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국정감사장 국회 법사위원회 전체회의 질문 과정에서 있었던 헤프닝성 한 발언이 주목을 끌어 세간에 크게 회자 되었다.

야당 국회의원의 질의에 답변석에 선 알만한 실세 여성 장관이 정색을 하고 반발한 “의원님 소설을 쓰시네요” 란 용어가 그 핵심이다.

그런데 이 코믹스런 문귀가 삽시간에 날개 돋치듯 유행어로 퍼지더니 어느새 상대를 향해 빈정대는 말투의 원조처럼 농담 비슷 우리들 생활 속에서 상용화 되어가고 있다.

요즘에 와선 각종 사법 리스크에 몰린 거물급 정치인이 그 바톤을 넘겨 받았는지, 상당히 구체적으로 드러난 자신의 스캔들에 얽힌 언론의 집요한 질문에 장편소설, 창작소설입네, 신작소설입네 가지를 치며 일거에 추궁을 따돌린다.

심지어 자신을 겨냥한 검찰의 압박에 강한 톤으로 검찰발 조작설을 어필 하지만 정작 일반 여론의 반응은 그 진위 따윈 시큰둥 반신반의다.

그 문맥에 비춰 보건데 이런 말은 상대를 거짓말쟁이로 몰아 세우기 위해 사용되고 있음은 누구나가 감지한다.

소설은 진실에서 벗어난 것이요, 아주 간악한 것이므로 쓰지도 말고 읽어서도 안되는 것으로 비아냥대는 취지의 뉘앙스가 담겨있다.

아마 깊은 속내는 껄꺼로운 논점을 회피 하려는 전략일 수도 있다.

이런 소리가 무척 듣기에 거북했던지 한 소설가 단체에서는 그런 발언에 대해

당장 공개 사과하라며 공식적 항의 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무분별한 발언의 근저에는 소설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허구(虛構)즉 픽션이며 픽션은 팩트(사실)와 관계없이 꾸며낸 것 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흔히 

소설의 대명사 격으로 쓰이기도 하는 픽션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기에 이런 막말이 등장하게 되었을까?

하지만 문학의 영역에선 픽션에는 거짓이 있을 수 없다.

거짓이 되려면 팩트에서 벗어난 것이라야 하는데, 픽션은 참조할 특정한 팩트를

두지 않는다.

예를들어 사학자나 전기학자가 나폴레옹은 센트헬레나 섬에서 병사한 것이 아니고 워털루에서 전사했다라고 기술한다면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 되겠지만,

소설 ‘테스’에서 여주인공은 교수형을 당하지 않았으며 전 남편을 다시만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으로 소설을 끝맺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작가 토마스 하디를 거짓말쟁이 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한편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기반으로 쓰인 역사소설에는 팩트 뿐만 아니라 팩트가 아닌 허구도 많이 섞일 수가 있다.   

말하자면 역사소설은 역사를 들먹이되 ‘소설’을 표방 하므로 순수한 논픽션이 아니고 그렇다고 순전한 픽션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한 역사소설이 사실(史実)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쓰였다고 하더라도 역사가 아닌 ‘소설’로 자처하는 한 그런 작품을 두고 거짓 문학이라고 지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짓’이라는 욕설을 미화하기 위한 수사(修辭)삼아 “소설을 쓴다” 라고 공박한다면 그것은 억지 주장이요 무식한 소리로 들린다.

소설가들이 무엇 때문에 이야기를 지어 내야 하는가에 답은 자명하다. 소설은 다른 장르의 문학 작품처럼 삶의 정신을 밝히고 인간의 삶에서 이상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보편적 가치를 구현 하려는 창조적 노력의 소산이라는 데 있다.

시인이나 극작가들처럼 소설가도 인간의 삶에서 중요시되는 가치들을 추종하되,소설가는 그것을 자기 나름으로 엮어 낸 픽션의 틀 속에 담아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그러므로 소설에서 단순한 흥미뿐만 아니라 도덕적 교양적 가르침 까지 기대할 수 있다.

소설 문학의 이런 본질적 특성을 외면한 채 단순한 거짓말을 ‘소설쓰기’라는 용어로 낙인찍는다면 그야말로 진실의 추구라는 소설의 높은 이상을 훼손하는

몰지각한 처사로서 호평받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특히 정치권에서 걸핏하면 ‘소설쓰기’라는 말이 남발되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나의 죄를 감추기 위해 되레 스스로가 소설쓰기 꼼수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도 안된다.

이처럼 거짓말을 놓고 갈등하는 두 진영의 한 쪽에서 상대방의 허위성을 공박한답시고 함부로 ‘소설쓰기’라는 낙인찍기는 자제해야 한다.

문학을 정치의 도구로 활용하려거든 먼저 윈스턴 처칠의 어록부터 마스터 한 후 촌철살인을 꺼내야 한다.

그런 식의 공박은 실제로 진실 게임에서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어차피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므로, 또한 그런 수사는 엉뚱하게 소설 문학 고유의 품격을 떨어트리게 하는 위험성 마저 우려된다.

매일 국민의 관심사인 시사뉴스의 중심에 서 있는 정치가들의 대화 기법에 있어 좀 더 신중하게 세련미와 순치된 용어를 선택 한다면 정치의 품위와 매력에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고 이 또한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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