夢賚亭春帖(몽뢰정춘첩)/임당 정유길
먼저의 임금 때에 머리 흰 노판서
한망(閒忙) 때 분수 맞게 편안하게 사는데
어옹은(漁翁) 따뜻하다고 쏘가리를 드리네.
白髮先朝老判書    閒忙隨分且安居
백발선조로판서    한망수분차안거
漁翁報道春江暖    未到花時進鱖魚
어옹보도춘강난    미도화시진궐어

봄이 되면 춘첩을 써서 붙였다. 입춘이 되면 대문이나 대들보, 기둥, 천장 등에 좋은 글귀를 써서 붙였다. 

입춘첩 또는 춘첩자, 춘축이다. 많이 쓰이는 글귀가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다.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한다는 뜻이다. [壽如山富如海] 등도 있다. 한가하고 바쁘거나 분수를 따르고 또 편안하게 살았는데, 늙은 어부는 봄 강물이 따뜻해졌다고 알리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꽃 피는 시절도 이르지 않았는데 쏘가리 드린다(夢賚亭春帖)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임당(林塘) 정유길(鄭惟吉:1515~1588)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호는 임당(林塘), 상덕재(尙德齋)이다. 1538년(중종 33) 문과에 장원, 전적이 되고, 공조좌랑·정언·이조좌랑·중추부 도사를 지냈다. 1544년 이황·김인후 등과 함께 사가독서했고, 대사헌에 이어 예조판서에 승진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먼저 임금 때의 머리 흰 노판서 / 한가하고 바쁘거나 분수를 따르고 또 편안하게 살았네 // 늙은 어부는 봄 강물이 따뜻해졌다고 알리면서 / 꽃 피는 시절도 이르지 않았는데 쏘가리 드린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몽유정의 입춘 주련첩]으로 번역된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저자도와 그 인근에 많은 정자가 있었다 한다. 왕실 소유의 제천정, 화양정을 비롯하여 선비들이 지은 몽뢰정, 수월정 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몽뢰정 정자도 선비들이 모여 술과 함께 풍류를 즐겼던 것으로 생각되는 조선의 풍류의 한 산실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은 노 판서와 어부의 한 생활상을 훤하게 들여다보는 시상 주머니는 풍부해 보이는 시적 그림을 은근히 매만진다. 먼저 임금 때의 흰머리가 많았던 노판서가 있었는데, 한가하거나 바쁘거나 분수를 따르고 또 편안하게 살았다고 했다. 늙은 ‘판서’와 어기적거리는 늙은 ‘어부’라는 대구법이라는 시적인 멋을 찾는다.

화자는 시적인 반전을 시도하는 봄 경치와 시절에 맞지 않는 쏘가리를 대비하면서 어부의 정성어린 심회를 엮어 나간다. 늙은 어부는 봄 강물이 따뜻해졌다고 알리면서, 꽃 피는 시절도 아직 이르지 않았는데 쏘가리를 드린다고 했다. 쏘가리는 아마도 철이 이른 고기이지만 마침 판서를 위해서 인지 용케도 한 마리가 잡혔던 모양이다. 그것도 운이 좋았을까?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전조 임금 노판서가 분수따라 편안하네. 봄 강물의 늙은 어부 쏘가리를 드리면서’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春帖: 봄에 쓴 글, 입춘 때 기둥에 써 붙인 글. 白髮: 백발. 先朝: 먼저 임금 때, 老判書: 늙은 판서. 閒忙: 한가하고 바쁘게. 隨分: 분수를 따라서. 且安居: 또한 편안하게 살았다. // 漁翁: 늙은 어부. 報道: 알라다. 春江暖: 봄 강물이 따뜻하다. 未到: 이르지 않다. 花時: 꽃필 때. 進   魚: 쏘가리를 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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