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정/한학자
▲김규정/한학자

◆謝朴進士 良直

海上奉別 不知年 每憶疇曩 娓娓團話 不禁心神之飛越 料外一封珍札 來入牕間 眼界忽淸 急手折緘 乃是平生竹湖叟 陽月七日所出者也 何處淹留 今始至此 圭復再三 却忘遲延之久 而有年閡隔音信 煥然一幅紙面 人間有何樣喜慰能敵是㦲 伊時起居 雖幸細悉 而書已作數月前事 中間動靜 窅然還昧 殊可悶菀 山人一上湖中 牽引學伴 遷移西南 無情歲律 已屬殘臘 前去六十 只隔七年 而言外之旨 象外之玄 隨手失去 血衰齒豁 幾作一老洫 棄置頭陀 平昔文字上學解 渾無賴於生死門 自分雖欲奮一層志槩 別究宗門上頭關 復陽得乎 落地初年 受畀凢魯 已無餘力 及此地此生 只如是而止耳 愛我君子 必見憐深也 賛文再此書及 雖不敢當 而尤見眷戀之情 老而冞篤 拜謝千萬 居成涯角 陪晤未易卜 臨書 尤用悵惘 不備 

[雪潭集]下

◆박 진사 양직에게 사례하다.

바닷가에서 작별한 햇수는 모르지만 매양 지난 번 흥미진진했던 단란한 담화를 떠올리면 심신이 들뜸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뜻밖에 서신 한통이 창가에 이르고 보니 갑자기 시야가 맑아졌습니다.

급하게 손으로 봉함을 뜯어보니 이는 바로 평소 알고 지내던 죽호 노인께서 시월 이렛날 보낸 것인데 어느 곳에선가 오랫동안 머물다 이제야 비로소 이곳에 닿았습니다.

몇 번씩 반복하여 읽어보고서 도리어 오랫동안 지연되었다는 것을 새까맣게 잊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해 동안 밀리고 사이가 떴던 소식이 환연하게 한 폭의 지면에 나타나 있으니 인간세상 어떤 모양의 즐거움과 위로가 이에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의 일상생활을 비록 다행하게도 자세하게 다 알 수 있었지만 편지는 이미 수개월 전에 작성한 것이기 때문에 중간의 동정은 아득하고 도리어 어두워서 끔찍하게도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저는 충청도에서 올라오면서 학업 친구들을 이끌고 서남으로 옮겨왔습니다.

무정하게도 한 해가 벌써 겨울 끝자락에 접어들었으니 앞으로 예순이 칠년이나 남았는데도 말 밖의 뜻과 세속 밖의 현묘함을 즉석에서 잃어버렸습니다.

혈기는 쇠하고 이는 빠진 거의 욕심이 넘치는 한 늙은이가 되어 두타행과 평상시 문자에서 알음알이도 그냥 내버려두고는 생사의 문에서 온통 따분하기만 했습니다.

스스로 아무리 한층 지조와 기개를 떨쳐 별도로 종문의 높은 관문을 궁구하려고 해도 다시 돌이킬 수가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 태어난 초년부터 무릇 노둔함을 타고났고 이미 여력이 없는데다가 이 한평생을 이 땅에서 살다보니 다만 이와 같은 데 머물 뿐입니다.

나를 아끼는 군자께서는 반드시 가련하게 여기시어 글을 지어 재차 이런 서신을 보내주시니 감당할 수는 없더라도 더욱 간절히 생각하며 그리워하는 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늙을수록 점점 더 깊이와 넓이를 더해 갔으니 천만 고맙습니다.

서로 간에 멀리 떨어져 살아서 직접 만나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으니 편지를 씀에 더욱 근심과 걱정으로 경황이 없습니다.

갖추지 않았습니다.

注)

圭復再三 -  ‘삼복백규(三復白圭)’를 바꾸어 쓴 것이다. 몇 번씩 반복하여 읽다. 《논어》 〈선진(先進)〉에 “남용(南容)이 백규(白圭)를 읊은 시를 〈하루에〉 세 번 반복해서 외우니, 공자께서 그 형의 딸자식을 그에게 시집보내셨다.〔南容三復白圭, 孔子以其兄之子妻之.〕”라고 보인다. 

◇朴良直(숙종39년1713~ ? )

字는 士溫. 本貫은 咸陽. 거주지는 全羅道 靈巖郡. 父는 朴淳坤. 兄은 朴陽藎. 32세 때(영조20년1744) 갑자(甲子) 식년시(式年試) [생원] 2등(二等) 19위(24/100)했다.

역자 注)

영암 구림에 살았던 박양직은 연담 유일의 문집에도 수차례 노출되는 세속 사람이다. 당시 승려들과 교제의 범위가 넓은 학문과 인품이 출중한 선비 같다.

◆答維麽寺中

寺以不慧 齒錄秉拂者 前日屢却書 不以辱 又枉委札 叢林盛風 比諸逈殊 感又感也連 伏審祁寒 政履珍毖 院中葆貞 慰釋叵量 僕日前瘇氣未瘳 尙爾負席呻椘 此悶何喩 命招旣出 輿議懃 使至三 優何人 敢更遲回 不即戒錫 而終孤其望也 第以不慧 不啻病難 道途之役 赴此屬耳 且有新講 未盡之缺 前此又到仙嵓大會之請 請亦不可等視者也 此際 去就在此 未免有數飛之譏 去仙山 跡水未淸 旋有挑包向彼之擧 移徙重事也 一猶爲難 況再三而疊萃衆唇舌者耶 然則蹲此過歲 而春向仙嵓 罷會後 觀機何 所謂萬全之計也 玆不得頷諾於回使 寺不如不書 此不如不奉書 雖曰勢也 彼此之無聊 尙復何言 若無意副請 而托故如是云 則非其情也 天日有照耳 早晩不可不一作不請客 點汚淨界 倘不以此執嫌 而深鎻洞雲耶 呵呵 餘附歸舌 不宣

[雪潭集]下

◆유마사에 답하다.

