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란 인사, 화해, 감사 따위의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두 사람이 각자 한 손을 내밀어 마주 잡는 행위를 일컫는다.

무엇보다도 그리던 사람들이 오랜만에 만나면 상대방의 어느곳을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인간의 자연스런 정인가 보다.

악수는 세계어 이다. 처음 만난 사람과 첫 인사를 나눌때도 보통 악수를 나눈다. 아는 이와 만났을 때, 다정한 女人과 헤어질 때도 악수 한다. 불화 끝에 되찾은 화해를 할 때도 악수 한다. 악수의 효능은 크고 다양하다.

사람들은 찬 겨울엔 맨 손을 잠바나 코트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데 익숙하다. 나의 경우 추운 겨울날 길을 거닐면서 물건을 들고 가느라고 손을 내놓고 가다가 저만치서 아는사람, 꼭 악수를 해야만 될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을 보면 당황 할때가 있다.

내 손이 너무 차갑기 때문이다. 순간 오른손에 들었던 물건을 왼손으로 옮기고는 얼른 오른손을 호주머니 속에 넣곤 한다.

어쩐지 차가운 손을 상대에게 덥석 내미는 것이 실례가 되는 것만 같아 대비한 배려인 셈이다.

악수를 나눌 때 손이 참 따습다는 상대의 칭찬 한마디는 분명 하루의 컨디션에 청신호다. 어쩌면 상대가 근거리에 접근 했는데 손을 호주머니에 넣어 잠시 덮혀 본들 얼마나 따뜻해 질까만, 그나마 최선의 성의를 보이고 싶은 충정 이리라.

누가 나의 조약돌 만한 성의를 알아주고 말고 그런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나의 따뜻한 체온이 상대에게 전달될 때 내 스스로가 뿌듯해 지므로 그것만으로 만족한다. 또한 인상적으로 오래 간직 될것이기에.

우리는 저마다 세상이 왜 이리 삭막하고 강박해졌는가 하고 한탄하면서도 세상이 그렇게 된 요인에 내 자신도 한 몫 거들고 있다는 중대한 사실을 망각하기 일쑤다.

적어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나의 책임도 조금은 있겠지 하는 슬기로운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내 마음은 달팽이처럼 안으로 가둬둔 채, 남만이 먼저 자기에게 따뜻하게 접근해 오기를 바라는 인색한 태도는 버려야 하지 않을까.

사람의 마음은 본시 안으로 잠기기 마련이다. 밖에서 아무리 노크를 해 봤자 안에서 열어주지 않으면 마음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여닫이 핸들은 안에만 닫혀있기 때문이다.

버스나 열차 안에서 옆자리에 앉아있는 승객의 옷에 묻어 있는 실밥이나 지저분한 것을 저쪽에서 의식하지 못하게 뜯어준다는 마음씨라든지, 추운 겨울 빙판위 노인을 잠시 부축해 준다든지 등.... 이런 자잘한 친절이 이 땅에 넘쳐 흐르기만 한다면 세상은 훨씬 화기롭고 살 맛 날 것이다.

실제로 나는 언젠가 도심의 인도에 쓰러져 있는 한 80대 노인이 일어서려고 끙끙대는 고통스런 모습을 보고 동정심이 발동 했던지 부축 하여 안전한 곳까지 안내했던 적이 있다.

그 선행의 뿌듯함은 그 후 내가 살아가면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할때마다 고개들어 깊은 위안과 희망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악수는 정(情)이다. 교류하는 동안 따듯한 체온이 흐르고 생동의 맥박이 뛴다.

동지애 같은 결속이 깃들여 있는 적어도 한 인간의 정을 대표한 손과 손의 껴안음이다. 그러기에 악수는 ‘당하는’법이 없고 서로 ‘스스로’가 베푸는 마음으로부터 우러 나오는 미소와도 같은 그 무엇이다.

악수가 세계어 라는 풀이는 간단하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 듣지 못하는 사람들, 앞을 못보는 사람들끼리도 악수는 아무 설명 없이 통한다.

처음 만난 세계 정상들 간에도 오랜 친구처럼 단 번에 포옹으로 이어지는 통로이다. 대표적으로 떠벌이 트럼프와 독재자 김정은이 그걸 훌륭하게 해 냈다.

나는 연륜이 높은 분들과 악수를 나눌 때 뜻밖에 나의 볼을 붉게 하는 러브신에 감동을 받는다. 어떤분들은 내 손을 부드럽게 쥔 다음 다시 왼손으로 쓰다듬듯이 겹악수를 해 준다.

마치 새끼가 둥우리 속에서 어미 품 안에 안긴 듯 포근한 느낌이 들게 한다.

너무도 감격스런 호의에 대한 충격이랄까 나도 모르게 상대의 손 등에 내 손을 포개 겹 악수로 답례한다. 오른손만으로 성의가 부족해서일까? 왼손까지 얹어주는 넘치는 그 정일(情溢) ...

그래서 더욱 추운 날 언 손을 녹여 악수를 준비하는 나의 예지야말로 내가 지닌 마음의 미덕이요, 매력이라고 간혹 생각들기도 한다.

반면 요즘 우리 정치권의 협상 테이블에선 감동이 없다.

요란스런 카메라 세례속에 악수(握手)로 시작한 협상이 번번이 악수(惡手)만을 두고 결렬되는 모습들은 입신한 선량들의 명예롭지 못한 처신으로 비춰진다. 악수의 정신을 훼손한 것 같아 안스럽고 거슬린다.

다행히도 윤석열 대통령께서 지난 국회 시정연설 후 야당 의원들의 의석을 찾아가 일일이 악수를 내미는 장면은 모처럼 흐뭇한 정치 감각의 묘미였다.

다만 대통령의 악수에 민감한 머리띠 골수들의 반항은, 안 하면 불통이라 쑤셔대고 하면 꼼수라고 퇴짜놓는 어깃장은 퇴행이요 좀스럽다.

이제 정치 지도자들의 협상 말미에 활짝 피는 겹악수 장면을 자주 보고 싶다. 그것이 진정 국민과의 악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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