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정/한학자
▲ 김규정/한학자

 

存窩子病伏江上 有白足懷善踵門而謁 出其先師白谷所爲詩若文 跪而請曰 師之示寂 已六易穀燧矣 㙮廟無刻 願得一言以賁之 存窩子辭以病 且不習禪家語 請之固 重念余在丱角時 能師嘗訪于漢師城西 出視其所作數篇 仍難說空有 思之了然如前日 義何可辭 按狀 師法名處能 字愼守 白谷其號也 父姓全母金 嘗禱于弘濟之石佛 有異夢 以丁巳五月三日 生㝈子一男一女 男卽師也 年十二 從義賢上人學 仍祝髮求道 嘗謁東淮申先生 受經史諸子 文詞大進 詩格尤淸健 俄而去入智異之雙溪 參碧巖長老勤橐饘者 二十年 淹貫三乘 長老許以傳法 孝廟潛邸時 答巖長老 有曰高弟文德脫俗 字畫勁正 其見愛如此 東淮及玄洲尹公 俱好幽禪 並傾心待之 歸溪金公爲守禦使 奏請爲南漢都摠攝者再 未久辭遞 師少遊伽倻,竗香,寶蓋,雪峯之間 後入俗離,靑龍,聖住,鷄龍等山 累開法席 而大芚之安心最久焉 庚申春 作大法會于金山寺 其七月二日 涅般于丈室 度世六十四 僧臘四十九 是夕異氣橫空 遂茶毗而建窣堵三處 金山,安心及鷄龍之神定是已 所著有白谷集二卷 徒弟有眞明等數十人 懷善最少而了慧云 師旣著名叢林 再領八道禪敎 觀其文詞 多近道語 可謂奇矣 其徒之發誠樹石 以圖不朽亦宜 遂爲銘 銘曰 

西笁之法 亦流于東 至于碧巖 大暢宗風 有來攝袂 才性圓通 發之文詞 見將鉅公 詩雖口業 手好心紅 烏害於道 或攄其衷 說破妙諦 如甁貯空 緣盡而逝 嗣法之恫 芚山有截 靈骨攸封 我銘以貞 示彼禪叢

출전 <明谷集> 卷之二十一

◆백곡선사 탑명

존와자(存窩子, 作者)가 강가에 병들어 누워있으니 출가자(白足, 沙門) 회선(懷善)이 집으로 찾아와 여쭙고서 자신의 돌아가신 스승 백곡(其先師白谷)이 지은 시 약간의 글을 내놓고서 무릎을 꿇고 청하며 말하기를,

“선사께서 시적(示寂)한지가 이미 햇수(穀燧곡수)가 여섯 번이나 바뀌었으나 탑묘에 문자를 새기지 못했으니 한마디 말씀을 얻어 빛을 내고자 하옵니다.”라고 하였다.

존와자는 병으로 사양하였으니 우선 선가(禪家)의 언어도 학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완고하게 요청하므로 거듭 생각하다가 나는 어릴 때부터 한양성 서쪽 대사의 처소를 방문한 적이 있어 대사가 지은 몇 편의 시문을 살펴보았다.

지난날과 똑같은 생각이 분명해지는데 거듭 부질없이 말하기가 어려운 일을 의리상 어떻게 사양할 수가 있겠는가.

행장을 살펴보니 선사의 법명은 처능(處能)이고 자는 신수(愼守)로 백곡(白谷)은 그의 호이다.

아버지의 성은 전(全)씨이고 어머니는 김(金)씨로 홍제사의 석불에서 기도드린 적이 있었는데 이상한 꿈을 꾸고 정사년(광해9년1617) 오월 사흗날 쌍둥이 일남 일녀를 낳았는데 사내아이가 바로 선사이다.

나이 열두 살 때 의현 상인(義賢上人)을 따라 배우기를 거듭하다 머리를 깎고 나서 구도의 뜻이 굳어졌다.

늘 동회 신 선생 익성(東淮申先生翊聖,1588~1644)을 뵙고 경사제자(經史諸子)를 배우자 문사(文詞, 문장 속의 말)가 크게 진보하여 시격이 더욱 맑고도 꿋꿋해(淸健)졌다.