유마사에서는 지혜롭지 못한 저를 불자(拂者)를 쥐고 강론하는 사람으로 등용하려고하니 예전에도 자주 물리치는 서찰을 보냈습니다마는 욕되게 여기지도 않으시고 또 서찰을 보내주시니 총림(叢林)의 성대한 풍조가 특별히 남달라서 감격하고 감격하였습니다. 

서찰을 받고서 매서운 추위에도 정황(政況, 政履, 體候)이 만수무강하고 절집에서는 정도(貞道)를 지킨다니 위안이 됨을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전부터 앓던 종기가 낫지를 않아서 아직까지도 자리를 지고 신음하고 있으니 이 근심을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겠습니까. 

유마사로부터 초청한다는 살뜰한 여론에 심부름꾼이 세 번이나 이르렀으니 제가 어떤 사람이라고 이렇게 우대하십니까.

감히 또다시 머뭇거리며 그곳으로 나아가지 않고 끝내 어떻게 되리라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다만 지혜롭지 못한 저는 병이 들어 견디기가 어렵지만 갈 길은 험난해도 조만간 그곳으로 달려가겠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강의는 미진해 결락된 부분이 있고 이보다 먼저 또 선암대법회에서 요청이 있었으니 이러한 요청도 등한시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요즘 거취는 자주 옮겨 다닌다는 비난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선산(仙山)을 떠나며 밟았던 물이 맑아지기도 전에 되돌아 저곳으로 움직이려고 걸망을 싸서 메었습니다.

이사는 중대한 일입니다.

한 번도 오히려 어렵지만 하물며 두세 차례 겹쳐 사람들의 구설에 오르는 일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곳에 머물면서 세월을 보내다 봄이 오면 선암사로 가서 대법회를 마친 다음에 기미를 살펴 어디로 갈지 결정하는 것이 이른바 만전의 계책 같습니다.

이에 돌아가는 심부름꾼에게 머리를 끄덕거리며 승낙도 못하니 유마사에 서찰을 쓰지 않는 것만도 못하고 이것은 서찰을 받들지 않는 것만도 못합니다.

비록 형세도 그렇지만 피차가 섭섭한 마음(無聊)에 오히려 다시 무슨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초청에 부응하려는 뜻이 없으면서 핑계를 대고 이와 같이 말을 한다면 제 본심이 아닙니다.

하늘의 해가 비추고 있을 뿐입니다.

조만간 불가불 한번 찾아뵙는 불청객이 되어 청정한 불계를 더럽히고자 합니다.

혹시 이 때문에 미움을 사서 구름 동천을 굳게 닫지는 않겠지요. 하하! 나머지는 돌아가는 인편에 말로 전합니다.

이만 줄입니다.

注)

維麽寺 - 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모후산(母后山)에 있는데 백제시대인 무왕28년(627)에 중국에서 건너온 유마운(維摩雲)과 그의 딸 보안(普安)이 창건하였다. 

◆謝上南平尹洪羅僉學士

悄然旅窓 千金情問 披霧落案 喜氣可掬 而況伏悉雪寒硺瑚琿 僉氣味味道淸腴 尤慰區區者誠矣 以不告別 走他山爲薄情 恐未達形器外深旨 是爲悶甚 心期若入平生難忘地 何用停工團欒坐 閑叙別爲也 一片吳月 長在天中 相照兩鄕心好矣 新居乃無等之巓也 水淸山靜 無一點塵想 或可竹杖芒鞋 聯翩來遊否 佳山麗水 能發人之好意思云也 羅公秀雅淵默 氷神玉骨 每來余心上亦知緣也 便發意外 走艸未盡情

  [雪潭集]下

◆남평의 윤ㆍ홍ㆍ나 학사들에게 사례하여 올리다.

쥐 죽은 듯이 고요한 객창에 천금과도 같은 정다운 안부 편지가 안개를 헤치고 서안 머리에 도착하니 기쁜 기색을 주체하지 못하겠습니다.

더구나 엄동설한에 수재들을 가르치시느라 여러분들께서는 온갖 흥미가 맑고 풍족하다는 것을 아니 더욱 위로되는 마음 그지없습니다.

작별을 고하지 않고서 다른 산으로 달아난 것을 박정하다고 여기신다면 아마도 형체(形器) 밖의 깊은 뜻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것이 매우 근심스럽습니다.

마음으로 평생 잊기 어려운 경지로 들어가기를 기약한다면 어떻게 하던 일을 멈추고 단란하게 앉아 한가롭게 작별의 회포를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한조각 남녘의 달이 오랫동안 하늘에 떠 있으면서 두 고을을 잘 비추고 있습니다.

새로 거처하는 곳은 바로 무등산 꼭대기입니다.

물은 맑고 산은 고요하여 한 점 속세의 생각이 나지 않는 곳입니다.

혹여 죽장망혜(竹杖芒鞋, 대지팡이와 짚신, 간편한 차림새)로 날렵하게 찾아오시어 유람하실 수 있으신지요.

좋은 산에 맑은 물은 사람으로 하여금 아름다운 의사를 일으키게 할 수 있습니다.

나 공(羅公)은 수려하고 우아하여 말없이 침묵을 지키고 얼음처럼 맑은 정신과 고결한 풍채는 늘 내 마음에도 인연임을 알게 합니다.

뜻밖에 서둘러 써서 뜻을 다 펴지 못합니다. 

모후산 유마사 일주문 (2)
▲모후산 유마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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