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석/수필가
▲김창석/수필가

칠월은 목이 타는 가뭄과 싸우고, 지루한 장마를 견디고, 태풍과 홍수를 이겨내야 하고, 방역, 폭염과도 싸워야 하는 우리들 땀과 시름 속에 흘러갑니다.

다행히도 자연의 신비는 인간의 고통을 위로해 주기라도 한 듯, 한 줄기 희망과 쉼표의 기쁨을 선물했습니다.

그것은 갈증을 식혀주는 열매와 푸르름, 그리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향료, 깨끗하며 애련한 정취를 풍기는 한 수목의 꽃 향을 의미합니다.

두 주인공은 바로 시골 사람들과 친숙한 청포도와 치자꽃 이지요.

넝쿨을 타고 경쾌하게 뛰노는 파랑새의 운율에 춤추면서 따스한 햇살을 머금고 탱글탱글 익어가는 싱그러운 포도송이는 보는 것 만 으로도 잇속을 시리게 합니다.

그런가하면, 청초함과 앳된 미소가 겹친 순결한 여인의 숨결 같은 흰 치자꽃 향기에서 감도는 정결한 운치야 말로 우리에게 상냥한 위안이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항시인 이육사의 명시 ‘청포도’는 광복을 염원하고 상징하는 의미로 만인에게 해석되지만, 문학적 우수성만큼은 칠월의 이미지를 또 다른 차원의 경지로 승화시켜 우리 문학사의 꽃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 기회에 모처럼 우리들 가슴 한 켠에 자리하고 있는 ‘청포도’ 시를 꺼내 음미해보는 것은, 어줍잖은 현실의 회의에서 잠시 힘겨운 칠월의 세속을 찬미하며, 간절했던 광복과 조국애의 역사에 대한 눈물과 그리움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일어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 활짝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두지 않으련.

명시는 읽고 또 읽어도 그 신선미와 리듬에 도취되어 새롭기만 합니다.

나는 국어 교과서에 실린 ‘청포도’시 마지막 두 연에 매료되어 싯귀 전체를 암송하였고, 애인처럼 마음속에 가두어 두었던 어릴 적 기억이 생각납니다.

칠월은 또 치자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고요히 떨어지는 시기입니다.

치자꽃은 마치 어느 날 갑자기 시집가는 누님을 연상케 하는 아쉬움과 그리움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나의 치자나무 추억은 그 옛날, 초가집 장독대나 울타리 가에 다소곳이 기대고서 미소 짓던 깜찍하고 앳된 소녀의 모습으로 비춰져 내 마음에 곡선을 그어 주었습니다.

어느 시인이 치자꽃을 누님의 눈가에 쓸쓸히 피는 눈물방울 이라고 했던가!

꽃은 지면서도 울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 것 이므로,누님처럼...

사람들도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만이라도 서로 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 있다면, 치자꽃 향기 같은 그가 지닌 향기를 처음 발견한 날의 기쁨을 되새기며 설레이게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싱그러운 포도송이와 하얀 면사포를 쓴 순결한 신부의 숨결같은

치자꽃 향기는 칠월의 시계(視界)속에서 열정적인 사랑과 평화를 상징하는 교집합인 셈입니다.

마치 칠월의 오작교에서 견우와 직녀의 순정이 살아 숨 쉬듯, 칠월의 과수원 울타리 주변에선 청포도와 치자꽃의 향연이 모락모락 피어오릅니다.

그런데 세상은 녹록치 않습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코로나19의 위기를 졸업하고 난 후 숨 돌릴 여유조차 없이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출 대책을 놓고, 국민적 저항과 특히, 정치권 여·야간 첨예한 대립으로 국정은 혼란스럽습니다.

누가 감히 수 억년동안 지구를 먹여 살린 저 보은의 바다를 오염수로 더럽히려 하는 건가요?

더구나 광복절을 전후한 민감한 시기에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해풍으로 민심이 더욱 악화될까 우려 됩니다.

지금 정치권에서 벌이는 횟집먹방, 단식, 거리농성 등 식상의 퍼포먼스는 국민들에게 설득력은커녕 보여주기식 이전투구의 밉상으로 눈살 찌푸리게 할 뿐입니다.

지난 4일 발표한 IAEA 최종 보고서를 놓고서 정치적 보고서, 일본 맞춤형 보고서라는 야권의 비판 또한 마치 공상소설 이솝 우화 ‘양치기소년 이야기’는 교훈이고, 현대 과학은 못 믿겠다는 화법으로 좀스럽습니다.

만약 이런 상황이 올 가을까지 지속 된다면 휴가철 호경기 횟집들은 벌써부터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데, 이에 따른 대책과 책임도 의문입니다. 그 해법은 한정적이지만 우선 정치권이 한시바삐 풀어야할 숙제이므로 이를 경고하는 것 입니다.

이럴 때, 여·야 협상탁자위에 7월의 명물 청포도 송이가 담긴 쟁반과 갓 따온 순백의 치자꽃 수반을 올려 놓으면 어떨까요?

훨씬 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협치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까 기대 해 봅니다.

궁하거든 답은 자연에서 찾으라! 자연은 순리와 조화, 균형의 거대한 항아리 이므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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