漫興贈郞(만흥증랑)/이옥봉
버들 숲 강 머리에 님 오시나 말울음

반쯤 깨인 취한 얼굴 다락 앞 내리고
거울에 초췌한 얼굴 반달눈썹 그리네.
柳外江頭五馬嘶    半醒愁醉下樓時
유외강두오마시    반성수취하누시
春紅欲瘦臨粧鏡    試畵梅窓却月眉
춘홍욕수임장경    시화매창각월미

남자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여자의 심리는 더 했던 모양이다. 남자에게 어리광도 부려보고 귀염도 토해보고 어딘가 의지해 보고 싶었음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였겠다. 이런 심리는 나이의 고하를 떠나서 모든 사람들에게 두루 통하는 말일 수도 있다. 어린이는 어른에게 나이든 사람은 젊은이들에게 의지하거나 어리광을 부린다. 버들 숲 강 머리에 임이 오시나 말울음 소리 들리고, 반쯤 깨인 듯이 취한 얼굴로 다락 앞에 내리시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매화 핀 창가에 앉아 반달눈썹을 그려 보네요(漫興贈郞)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이옥봉(李玉峰: ? ~ ?)으로 여류시인이다. 조식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선조 때 승지에 오른 조원의 소실로 들어간 그는 이후 다른 소실들과 서신으로 예술적 교류를 많이 나누었다. 조원의 친구 윤국형 또한 지사의 기개가 엿보이는 그녀의 시에 감탄했다고 전해졌던 인물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버들 숲 강 머리에 임이 오시나 말울음 소리 들리고 / 반쯤 깨인 듯 취한 얼굴로 다락 앞에 내리시네 // 거울을 들여다보니 얼굴이 초췌한 듯하여서 / 매화 핀 창가에 앉아 반달눈썹을 그려 보네요]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임에게 장난삼아 어리광을 부리다]로 번역된다. 예나 이제나 아내가 남편에게 농을 걸면서 우스갯소리를 했던 모양이다. 이를 시적인 감흥으로 불어 넣으면 더욱 깊어진 농의 정도를 느낄 수 있다. 시상은 마치 수수께끼와 같아서 알듯 모를 듯, 넘길 듯 넘지 못할 듯 그렇게 초점을 맞추면서 나아가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였다.

시인은 이런 데 착안하여 은근하게 남편에게 시적인 감흥을 담아 선경의 그림을 그려 보이려고 했으렷다. 버들 숲 강 머리에 임이 오시는지 말울음 소리가 나니, 반쯤 깨인 듯 취한 얼굴로 다락 앞에 내리신다고 했다. 이쯤 되면 과거의 자기 모습에 반쯤 얼굴을 화끈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전구에서 화자는 남편에 대해 거론하더니만, 정구에서는 자신에 대해 거론하며 두 사람의 상관관계를 맺어보려 한다. 거울을 살며시 들여다보니 얼굴이 초췌한 듯하여, 매화 핀 창가에 앉아 반달눈썹 그려 본다고 했다. 남편을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초췌한 모습보다는 보다 간결하고 예쁜 모습을 보이겠다는 여심을 보이는 시상을 만나면서 농은 진심으로 담아내는 도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임 오시나 말울음에 다락 앞에 내리시네. 거울 얼굴 초췌한 듯 반달눈썹 그려보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柳外: 버들 숲, 江頭: 강가, 五馬嘶: 말음 소리가 들리다. 半醒: 반쯤을 깨다. 愁醉L 취한 듯하다. 下樓時: 다락 앞에 내릴 때. // 春紅: 얼굴. 欲瘦: 초췌하다. 臨粧鏡: 화장대의 거울을 보다. 試畵: 시험 삼아 화장을 하다. 梅窓: 매화가 핀 창가. 却月眉: 문들 달의 눈썹. 곧 반달눈썹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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