에게 받았고 또 서문은 좌의정 홍 상공 석주(左議政洪相公奭周)와 봉조하 김 판서 이역(奉朝賀金判書履易)에게 받았다. 

이때에 벼슬아치들(縉紳先生)과 선비 어른 거벽(雄儒巨擘)들은 서찰로 두드리고 다투어 밝히며 입신출세의 관문(登龍門)으로 여겼다.

구명(口銘)이 멀리까지 퍼지고 역사에 영원히 전하고자 이름을 <송계 효행록松溪孝行錄>이라 했다.

아마도 정자(程子)의 이른바, “불명불인의 책임(不明不仁之責也)”은 면할 수 있으리라.

정자가 말하기를, “부모에게 아름다움이 있는데 알지 못하는 것은 밝지 못한 것이고 알면서도 드러내지 못한 것은 어질지 못한 것이다(父母有美而不知不明也知而不現不仁也).”라고 했다.

누가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은 삼경오전(三經五典) 밖에 있다고 말하는가. 팔만장경 가운데 첫머리에 〚대보부모은중경大報父母恩重經〛을 들어 말했으니 참으로 그 이유가 있었다.

비로소 천서천질(天叙天秩)을 알아서 고금에 까지 뻗쳐 마멸되지 않았고 나이가 일흔 넷에 이르렀으니 도광24년(?도광20년) 경자년 곧 헌종6년(1840년)이다.

몹시 자신의 일을 아직도 끝내지 못함을 생각하다 선사 영당 가(先師影堂上)에 따로 작은 집을 지었는데 옛날 한곡도인(寒谷道人)이 도를 행하던 곳이었다.

온갖 세속의 도리(世諦)와 모든 인연을 단칼에 동강내고(一刀兩段) 불조들이 전한 간화문중(看話門中)의 “구멍 없는 철퇴(無孔鎚)”의 화두를 일상생활 속에서 다반사로 삼고 목숨이 다하기 전에 기한을 결정해 큰일을 해결하고 내생 출두(來生出頭)는 지금 성취해서 도를 받아쓰고자 생각했다.

지난 함풍 임자년 철종3년 사월 스무 나흗날 미시에 가벼운 병세를 보이시더니 지금 불의 선정(火定)에 들었다.

동방의 땅에 태어난 지가 86년이고 서방의 불교 계율을 행한 지가 68년이니 상서로운 기운이 서쪽으로부터 와서 감실 위를 똑바로 관통하고 밝은 빛이 사방을 두르자 보조 산중은 아름다운 자취를 축수하고자 했다.

선운사에 탑을 세우고 존귀한 모습을 잊지 않기 위하여 화장 문인(華藏門人, 岩寺門人) 봉기(奉琪, 설두 유형)가 영당(影堂)에 영정(影幀)을 봉안(奉安)하고 손을 씻은 다음에 분향하며 삼가 한 편을 기록한다.

일생의 사업은 대부분 수학과 명륜(修學明倫)일 뿐이었으니 어째서 인가.

계행(戒行, 毘尼)이 매우 청정(嚴淨)하고 자못 순순히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계율(佛制)을 따랐으며 습정균혜(習定均慧, 당나라 규봉 종밀이 선정을 닦으면서 지혜도 균등하게 한다고 주창한 불교 교리)는 어리석고 사특한 견해(痴邪, 愚痴邪見)를 멀리 여의었으니(遠離) 이것이 바로 수학(修學)이다.

어버이 섬기기를 부처님과 같이 하여 참으로 지극한 효도를 실천했고 효도가 행실의 근원이 되었으니 하나의 예를 들어 모든  것에 비기면 이것이 바로 명륜(明倫)이다.

수학은 바로 참 승도들이 본받아 배울 만한 본보기이고 이 명륜도 세속 사람들은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오호라, 화상은 이 탁겁(濁刼)의 악한 세상(惡世) 벽지 밖에서 태어났을지라도 삼가 생각하건대 실천한 덕은 높고도 귀하니 실제로 고금 천하 가운데서 부끄럽지가 않았다.

스무 나흗날 미시에 입멸하시니 바로 청명일로 구름안개 한 점 없이 오직 상서로운 기운만이 찬연하게 빛이 났고 시간이 지나 불꽃은 바로 시들어 스무여드렛날 습골하자 밤중이라 달빛이 없는 데다가 또 안개까지 덮고 구름이 에워싸지만 도량이 점점 밝아지더니 사람 그림자가 분명해졌다.

먼 산이 밝게 뚜렷해져서 경전을 펼치고 글을 읽어도 환히 드러나지 않음이 없었을 정도였으니 대중들은 환희심을 일으키고 찬탄하며 이에 설단에 예배를 올리고 염불을 일천 번 낭송하면서 마쳤다.

