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相   (의상암)/복재 기준
높은 누대 우뚝 솟아 안개 속에 들었고
구름 걷힌 푸른 바다 한 눈에 끝없는데
봉우리 달 솟았으니 바닷바람 뚫고 있네.
高臺矗矗入煙空    雲盡滄溟一望窮
고대촉촉입연공    운진창명일망궁
三十六峯秋夜月    玉簫吹徹海天風
삼십육봉추야월    옥소취철해천풍

북한의 관리 지역인 개풍군 성거산 자락에 자리한 의상암은 수도하기에 적당했던 산이 아닌가 생각한다. 고승이신 의상대사義湘大師와 연관을 지어보지만 흔적을 찾을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상]이란 한자도 다르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의상암은 풍치의 아름다움은 그저 그만이었던 것 같다. 수도를 하기에 적절했으리니. 구름 걷힌 푸른 바다가 한 눈에는 끝이 없으니 서른여섯 봉우리에 가을밤 달이 솟아오르니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옥퉁소 소리 은은히 불어와 바닷바람을 뚫고 있네(義相蓭)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복재(服齋) 기준(奇遵:1492~1521)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1519년 응교가 되었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아산을 거쳐 온성에 유배된 뒤 모친상을 당하여 고향에 돌아갔다고 한다. 그 뒤인 1521년 신사무옥으로 다시 유배지에 가서 29세의 젊은 나이에 교살되었던 인물이다.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높은 누대 우뚝 솟아 안개 속에 들어 있고 / 구름 걷힌 푸른 바다 한 눈에는 끝이 없네 // 서른여섯 봉우리에 가을밤에 달이 솟아오르니 / 옥퉁소 소리 은은히 불어와 바닷바람 뚫고 있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의상암에서]로 번역된다. 의상암이란 이름으로 전국에 있는 암자는 10곳에 넘는다. 경기도 개풍군 성거산에 있었던 암자로부터 경남 통영 벽방산의 암자까지다. 의상대사와 연관이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추적해 보았지만 그런 흔적은 없어 보인다.
시인은 선경의 그림 한 폭을 멋지게 그려 놓았다. 높은 누대 우뚝 솟아 안개 속에 들었고, 구름이 걷히니 푸른 바다 한 눈에 끝이 없다고 했다. 눈을 부라리며 볼 수 있는 전경이다.√ 화자는 의상암의 봉우리에서 후정을 마음껏 캐낼 수 있는 기대와 용기가 보인다. 서른여섯 봉우리에 가을밤 달은 솟았으니, 옥퉁소 소리 은은히 불어와 바닷바람을 뚫고 있다 했다. 의상암의 깊은 소회 한 구절을 담는 시상 앞에 숙연해진다.
방년의 29세에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은 후 지은 마지막 절명시 한 구절이다. [해 떨어지니 하늘은 칠흑과 같고(日落天如黑) / 산은 깊어 골짜기는 구름 속 같구나(山深谷似雲) // 천년토록 지키자 했던 군신의 의는(君臣千載意) / 슬프도다 ~하나의 외로운 무덤뿐이니…(惆悵一孤墳)]라고 했으니 시상 속에 흐른 대인의 인품을 가름해 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높은 누대 안개 속에 푸른 바다 끝이 없고, 가을밤에 달은 솟고 바닷바람 뚫고 있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高臺: 높은 누대. 矗矗: 우뚝 솟다. 우거지다. 入煙空: 안개 속에 들다. 雲盡: 구름이 다하다. 滄溟: 푸른 바다. 一望窮: 한 눈에 끝이 없다. // 三十六峯: 의상암의 봉우리 숫자. 秋夜月: 가을밤의 달. 玉簫: 옥퉁소 소리. 吹: (퉁소 등을) 은은하게 불다. 徹: 뚫다. 海天風: 바닷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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