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정/한학자
김규정/한학자

◆艸衣大宗師(1786~1866) 詩文

▶重成一枝庵 일지암을 다시 세우다.

烟霞難沒舊因緣 옛 인연은 연하도 숨기기 어려우니

甁鉢居然屋數椽 승도는 그 모양 그대로 두어 칸 집 올렸다.

鑿沼明涵空界月 못을 파 허공의 달 확실하게 담고

連竿遙取白雲泉 백운천석에 줄지은 낚싯대 멀리서 가져왔다.

新添香譜搜靈藥 새로 증보한 향보에서 영약 찾고

時接圓機展妙蓮 때때로 원만한 근기 접해 법화경 펼친다.

礙眼花枝剗却了 꽃가지가 눈을 가려 잘라버리자

好山仍在夕陽天 석양하늘에 아름다운 산은 그대로 있다.

注)

圓機(원기) - 원돈기근(圓頓機根)의 약칭이다. 원돈은 원만돈족(圓滿頓足)의 뜻으로 갑자기 깨달음을 얻어 신속히 성불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말하고 기근은 교법(敎法)을 받을 근기(根機)와 교법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원활(圓滑)한 기봉(機鋒 창이나 칼의 날카로운 끝․공격이나 언변의 날카로움).

妙蓮(묘련)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일명 법화경(法華經). 대승 경전(大乘經傳)의 하나로 불타(佛陀)의 종교적 생명을 설파한 것인데 모든 경전 중에서 가장 존귀하게 여겨지는 책이다.

其二

禪因緣結墨因緣 참선으로 인연 맺고 한묵으로 인연하니

架翠空濛屋聚椽 푸른 시렁에 부슬비 뿌려 집 서까래 모았다.

卓錫先於飛鶴響 주지는 학 울음소리 보다 앞서고

尋香從自下流泉 악신은 하류 천에서 자원하는 대로 따랐다.

手栽㝎出三花樹 손수 심은 삼화 수는 곧바로 나오고

身淨長依九品蓮 청정한 몸은 구품연대에 오랫동안 앉아있다.

覓句有時叅色相 이따금 시구 찾다 외물 구경하니

山茶紅發雪中天 눈 내리는 하늘에 동백꽃 붉게 만발했다.

注)

卓錫(탁석) - 주지를 말한다.

尋香(심향) - 제석천(帝釋天)을 시봉하면서 음악 연주를 담당하는 악신(樂神)이다.

三花樹(삼화수) - 인도(印度)에서 나는 패다수(貝多樹)의 이명(異名)으로 이 나무는 1년에 꽃이 세 번 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九品蓮 - 구품연대(九品蓮臺)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이 깊은 자가 사후에 서방극락세계에 가서 몸이 연화대(蓮花臺)에 앉는 것이다. 연화대는 생전 수행의 깊이에 따라 9등급이 있는데 구품연대는 최고 일등이다.

●一粟庵歌 幷序 己酉  일속암가 서문을 쓴다. 헌종15년(1849)

靑海之陽羣巒䕺翠而挿天有白磧伽倻之谷㝡其淸秀面幽曠民以奧僻鮮能居焉巵園子聞之悠然長狂結茅於嵩崖之陽種田於寒㵎之側耕雲釣月露宿風餐如是力作三十秊未嘗一日廢置詩書克以用力於三餘之暇依然自是太古之逸民也旣年老氣衰㪅起一室於後洞之水窮處以爲安養終焉之所是其所謂一粟山房也己酉冬訪余敍舊旣歸以草衣行一篇寄來用其韻作一粟山房歌以謝

