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아이들은 행복으로 비유된다. 이 말이 맞다면 미래세대의 반딧불인 아이들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사회는 행복도 자취를 감추는 썰렁한 곳이 되고 만다.

자녀를 갖기로 결심하기 까지는 부부간의 뜻이 합치 되어야 하므로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책임이 따르고 어느 정도 자유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업보로서 숭고한 본능일 뿐 아니라 삶의 중요한 목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자녀를 기르면서 배우게 되는 삶의 의미와 성찰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겨우 숨을 쉬는 생명으로 태어나서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해 가는 모습은 아이가 선물하는 경이로움이다.

불과 50년 전 만해도 한국은 한 가정에서 대 여섯명 이상의 자녀를 출산하는 나라였다. 칠공주, 10남매 자녀를 낳은 부부는 대단한 이야기 거리도 못되었다.

그런데 2022년 한국의 합계 출산율이 세계 최저인 0.78 그 중에서도 서울시가 0.59 퍼센트로 나타났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서울과 수도권으로 엄청난 인구 집중 현상으로 분석되었다.

그 밖에 한 기업체에서 조사한 결과 육아로 인한 경제적 부담, 사회 미래에 대한 막막함 실효성 없는 정부 출산정책, 일과 가정 양립의 고충 등이 원인으로 꼽혔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물으면 대부분 결혼은 하더라도 아이만큼은 낳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자신이 겪은 ‘교육지옥’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는 심리와 고용, 주거, 양육 등 경제적 이유로 기피하는 현상이다.

최근 뉴스에 의하면 한국의 결혼 5년차 가정의 46.4 퍼센트가 무자녀 가정으로 나타났다. 청년 세대 또한 20년 전보다 200만 명이나 감소되었다. 해마다 저출산 대책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 부어도 물먹은 하마처럼 끄떡없다.

하지만 단순히 교육체계를 비판하고 미래경제의 두려움에 가정의 희망인 자녀를 포기 한다는 것은 이상적이지 않다.

나는 어디서 나왔는가? 내 대를 끊겠다는 마지못한 절규는 조상에 대한 불효 일수도 있다.

이러한 현상과 관련 있는 생소한 용어로 ‘링크족’이 등장했다.

링크족이란 결혼을 하고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하면서도 아이를 낳지 않는 많은 맞벌이 부부를 가리키는 말이다.

즉 수입은 두 배로 늘었지만 둘 만의 생활을 좀 더 풍요하고 단란하게 즐기려는 가치관을 갖고 있는 세대들이 이에 속한다.

이처럼 종족 보존의 본능과는 괴리된 요즘 젊은 세대들의 결혼관에 대해 어른들이 아무리 그 역설을 주장하고 설득해 본들 그런 회유에 냉소적이며 구닥다리로 치부해 버리니 속앓이만 깊어간다.

간혹 우리들은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기존 세대들조차 그런 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경향은 충격이다.

하지만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아이를 갖는 것 또한 아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둘 다 정당화 하기란 쉽지 않다.  

모든 인간은 운명적으로 어느 정도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인류가 생존을 이어가는 한 어차피 미래의 아이들 중 일부는 분명히 심각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음이다. 그 질서에 순응해야 하지 않을까.

고령화 문제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가족간의 긍정적인 유대 관계가 소원 해지는 이유중 하나로 저출산을 꼽히기도 했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갑자기 큰집이 어느날 부터 텅 비어 버린 듯 적막감마저 느끼게 된다.

인간은 누구라도 타인을 보살피고 애정을 표현하고 싶은 본능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간절함은 지극히 순수한 감정이다.

출산율은 낮아지는데 그 대체 수단으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족 수가 급격히 증가 하고 있는 추세만 봐도 알 수 있다.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많은 젊은 세대들이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어 이제 네 가구 중 한 가구 이상이 반려동물을 한 가족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 가정에서 충족되지 못한 사랑의 욕구를 그것으로 채우고 싶은 것이다.

출산과 양육은 분명 새로운 세계로 발을 내딛는 일이다. 이 낯선 세계로의 모험은 지금까지 삶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곳에서의 삶이 두렵게 느껴지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나 한 몸, 부부 두 사람이 살아가기도 벅찬 상황에서 딸린 아이는 축복보다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팔자에도 없는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를 만나고, 아이까지 찾아 오는 행운을 포기 해야만 하는가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볼 일이다.

내가 보기엔 새하얀 면사포속의 미소 머금은 신부의 표정, 그 가는 떨림은 ‘최고의 완성된 여자의 美 였다. 세상에 기쁨을 선사하는 꽃송이 였다. 신이 오직 여자에게만 베푼 선물이 아닌가?

그 영광을, 그 축복을, 정녕 그대는 마다하려는가.

희망의 2024년 갑진년 세밑에서 간절히 소망해 본다.

새해는 예식장마다 웨딩마치가 계속 울려 퍼지고, 새내기 가정의 주변에서 옥동자, 아기공주가 잉태하고 순산했다는 기쁜 소식들이 만개하기를, 더불어 아이들의 짖궂은 웃음소리와 주렁주렁 매달린 손주들과 3대가 정겹게 손잡고 소풍가는 꽉 찬 거리의 풍경을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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