갑자기 지리산 쌍계사로 들어가 벽암 장로를 참례하고는 좋아하다 빠져들어(橐饘, 탁전) 이십년을 시봉하며 수행하자 삼승(三乘)을 넓고도 깊게 통달하니 장로는 전법(傳法)을 허락했다.

효종이 잠저(潛邸, 寶位에 오르기 전 대궐 밖 처소) 시절 때 벽암 장로에게 답하기를, “고제(高弟)는 탈속한 문덕(文德)이 있어 글자 획이 굳세고 바르다(字畫勁正).”고 했으니 선사는 이와 같은 사랑을 받았다.  

동회(東淮)와 현주 윤공 신지(玄洲 尹公新之,1582~1657)는 모두 선승(幽禪)을 좋아했는데 나란히 마음 터  놓고 담소하다가 귀계 김공 좌명(歸溪 金公佐明, 1616~1671)을 수어사로 삼고 선사를 남한 도총섭으로 삼으라고 두 번이나 주청했으나 오래지 않아서 벼슬을 내려놓고 물러나(辭遞) 선사는 가야산ㆍ묘향산ㆍ보개산ㆍ설봉산 사이를 오가며 잠시 노닐다 나중에는 속리산ㆍ청룡산ㆍ성주산ㆍ계룡산 등지에서 자주 법석을 열었으나 해남 대둔산 안심암 (海南大芚山安心庵)에서 만은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다.

경신년(숙종6년1680) 봄에 금산사에서 대법회를 일으키고 그 해 칠월 이튿날 방장실에서 열반에 드니 도세(度世, 이상향인 열반에 들어감)는 예순 넷이고 승랍은 마흔 아홉으로 이날 저녁에는 이상한 기운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마침내 다비하고 부도(窣堵, 솔도)를 모악산 금산사와 대둔산 안심암과 계룡산 신정사 세 곳에 세웠을 뿐이다.

저서로는 <백곡집白谷集> 두 권이 있고 문도제자로는 진명(眞明) 등 수십 인이 있는데 회선(懷善)이 가장 젊고 슬기롭다고 말한다.

선사는 이미 총림에서 저명해 팔도선교(八道禪敎) 승직(僧職)을 재차 임명받았고 그의 문사를 살펴보면 대부분 도에 가까운 언어로서 기이하다고 할 만하다. 

그 문도들이 비석을 세우고자 진실하게 발원하므로 영원히 전하기를 도모하는 일도 마땅하다.

마침내 명을 지으니 명에 이르기를,

西笁之法

서축에서 발원한 불법

亦流于東

또한 동쪽으로 흘러왔네.

至于碧巖

벽암 각성 대사에 이르러

大暢宗風

종풍이 크게 알려졌다.

有來攝袂

소매를 여미고 와서

才性圓通

재능으로 진여 이치 깨달았다.

發之文詞

문사로 나타내니

見將鉅公

대가의 솜씨 드러났다.

詩雖口業

시가 구업일지라도

手好心紅

신수(身手)가 훌륭해 마음이 붉구나.

烏害於道

어찌 도에 해가 될까마는

或攄其衷

간혹 그 마음을 펼친다.

說破妙諦

묘한 진리 설파하니

如甁貯空

병 같은 허공에 저축한다.

緣盡而逝

인연 다해 서거하니

嗣法之恫

법 잇는 제자들은 상심하구나.

芚山有截

해남 대둔산에서 끝나니

靈骨攸封

영골 봉하는 곳은

我銘以貞

나의 명으로 확인하노니

示彼禪叢

저 총림에다가 알려주게나.

注)

東淮申先生 - 신익성(申翊聖,선조21년1588∼인조22년1644) 평산(平山) 신씨(申氏). 자는 군석(君奭), 호는 낙전당(樂全堂)ㆍ동회거사(東淮居士). 시호는 문충(文忠). 아버지는 영의정 신흠(申欽)이고 어머니는 병마절도사 이제신(李濟臣)의 딸이다. 선조의 부마(駙馬)로 정숙옹주(貞淑翁主)와 혼인하여 동양위(東陽尉)에 봉해졌다. 저서는 《낙전당집樂全堂集》, 《낙전당귀전록樂全堂歸田錄》, 《청백당일기靑白堂日記》가 있다.

