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 ‘비목’은 1968년 동양 방송국 PD로 일하신 한명희씨가 1964년 강원도 화천에서 7사단 수색대 소대장으로  복무 하면서 이름없는 6.25전쟁 용사의 녹슨 철모와 돌무덤을 발견하고 느낀 소회를 1967년 시(詩)로 쓴 ‘비목’에 작곡가 장일남이 곡을 붙여 세월이 흘러도 한결같이 애창되고 있는 6.25의 비극을 일깨워주는 대표적인 국민 가곡이다.

비목은 목비(木碑,나무비)를 시적 언어로 표현한 단어 이다.

작가는 또 그의 회고록에서 이미지 전개 과정의 유려한 필치와 문학적 수사를 통해 전쟁의 상처와 고통은 물론, 자연의 색체까지 사실감 있게 서사 했다.

한명희 작가가 46년후 찾아간 DMZ 비목의 고향 화천의 옛동산은 반세기 가까운 세월의 풍화에도 불구하고 청정하게 의구 하기만 했다.

용틀임해 내리는 듯한 백암산 능선의 물결도 여전하고, 저 만큼 눈 앞에 펼쳐지는 김일성 고지며 수도고지등의 북녘 땅 산하들도 한가로운 구름 밑에서 예와 같이 그를 반겨 주었다.

멀리 금강산에서 발원하는 북한강 줄기의 그리움 같은 곡선미도 그대로고, 전쟁의 피멍을 딛고 동(東)으로 흘러 북한강에 합류하는 굽이굽이 금성천의 지형들도 예스럽기는 매 마찬가지 였다.

과거로 거슬러 그가 ROTC 육군 소위로 임관해 GP장으로 부임한 때는 정전후 11년째로,인근 산과 강에는 전쟁의 상흔들이 즐비 했었다고 한다. 벌거숭이 비탈에는 수통과 탄피며 철모등이 나뒹굴었고, 화목용 땔감은 파편 투성이었다.

어느골짜기엔 노란 M1실탄들이 무더기로 묻혀있고 강변 둔덕에는 105미리 포탄 껍데기가 패총(貝塚)처럼 쌓여 있었다.

순찰을 돌 다 보면 간이무덤 같은 돌무지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고, 채소를 심으려고 삽질을 하다보면 유골이 나오기가 일쑤였다.

남방한계선은 고작 팻말 하나만 덩그러니 서있었고, 군사 분계선 이라곤 녹슨 철조망 한두 가닥씩 풀 속에 깔려 있었다.

당시 GP는 저들의 수류탄 투척을 막기위해 지붕까지 철조망을 쳤고, 밤에도 군화를 신은채로 잠을 잤다고 썼다.

마치 흑백 영화 필름을 보는 듯한 황량한 전경들이 선명하게 오버랩 된다.

이같은 삼엄한 GP 의 분위기와는 달리 눈 앞에 펼쳐지는 DMZ의 대자연은 경이로움 그대로였다. 봄이면 선명한 등고선을 그으며 성큼성큼 차 오르는 신록의 조화도 신기했고, 가을이면 단풍의 물결이 반대로 하강하는 자연의 변모도 진기 했다.

높은 산만 섬처럼 띄워놓고, 하얀 구름바다를 이룬 새벽녘의 운해(雲海)도 장관이었고,궁노루 울어예는 교교한 달밤의 정경도 감탄과 신이(新異)그 자체였다고 한 층 운치를 돋군다.

예의 궁노루 우는 달방이였다. 순찰길에 약초 내음의 은은한 향기따라 주변을 살펴보니 돌무더기 앞에 팻말 비슷한 나무가 썩어 드러누워 있고 탄피며 철모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 사이를 따라 하얀 산 목련이 달빛속에 우뚝했다.

순간 그는 예사롭지 않은 사연임을 직감 했다. 그것은 틀림없이 산화한 연인의 무덤가를 지켜주는 가련한 여인의 소복한 옷차림 이였다.

긴 세월을 기다리다 지친 순애보의 아낙이 돌아오지 않는 낭군의 차디찬 무덤가를 지켜주는 물망초(勿忘草)요, 망부석(望夫石)이였다.

그는 그날의 감흥을 훗날 ‘비목’이라는 가사로 엮어냈다.

초연이 쓸고간 깊은계곡 양지녘에/비 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그리워 마디마디 이끼되어 맸혔네/궁노루 산울림 달빛타고 흐르는 밤/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지친 비목이여/그 날밤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젊은 꿈들이 산화한 옛 격전지의 현장, 무심히 잠든 영혼들과의 짧은 해후를 뒤로 하고 산을 내려가는 작가의 심경은 무겁고 착잡 했다.

그는 돌아오는 길 내내 그의 귓가에 조금전 비목의 현장에 묻혀있는 호국 영령들의 애절한 가락들이 역사의 준엄한 게시처럼 들려 왔다며 ‘비목’의 후렴 가사를 경지의 세련된 언어로 구성했다.

금성천 갈대밭에 노을이타면/강물에 목이 메인 듯/휴전선 아픈사연 피먹이되어/천리길 구비마다 흐느껴 예누나/백암산 별 빛 속에 풀 벌레 울면/산화된 님과 엮던 덧없는 세월/소박한 산목련은 차마 못잊어/은하수 폭에 타고 노저어 예누나

호국의달 6월!

애국과 충절의 옛 성터를 찾아가 경배하는 역사와 민족의식은 호국 영령들에 대한 경건한 묵념이요, 보훈가족들에 대한 배려와 위안이 될 터, 

포연이 멎은 적요한 전선의 호젖한 풀섶 어느곳에 비단같은 산노을의 자장가에 안겨 곤히 잠든 이름모를 병사들의 숭고한 넋을 위무하는 살풀이의 곡조인양 가곡 ‘비목’의 울림이 6월 하늘아래 휘휘 슬프게 투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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