완도북쪽 푸른 숲속에 많은 산이 하늘에 솟았으니 백적산은 가야의 골짜기에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청수한 산기슭은 그윽하게 트였어도 백성들이 오지벽지라고 하는데 잘 살 수가 없다. 황 치원 선생은 침착하여 서둘지 않아도 오랫동안 미쳤다고 소문이 났으니 높은 낭떠러지 남쪽에 초가집을 짓고 차가운 계곡물 곁에서 씨 뿌리며 밭 갈고 낚시한다. 이와 같이 바람과 이슬을 무릅쓰고서 한데서 먹고 자며 삼십년 동안 힘들게 일하면서 하루도 시서를 폐하여 그만둔 일이 없었다. 능히 삼여의 겨를에 힘을 써서 이로부터 의연하게 태고의 은자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늙어 기력이 쇠하자 다시 뒤쪽 골물이 다하는 곳까지 가서 한 칸의 집을 지어 심신수양을 마치는 장소로 삼았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일속산방⟫이다. 기유년(1849) 겨울에 나를 찾아와서 예전에 이미 돌아가서 서술했던 ⟪초의 행⟫ 일편을 부쳐왔으니 그 운을 사용하여 ⟪일속산방가⟫를 지어 이로써 사례한다.

注)

三餘(삼여) -  한 해의 끝인 겨울. 하루의 끝인 밤. 때의 끝인 음우(陰雨)의 시간 등 잉여의 시간을 말한다.

白磧山㴱人到稀 백적산은 깊어 사람 드물게 오니

苔紋五色石生衣 오색 이끼무늬만 바위 옷으로 자란다. 

誅茅結廬傍烟霞 띠 풀 베어다 초암지어 안개노을 곁에 두고

流水聲中靜掩扉 흐르는 물소리에 조용히 사립문 닫는다.

春陰襏襫和雨鋤 흐린 봄날 도롱이에 빗속 김매도 어울리고

日暮巾車載雲歸 해지면 휘장 친 수레 구름 싣고 돌아온다.

又能讀書聲琅琅 또 독서 잘하면 글 읽는 소리 낭랑하고

夜燃松昉光輝輝 밤에는 관솔불 피워놓자 빛 밝게 빛난다.

咏物時時發孤詠 이따금 영물시 모방하여 혼자 시 읊고

詠盡花鳥到咿喴 화조 다 읊고는 선웃음 치며 부끄러워한다.

自從雲窓寢花影 홀로 구름 어린 창가서 꽃 그림자와 잠자니

誰憐珮冷失珠璣 시문 잃어도 차가운 패물 그 누가 동정하랴.

淸美賢順天上福 맑고 아름답고 어질고 온순한 천상의 복

人間應難久相依 인간은 응당 오래도록 서로 의지하기 어렵다.

伊來一粟重營㴱 그때부터 으슥한 일속산방 다시 짓고서

蘭芝萱菊藹菲菲 지란 원추리 국화 가꾸자 향내도 풍성하다.

搗藥聲孤山㪅靜 약 찧는 외로운 소리에 산은 다시 고요하고

流花力大溪仍肥 흘러가는 꽃 힘 커지자 시냇물 불어난다.

志渺渺兮藏冥運 뜻 아득해도 굳건한 운수 갈무리하고

語默默兮斡玄機 말은 묵묵하면서도 심오한 도리는 주선한다.

玄機高秉翻新局 심오한 도리 높게 잡아 새로운 국면 뒤집고

廿載禱天願無違 이십년 하늘에 기도하며 소원 이루었다.

雪窓閒題艸衣行 눈 내린 창가에서 한가로이 초의 행 쓰니

雲情鶴態想依俙 학 자태 같은 벗 그리워하는 마음 아련하다.

新庄幽趣不言一 새집 그윽한 정취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只道太古山長圍 다만 오래도록 둘러싼 태고의 산을 말한다.

注)

咏物(영물) - 영물시(詠物詩). 나무와 꽃 새와 짐승 같은 동식물에서부터 일상 속의 사물 심지어 미물이라 할 수 있는 벌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연물들이 창작의 소재로 동원된다. 

默默(묵묵) -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는 모양. 조용하여 아무 소리가 없는 모양.

玄機(현기) - 심오한 도리. 현묘한 이치.

雲情(운정) -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하는 말. 도잠(陶潛)의 시 〈정운(停雲)〉의 서문에 ‶정운은 친구를 그리워하는 것이다.〔停雲思親友也〕″라고 했다. 

▶次韻寄答一粟菴主人 

일속암 주인에게 차운하여 부치며 화답하다.

丹丘營一粟 단구에 일속암 지으니

瀟灑水雲間 물구름 사이에 산뜻하고 깨끗하도다.