문장ㆍ시ㆍ서에 뛰어났으며 특히 김상용(金尙容)과 더불어 전서(篆書)의 대가였다.

穀燧(곡수) - 《논어》 〈양화(陽貨)〉에 “묵은 곡식이 다 없어지고 새 곡식이 오르며, 불씨 만드는 나무도 바뀌니 1년이면 그칠 만한 것입니다.<舊穀旣沒, 新穀旣升, 鑽燧改火, 期可已矣.>”에서 나온 말이다.

身手 - 드러나 보이는 사람의 겉모양.

  

■崔錫鼎(인조24년1646~숙종41년1715) 향년 70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시(汝時)ㆍ여화(汝和), 호는 존와(存窩)ㆍ명곡(明谷). 할아버지는 영의정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 최명길(崔鳴吉)이고 아버지는 한성좌윤 완릉군(完陵君) 최후량(崔後亮)이다.

26세 때 현종(顯宗) 12년(1671) 신해(辛亥) 정시(庭試) 병과(丙科) 1위(04/08)했다.

이조판서ㆍ우의정ㆍ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고 학자이다.

◆德龍山佛護寺日封庵 덕룡산 불호사 일봉암

-금명 보정錦溟寶鼎(철종12년1861~1930)

尋眞笻屐到叢房 

지팡이 짚고 진경 찾아 절집에 이르니

彌節羲和秋日長 

가는 세월 멈추고 가을 해는 길기만 하구나.

溪聲玉碎松間雨 

솔숲 비에 옥 부서지는 시냇물소리 나고

夜色金浮佛頂光 

부처님 정수리 빛에 金浮屠는 밤 경색이라.

誰知龍嶂封三日 

누가 덕룡산을 사흘이나 틀어막은 줄 알까

能掩須彌照十方 

수미산은 시방 찰토 비추는데 무슨 수로 가리나.

欲見詵翁甘夢罷 

도선국사 뵙고자 하니 단꿈만 깨고

隔林雙鶴過西墻 

숲 너머 두 마리 학은 서쪽 담장을 넘어간다.

출전<茶松詩稿>

注)

佛護寺 - 나주시 덕룡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오래된 절집이다. 初傳聖地 羅州 德龍山 佛會寺는 백제시대 때 창건된 사찰이다. 조선 정조22년(1798) 큰 화재로 대부분 불타 버린 다음 순조8년(1808)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 절집의 이름은 원래 불호사(佛護寺)라 하였으나 1808년 이후 불회사(佛會寺)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나주시 다도면 日封庵은 일출로 유명하다.

彌節(미절) - 멈추다, 서서히.

羲和(희화) - 고대 신화에 나오는 해를 몰고 다니는 신이다. 《楚辭離騷 王逸 注》 여기서는 가는 세월을 뜻한다.

▶登無等山 무등산에 오르다.

曾聞媧氏撑天北 

일찍이 여와씨가 하늘 북극 떠받치고 있다고 들었으나

始見高峯亦在南 

높은 봉우리 남쪽에도 있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石恐傾欹層作一 

바위는 기울어져 한 층계 만들까 두렵고

山嫌獨出化成三 

산은 홀로 특출한 게 싫어 셋이서 조화를 이루었다.

九州城郭微如垤 

구주 성곽은 작기가 개밋둑 같고

萬竅嵓窩靜似庵 

오만 것들이 울어대도 바위 움집은 고요하기가 암자 같다.

若吾學得餐霞術 

내가 노을 먹는 술법 배워 깨달았다면

可呑牽牛窓外嵐 

창밖에서 소 끌고 가는 이내는 삼킬 만하다.

출전<茶松詩稿>

注)

萬竅(만규) -  지뢰(地籟) 즉 땅 위에 있는 물건의 소리이다. 

▲삼신산 쌍계사

 

 

 

저작권자 © 장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