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정/한학자
▲ 김규정/한학자

◆漕溪菴 강진군 대구면 정수사 조계암

彭聃喬木老溪南 조계암 남쪽 오래되고 늙은 교목

何似華山控石菴 어쩌면 화산처럼 석암에 널려있는가.

妙法蓮花誇世界 묘법연화 세계 자랑하며

虛庭栢樹入禪參 빈 뜰 잣나무는 참선에 들 구나.

風翻香翠千夫竹 바람에 펄럭이는 향취 천 그루 대나무

夜愛空明十笏潭 밤이면 좁은 연못 공명을 사랑한다.

聊看天機樓上記 무료하면 천기 대사의 누상기를 보고 

消搖讀至午眠甘 거닐면서 읽어보다 낮잠 달게 잔다.

-巵園黃裳 치원 황상(1788~1870)

注)

彭聃 - 옛날에 매우 오래 산 사람인 팽조와 노담(노자).

喬木 - 줄기가 곧고 굵으며 높이 자란 나무.  

空明 - 달빛이 부서져 내리는 투명한 강물 빛을 의미한다. 소식(蘇軾)의 〈전적벽부(前赤壁賦)〉에 “강물에 비친 달그림자를 치며 달빛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간다.〔擊空明兮泝流光〕”라는 말이 나온다.

 

漕溪吟 강진 정수사 조계암을 읊다.

名區幽闢海之南 바다 남쪽 명승지 조용히 찾자

最好漕溪有一庵 가장 좋아하는 조계암 하나 있구나.

雲鎖沙門無碍漏 구름 짙어 사문은 무애 냄새가 나고

水聾塵態坐禪參 물 귀머거리는 세속 모습으로 좌선 참여한다.

靑松落落連崖壁 푸른 솔은 드높아 벼랑에 이어지고

赭霧流流下石潭 붉은 안개 넘실넘실 석담으로 내려온다.

經榻聞過三界淨 경 설하는 자리 알고 지나자 삼계가 맑고

依然陳跡夢中甘 여전한 옛 자취 꿈속에서도 달갑다.

-戊寅仲春晩軒次稿朴厚植 무인년 음력 2월 만헌 박후식은 차운하다.

漕溪吟 강진 정수사 조계암을 읊다.

名區踏盡向湖南 승경 유람 다하고 호남 향해

深入天台洞裏庵 천태동 속 암자에 깊숙이 들었다.

白谷淸流臨砌近 백곡 청류 섬돌 가까이 흐르고

千重翠壁與天參 천 겹 푸른 벽 하늘 높이 치솟았다.

秋霜製錦粧楓葉 가을 서리는 비단옷 지어 단풍 단장하고

曉靄聯綃覆石潭 새벽 연무 생사와 합쳐 석담을 덮는다.

不顧人間非與是 인간의 시비 돌아보지 마라

閑軒高枕午眠甘 한가한 집에 누워 낮잠 달게 자련다.

-雲溪天機 운계 천기 대사(천관산 명승)

諸天寶盖寂東南 암자의 일산은 동남에서 고요하고

霧窟雲涯是一庵 운무 자욱한 토굴 물가에 암자 하나구나.

道眼開成三界豁 도안이 활짝 열려 삼계를 깨닫고

法身留與五禪參 법신 남겨주어 오선에 참여한다.

臺前老虎蹲奇石 누대 앞 늙은 범은 기괴한 돌에 웅크리고

鉢裏神龍閉古潭 발우 속 신룡은 옛 못을 감춘다.

欲識淸機初發處 초발심 맑은 기틀 알고 싶지만

磬聲剛破曉眠甘 경쇠소리는 맛 좋은 새벽 잠 굳세게 깨뜨린다.

-南江齋 남강재

探眞一衲遍東南 가사 한 벌로 진경 찾아 동남 두루 미치다

來倚滄洲到小庵 작은 암자 이르러 은자 거처에 의지했다.