注)

臨濟三句 - 임제 의현臨濟義玄 선사가 제시한 3구句에는 석가세존께서 일생一生동안 선禪과 교敎를 통하여 말씀하신 취지가 모두 포괄되어 있으므로 ‘모든 가르침을 간직한 3구(蘊摠三句)’라고 이름한다.

한 승려가 임제에게 어떤 것이 진불眞佛이고 어떤 것이 진법眞法이며 어떤 것이 진도眞道냐고 묻자 임제 선사가 말하기를, “부처란 마음의 청정함이고 법이란 마음의 광명이며 참된 도란 온 누리에 걸림이 없이 비추는 청정한 광명의 작용이니 이 셋은 이름만 다를 뿐 하나이다. 진정한 도인은 잠깐 동안도 마음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또 덧붙여 말하기를, “제1구에서 깨달으면 불조사佛祖師가 될 것이고 제2구에서 깨달으면 인천사人天師가 될 것이며 제3구에서 깨달으면 제 몸도 구제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喩於蜂牎 - 밖으로 나가려고 애쓰지만 아무 효과도 없다는 말이다.

옛날 중국의 신찬 선사(神贊禪師)가 창 아래서 불경을 읽다가 벌이 창호지를 뚫고 나가려는 것을 보고 “세상은 이처럼 드넓은데 드넓은 곳을 통해 나오려 하지 않고 내내 묵은 창호지만 뚫으려 하는구나.”라고 하고는 “열려 있는 문으로 나가려 하지 않고 창호지만 뚫으려 하니 참으로 어리석네. 묵은 창호지를 백 년 동안 뚫은들 어느 날에 나갈 수 있을까.〔空門不肯出 投窓也大癡 百年鑽故紙 何日出頭時〕”라는 게송을 지었다. 《五燈會元 4上》

水母 - 수모는 해파리이다. 해파리는 耳目이 없으므로 사람을 피할 줄 모르는데 해파리에 의지하여 붙어사는 새우가 사람을 보고 놀라기 때문에 물속으로 들어가 피한다는 水母目蝦의 이야기가 晉나라 郭璞의 [江賦]에 나온다.

薦魂 - 불보살님께 재를 올리고 독경 의식 등을 함으로써 불보살님의 가피력에 의지하여 망령으로 하여금 극락세계나 천상세계에 태어나도록 기원하는 의식.

不明不仁 - 조상의 행적을 알지 못하고 알면서도 전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예기> 제통(祭統)에 “선조에게 아름다움이 없는데 이를 칭송하는 것은 속이는 것이고, 선이 있는데 알지 못하는 것은 밝지 못한 것이고, 알면서 전하지 않는 것은 어질지 못한 것이니, 이 세 가지는 군자가 부끄러워하는 바이다.(其先祖無美而稱之, 是誣也 : 有善而弗知, 不明也 : 知而弗傳, 不仁也 : 此三者, 君子之所恥也.)”라고 한 말이 있다.

三經五典 - 君爲臣綱 父爲子綱 夫爲婦綱과 五典은 오상(五常), 즉 오륜(五倫)을 말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예로부터 ‘부의(父義)ㆍ모자(母慈)ㆍ형우(兄友)ㆍ제공(弟恭)ㆍ자효(子孝)’라는 <춘추좌씨전>의 해석과 ‘군신유의(君臣有義)ㆍ부자유친(父子有親)ㆍ부부유별(夫婦有別)ㆍ장유유서(長幼有序)ㆍ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는 《맹자》의 해석 두 가지가 있었다.

天叙天秩 - 천서는 군신(君臣)ㆍ부자(父子)ㆍ형제(兄弟)ㆍ부부(夫婦)ㆍ붕우(朋友)의 순서이고, 천질은 존비(尊卑)ㆍ귀천(貴賤)의 등급이다. 《書經 皐陶謨》

◆설두 유형雪竇有炯(1824~1889) 세수 66

속성은 이씨李氏, 본관은 완산, 속명은 봉문奉聞ㆍ봉기奉琪, 전라도 곡성 출생. 19세 때 백암산 지장암 쾌일快逸을 은사로 득도하였다. 조계산 침명 한성枕溟翰醒에게 사교四敎를 배우고 멀리 백파 긍선白坡亘璇의 법을 이었다. 철종2년(1851)에 화엄강주가 되었고, 영광군 모악산 불갑사佛岬寺를 중창하였다. 고종26년(1889) 천마산 봉인사奉印寺에서 선문강회禪門講會를 열고 그해 가을 순창군 구암사龜巖寺로 돌아와 입적하였다. 고창 선운사의 경담鏡潭, 순천 선암사의 함명函溟과 함께 조선 말기 3대 화엄종주로 일컬어졌다.

저서 [少林通方正眼] 말미에 스승 백파 긍선의 행장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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