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착각이란 한 마디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사회적 거짓말이다. 목소리가 큰 소수가 집단 전체를 대변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

집단 착각의 비유는 ‘미운 오리새끼, 인어공주’등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로 유명한 아동문학의 최고봉인 덴마크의 안데르센이 1937년 발표한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을 떠올려 볼 수 있다.

허영심이 많은 임금님에게 임금을 위한 멋진 옷을 마련했다며 사기꾼 두 사람이 찾아왔다. 사기꾼들은 그 옷이 매우 아름답지만 오직 똑똑한 사람들의 눈에만 보인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 누구도 멍청한 사람으로 보여지는게 싫어 사기꾼의 장단에 입을 맞추기 시작 했다. 그 옷은 심지어 존재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결국 임금님은 벌거벗은 채 위풍당당한 태도로 마을을 가로 질러 행진하기 시작 했고, 그 때 한 소년이 나타나 진실을 말 하면서 주문은 깨어진다.

만약 집단 착각이 동화속의 우화라면 몰라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실제 발생하고 있는 집단 착각 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그런 오해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확산되어 사회에 악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극단이 지배하는 정치는 우리 편이 하는 정치만 옳고, 상대가 하는 정치는 악으로 규정하는 증오와 독선, 독주만 가득하다.

서로를 향한 불신의 벽을 높게 쌓을수록 상대방의 진면목을 바라보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집단 착각에 빠진 우리는 몇몇 선동가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해 버렸다.

인터넷이 상용화 되고 SNS가 사람들의 일상을 담아내는 그릇 역할을 하면서 세상은 선동가들이 판치는 그들의 게임장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두 진영으로 갈리어 극한 대립을 하는 양극화, 세대간 불통 등 각자의 우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문화적 고립의 시대를 살게 되었다. 가정도 우정도 빨강이니 파랑이니 다툼으로 서로를 경계하는 현실이 슬퍼진다.

사람들은 대개 정당이나 기업, 종교단체, 각종 동호회 등 집단에 소속 되어 있다. 그리고 내 집단에 널리 퍼진 도덕적 진실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경향이 일반화 되었다.

도덕적으로 논란이 되는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다수 집단의 반응을 따라가게 마련이다. 도덕적 진실은 집단을 하나로 묶어둔다.

어느 문화권에서나 구성원들은 집단의 도덕적 진실에 따르라고 개인을 강하게 압박한다.

우리 편이니까 옳다. 이탈하면 변절자로 낙인찍혀 집요하게 공격받고 쫒겨나기도 한다. 더불어 민주당의 강성 추종자들인 개딸, 세력의 폭거가 그 걸 반증한다.

최근엔 반대편에 대한 증오의 극치는 총알 심판까지 꺼내 겁박하며 섬뜩한 전율을 느끼게 했다. 이정도면 문자 스토킹, 수박 깨기, 원정시위를 넘어선 테러 수준에 임박한 것이다.

이처럼 어느 도덕적 이슈에 대해 내 집단의 입장이 도전을 받게 되면 우리는 그 입장을 방어하려고 한다. 심지어 내집단의 냉정한 입장에서 진실을 왜곡하는 거짓말 같은 의구심이 생길 때 조차도 그렇다.

한 정당 수뇌의 사법 리스크를 탄압과 위법, 조작으로 덮어 씌우려는 가당찮은 모의에 함께 공범이 되는 것 정도는 내 집단의 소생을 위한 정의요, 의무인 것이다.

거기다 확증편향 또한 타협과는 담을 쌓는 고질적인 독소 조항이다.

우리의 뇌는 자기 오류를 깨닫는 것을 아주 질색 한다.

‘확증편향’이란 자신의 가치관 신념에 부합하는 첩보만 레이저 유도탄처럼 집요하게 찾아가는 답답한 습관이다.

우리가 영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정보가 가득 쌓여 있는데도 거기엔 눈길 하나 주지 않는다. 오직 자기와 정치 성향이 비슷한 매체를 통한 뉴스만을 선호하고 맹신한다.

심각하게는 음모론자를 절대 설득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은 자기의 믿음에 부합하는 증거만 선택적으로 취하고 다른 증거는 아예 외면 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명백한 증거를 또박 또박 짚어줘도 소용이 없다. 적이 공격해 온다 싶으면 오히려 보루를 쌓고 더 끈덕지게 버티며 물려고 덤벼든다.

우리 뇌는 이렇게 현명한 결정을 가로막는 장벽을 가득 세워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다 좋은 건줄 알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혼자만 튀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독자적 모험을 선택 하느니 사람들과 잘 어울려야 한다는 소통을 구실로 현명한 본능마저 억누르고 남들을 따라 하는 통념에 사로 잡혀 있다.

하여 집단의 압력 앞에서 누구도 감히 “글쎄요 그게 정말 최선일 까요?” 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과연 나는 집단착각, 확증편향, 집단강제의 사고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저작권자 © 장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