靜裏玄機山共寂 산 적막한데 불법의 진리는 고요하니

吟邊淸賞世誰參 시 읊으며 산수 유람하는데 누가 참여할까.

推窓時弄峯頭月 창 밀치고 때로 산봉우리 달 희롱하고

倚樹閑窺石上潭 나무에 기대 한가롭게 바위 가 연못 엿본다.

俗客須煩松下問 속객은 번거롭게 솔 아래서 물을 필요 있나

白雲深處晝眠甘 흰 구름 깊은 곳은 낮잠도 달다오,

-石汀 석정

踏盡東西又向南 동서 답사 끝내고 또 남쪽 향하다

隨緣掛錫此山庵 인연 따라 이 산 암자에 주장자 걸어놓았다.

禪林貝家交相錯 선종사원 아름다운 집은 번갈아 얽혀있고

敎海魚龍互共參 교의 바다 물고기와 용은 서로 함께 참여한다.

紫艶霜光凝淨界 붉고 고운 서리 빛 정수사에 머무르니

玲瓏月色印淸潭 영롱한 달빛은 맑은 연못에 찍힌다.

漕溪活計殘生足 조계암서 살아갈 방도는 남은 생애 지나치니

莫道諸天五味甘 암자에서 다섯 가지 맛 달다고 말하지 말라.

-離隅 이우

注)

離隅 - 정암 즉원(晶岩卽圓,1738~1794)의 字가 離隅이다. 대둔사 제12대 대강사이며 백련사 주지인 아암 혜장(兒庵惠藏,1772~1812)에게 법을 전했다. 

청허 휴정(淸虛休靜,1520~1604) → 소요 태능(逍遙太能,1562~1649) → 해운 경열(海運敬悅,1580~1646)  → 취여 삼우(醉如三愚,1622~1684) → 화악 문신(華嶽文信,1629~1707) → 설봉 회정(雪峰懷淨,1678~1738) → 송파 각훤(松坡覺喧,1686~1764) → 정암 즉원(晶巖卽圓,1738~1794)  → 연파 혜장(蓮坡惠藏,1772~1812) → 수룡 색성(袖龍賾性,1777~1846) → 철선 혜즙(鐵船惠楫,1791~1858)으로 禪燈이 전하는 강진 만덕산 백련사 소요 태능파 禪門이다.

當秊道派轉求南 옛날 도파 남방에서 곡진하게 구도하다

滄海浮囊掛此庵 큰 바다 건너 진리 얻고 이 암자에 머물렀다.

幽興霜烟塵世障 그윽한 흥취 서리 안개는 속세를 가리고

閑情花島畫欄參 꽃 섬 무료한 심정에 화려한 난간 참여한다.

肇公解虎留仙杖 사문 승조가 범 싸움 말리자 신선이 유숙하고

能老訶龍去石潭 잘 늙어가는 용 꾸짖자 석담을 떠나간다.

碓米經篩今尙晩 방아 찧은 쌀 체로 치면 지금은 늦어버렸으니

寧從學者做言甘 차라리 학자 따르라고 달콤하게 말하더라.

-洞然 통연

注)

肇公(조공) - 요진장자(姚秦長者) 사문(沙門) 승조(僧肇, 384~414).

杏花梨雨客初登 살구꽃 비 따라 객 처음 오르니

精洒風光此獨增 그윽하게 쏟는 풍광은 이곳이 유독 더하구나.

淸澗臺前流曲曲 청간대 앞 물은 굽이굽이 흐르고

仙岑雲外碧層層 신선 사는 산 구름 밖은 층층이 푸르다.

冷冷道派談經榻 냉랭한 도파는 걸상에서 경전 설하고

歷歷天香禮佛燈 또렷한 하늘 향은 예불 드리는 등불이라.

可惜歸笻留不得 더 머물 수 없어 돌아갈 석장 애석할 만하니

月中餘興問居僧 밝은 달 밤 여흥은 거처하는 중에게 묻는다오.

