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정치적으로 양극화 되어 탄핵과 특검, 색갈이니 문법이니 극렬하게 대립하고 있는 우울하고 민감한 시기에 위안이 되는 햇빛, 참답게 길을 연 한 분단 국가의 훌륭한 지도자에 대한 기록이 필자의 독서 노트에 올랐다.

역사 속에서 존경받는 민족 통일의 집념을 실행에 옮긴 지존, 링컨대통령과 빌리브란트 서독 총리의 위상과는 비할 바 못 되지만, 종교적 분쟁과 세대간 갈등으로 갈라진 민족의 통합을 소통과 화해로 이끌어낸 묻혀있는 한 지도자의 이야기가 솔깃하다.

아일랜드와 북 아일랜드는 1920년대에 나뉘어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웃이며 한 겨레이다. 이웃과 다투는데 지친 마음이 싸움을 푸는 실마리이다. 아일랜드 전 대통령 메리매컬리스가 한 말이다.

눈만뜨면 기독교와 카톡릭교도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는 북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자란 메리 매컬리스는 수가 적은 카톨릭교도여서 온 식구가 고향 벨파스에서 쫒겨나는 아픔도 겪었다.

남을 탓하면 사고력이 굳어지므로 고향에서 쫒겨났는데도 집안 식구 누구도 보복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매컬리스는 다른 사람들과 사는 길이 뭔지를 찾는 버릇이 생겼다.

매컬리스는 나쁜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북아일랜드 명문 퀸스 대학 법대 출신으로 인권운동 변호사로 활동하며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 법학과 교수가 되었다. 그 후로 방송기자, 하원의원출마 그리고 퀸스대 최초 여성 부총장에 올랐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 “북아일랜드 신교도와 구교도 사이에 다리를 세우겠다.”고 외치며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그의 취임 일성은 “관저가 세금으로 운영되니 나라 사람들을 마땅히 반겨야 한다. 또 관저는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짓밟힌 역사를 일깨워주는 곳이기도 하다.”로 출발한다.

매컬리스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 맨 먼저 관저 문을 열어 제쳤다. 토요일마다 대통령 관저를 개방하여 구경오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누구든 대통령을 찾으면 반갑게 찾아 가겠다.”고 반대표를 던진 사람들까지 끌어들이며 ‘국민 대통령’이라 불린 매컬리스는 7년 임기를 마치고 2004년 다시 출마 했을때는 높은 지지율에 눌린 야당이 후보를 내지 않아 무투표 당선 될 만큼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국민은 이런 지도자를 갈망한다.

낮은 지지율과 소통에 인색한 대통령, 퇴임후 머물 사저 꾸미기에 소란을 피우던 그릇이 작은 대통령과는 그 격이 비교된다. 부끄럽다.

매컬리스는 대통령이 되어 가장 힘쓴 일은 사회 각계 각층을 잇는 다리 노릇이었다. 유대가 강한 아일랜드는 두가지 분열이 있다.

하나는 오랜 분쟁 역사를 이어온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가 갈라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구 세대로 나뉜 다툼이다. 흡사 오늘날 한국의 정치 현상과도 상황이 닮은 꼴이다.

이런 사회 구성원 사이에 생긴 틈을 메우는데 힘쓴 업적이 재임 배경이 되었다. 특히 인구 절반을 이루는 여성의 사회 참여에 정성을 쏟는데 힘입어 15년 동안 20만명이 넘는 여성이 일터로 나왔다.

그러나 세계 금융위기를 맞아 아일랜드 경제가 주저 앉으면서 실업 위기를 맞은 국민이 많았다. 그는 금융위기에 고통 받는 아일랜드 경제를 가리켜 이렇게 흔든다. “그동안 일궈온 높은 성장 비결이나 경제 위기를 벗어나는 길은 다르지 않다. 정부, 경제계, 노조 등 사회를 이끄는 이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사회연대’를 이뤄 내야 한다.

“새가 한 날개로 날 수 없듯이 경제 위기를 넘어 서는데도 두 날개로 날아 오르도록 해야 한다.” 한편 은근히 정치적 함의를 내 비치는 수사다.

매컬리스는 덧붙여 힘주어 말한다.

“우리가 거듭 싸우면 기회만 잃을 뿐이다. 화해와 용서는 새로운 미래를 여는데 반드시 있어야 하며, 과거와 화해하는 일은 미래를 바꾸고 실패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게 하려는데 있다.” 이에 반대파도 이성적인 판단으로 동의 했다. 우리에게 아픈 충고다.

북아일랜드 갈등은 1998년4월10일 벨파스에서 아일랜드 공화국과 영국, 북아일랜드 8개 정당이 어울려 평화 협정을 맺으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빨강과 파랑의 경계선이 지워진 것이다.

우리는 공들여 꿔매놓은 군사 합의 마저 뜯어 버렸다.

저쪽에선 당장 방아쇠를 당길 것처럼 반응하며 잠잠하던 연평도 해안에 포연이 터지고, 감시초소가 복원되는 등 거기에 우크라이나, 가자전쟁까지 겹쳐 위협과 충격이다. 인내의 폭발이 오히려 더 큰 긴장을 촉발 한 것은 아닌지 변방 대피소의 민심은 한 숨 속에 냉랭하다.

메컬리스의 국가 경영철학은 우리가 학습해야 할 과목이다.

길조일까? 공교롭게도 한국의 제22대 총선일 4월10일은 아일랜드 평화협정일과 같은 날짜다. 질서있는 공명선거에 몰입 해야 한다.

현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냉담한 정서를 감안할 때, 그 현장에 있는 정치인에 대한 실망과 혐오를 씻어내고 바른 정치가 회복 되기 까지 길은 멀고도 가깝다. 주권자의 현명한 선택만이 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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