凉愛風前竹 바람 앞 대나무는 서늘해 아끼고

明憐雨後山 비 그친 뒤 산은 너무 밝아서 사랑한다.

不病那知老 아프지 않은 늙은이 어떻게 아나

無忙已忘閒 바쁠 것 없어도 한적함은 진작 망각했다.

可惜遊仙子 애석해라 신선과 노닐어도

未透死生關 여직 사생의 관문도 뚫지 못했구나.

注)

丹丘(단구) - 단구는 밤이나 낮이나 항상 밝은 땅으로 선인(仙人)이 산다는 전설적인 지명이다. 굴원(屈原)의 〈원유(遠遊)〉에 ‶우인을 따라 단구에서 노닒이여, 죽지 않는 옛 고장에 머물렀도다.〔仍羽人於丹丘兮, 留不死之舊鄕.〕″ 하였다. 《楚辭 卷5》

역자 注)

초의 선사 64세 때(헌종15년1849) ⟪一粟庵歌 幷序⟫와 ⟪次韻寄答一粟菴主人⟫ 등을 지었다. 이 해 겨울에 황 치원(黃梔園)은 시를 지어 초의에게 증정했다.

▶白雲洞見白鶴翎有作 己亥秋

백운동에서 백학의 날개를 보고서 시를 짓다. 

헌종5년(1839) 가을.

亭亭特立暎秋林 우뚝 솟아 가을 숲에 비치니

仙鶴風流檀麝襟 선학 풍류 향나무 내음은 옷섶을 감돈다.

白玉莊成新月面 새로운 달빛에 백옥처럼 장엄하고

黃金間點翠蘭心 난초 위 비취새 사이사이 황금 점 박혔다.

應從天上今纔降 응당 천상에서 오늘 겨우 내려왔으니

豈向人間容易尋 어쩐다고 인간세상을 섣불리 찾아보겠나.

憐爾羞霑凡雨露 그대는 비이슬에 다 젖어 가련한데도

慇懃移入白雲深 은근하게 깊은 흰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注)

亭亭 - 우뚝하게 높이 솟은 모양. 아름다운 모양.

特立 -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홀로 섬. 여럿 가운데서 특별히 뛰어남.

翠蘭心 - 두보(杜甫)의 ⟪戲爲六節⟫ 시의 넷째 수에 ‶혹 비취새가 난초 위에 앉은 곳은 볼지라도, 푸른 바다에서 고래를 끌어올리지는 못하지.〔或看翡翠蘭苕上 未霄鯨魚碧海中〕″ 라고 하였다. 

역자 注)

백운동은 전라도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안운마을 백운동 계곡을 가리킨다. 순조12년(1812) 다산과 초의는 월출산을 오른 뒤 이곳을 방문하고 하룻밤을 묵으며 많은 기록을 남겼다.

■초의 의순艸衣意洵(정조10년1786~고종3년1866) 세수 81

전라도 무안 삼향 출신. 속성은 흥성 장(張)씨이며 字는 중부(中孚)이고 法名은 의순(意洵), 法號는 초의(草衣), 일지암(一枝庵)은 재호(齋號)이다. 15세 때 나주 남평에 있는 운흥사로 출가하여 19세 때는 해남 대둔사(大芚寺)에서 완호(玩虎) 납승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탱화를 잘 그렸으니 소치(小痴) 허련(許鍊)도 초의 문하에서 수업했다.  

강진에 유배 중이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훈도로 유학과 시문을 배웠으며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ㆍ자하(紫霞) 신위(申緯)ㆍ해거도인(海居道人) 홍현주(洪顯周) 등 당대 석학과 교유했다. 39세 때 대흥사 뒤편에 일지암(一枝庵)을 중건하고 <초의집(艸衣集)>ㆍ<동다송(東茶頌)>ㆍ<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ㆍ<이선내의(二禪來義)>등을 저술한다. 

55세 때(1840) 헌종(憲宗)으로부터 ‶대각 등계 보제존자 초의 대종사(大覺登階普濟尊者草衣大宗師)″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 

세수(世壽)는 81세이고 법랍(法臘)은 66년이다. 해남 대둔사 13대종사이다.

대흥사 가허루
대흥사 가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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