-上手 (洞然 통연)

■敬贊洞然堂

巍巍乎法性山高。而蕩蕩乎眞如海濶。則一如牀上臥。而三德藏中行者。

출전 <海鵬集>

■통연당 경찬(敬贊洞然堂)

법성의 산은 높아 웅대하고 진여의 바다는 넓어 광대하구나. 일여一如의 평상 위에 누워 삼덕三德의 창고 속을 거닌 자라.

飄然白衲遍東南 정처 없이 떠도는 납자 동남지방 돌아다니다

轉入漕溪佛祖庵 불조정맥 조계암으로 옮겨들었다.

曲澗淸聲兼瀑落 굽이치는 산골 물 맑은소리에 폭포수 떨어지고

杉松碧色與天參 삼나무 소나무 푸른빛에 하늘도 참여한다.

花明玉洞幾層上 꽃 활짝 핀 선경은 몇 층 위인가

月照金沙第一潭 달빛 비친 금모래가 푸른 바위 둘러 제일 담이라. 

鳥語喃喃春已暮 새는 재잘재잘 말을 나누어 봄 이미 저물고

憑欄醉睡夢中甘 난간 기대 취해 졸다보니 꿈은 달콤하다.

-聖淵號提峯 성연 호는 제봉

역자 注)

성연은 천관사 승려로 1804년 8월 해남 대흥사 표원 원장으로 부임했고 이보다 앞서 정조 20년(1796) 한양으로 가서 스승 설파 상언의 비문을 영의정 채제공으로부터 받아 와 고창 선운사에 비를 세웠다.

출전 <湖南左道金陵縣天台山淨水寺輿地勝覽>

■贈機上人 천기 상인에게 드리다.

-東溪 朴泰淳(1653~1704)

山樓皷角擁千軍 산 누대 고각소리 일천군사 호위하니

白足功名有足聞 고승의 공명은 세상에 충분히 알려졌네.

駈却妖魔皆屛跡 요상한 마귀 몰아내면 온 종적 감추고

指揮龍象捴成羣 대 강백이 지휘하면 모두가 무리 이루었다.

從知濟衆斯爲佛 백성 구제할 줄 아니 바로 부처이고

未信逃禪解棄君 임금 버리고 절간으로 도망쳐도 믿질 않네.

堪笑不空何事業 무슨 사업이든 쓸데없지 않아 우스우니

談經謾詑靜胡氛 불경 담론하다 조용히 오랑캐 속인다.

注)

白足 - 발이 하얀 납자. 고승(高僧)을 가리킨다. 후진(後秦) 구마라습(鳩摩羅什)의 제자인 담시(曇始)의 발이 얼굴보다도 희었는데 진흙탕을 맨발로 걸어 다녀도 더러워지지 않으므로 당시에 백족 화상(白足和尙)이라고 불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龍象 - 물속의 용과 육상의 코끼리처럼 위력이 자재(自在)하다는 뜻으로 보통 학덕이 높은 승려를 가리키는 불가(佛家)의 용어이다

 

출전 <東溪集> 卷之五

역자 注)

동계 박태순이 전라도 관찰사로 나갔을 때 인연을 맺은 것 같다.

■박태순朴泰淳(효종4년1653~숙종30년1704) 향년 52

본관은 반남(潘南). 字는 여후(汝厚), 號는 동계(東溪).

30세 때(숙종8년1682) 임술 증광시 생원 1등 1위(1/100)를 하고 증광시 진사 1등 2위(2/100)로 兩試에 합격했다. 34세 때(숙종12년1686) 병인 별시 을과 2위(3/15)로 급제했다. 광흥창 수(廣興倉守) 박세상(朴世相)의 아들로 東國十八賢 박세채와는 6촌간이고 서계 박세당의 족질이다. 벼슬은 전라도ㆍ경상도 관찰사와 성균관 대사성, 형조 판서, 사간원 대사간을 지냈다.  <東溪集>이 전한다.

▲강진군 대구면 정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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