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태전)전라남도 문화재 전문위원
▲김희태전)전라남도 문화재 전문위원

장흥 고싸움줄당기기는 장흥읍 일원에서 조선시대부터 정월대보름에 행해지고 있는 전통민속놀이이자 농경의례축제이다. 벼농사 문화권의 보편적인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고 우리나라 남부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고싸움 줄당기기이다.

고싸움줄당기기는 장흥읍을 가로지르는 예양강(지금의 탐진강)을 기준으로 서부와 동부로 편을 나눠서 했다. 조선시대 장흥에는 두 개의 행정 관청이 있었는데, 예양강 서쪽 부내면에 읍치(邑治)를 둔 장흥도호부(長興都護府)와 예양강 동쪽 부동면에는 역로(驛路)를 관장하는 벽사도(碧沙道)가 있었다. 소속이 다른 두 기관이 서쪽과 동쪽에 자리하고 있어서, 두 기관 간의 경쟁 구도가 형성돼 고싸움 줄당기기가 더 성대하게 치러졌다고 한다. 민중들의 놀이가 관아에서 장려하여 주민단합과 결속을 다지게 하는 계기로 이어지는 고을형 축제로 전승되었던 것이다. 

장흥읍 남외, 교촌, 충열리 등은 “부서(府西)줄”로 붉은 천을 사용했고, 행원리와 건산리, 상리 등은 “부동(府東)줄”로 푸른 천을 사용하였다. 부서줄에는 강진군 군동면․병영면, 부동줄에는 장흥군 부산․안양면 주민이 참여하기도 했다. 

▲고싸움(장흥공설운동장, 2023.04.28.)
▲고싸움(장흥공설운동장, 2023.04.28.)

◆가치

장흥 고싸움 줄당기기는 벼농사 문화권에서 공통으로 행해지는 놀이라는 점에서 보편성이 있다. 그리고 역사성, 학술성, 고유성, 향토성, 축제성의 측면에서 다른 지역과 비추어 더 돋보인다는 특수성이 있다. 

보편성은, 줄다리기는 풍농을 기원하고 공동체 구성원 간의 화합과 단결을 위하여 수도작(논농사) 문화권에서 널리 연행된다는 점이다. 줄다리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사례로 보면 알 수 있다. 2015년에 당진의 기지시줄다리기를 포함한 영산, 삼척, 밀양, 의령, 남해 등 6개소와 캄보디아, 필리핀, 베트남이 국가간 공동등재의 형태로 등재되었다. 

이같은 보편성을 지니면서도 장흥은 ‘고싸움’과 ‘줄당기기’가 함께 전하여 두 놀이가 별개가 아니어 가장 원형에 가깝다는 점, 고을형 축제 전통의 전형을 보여 주는데 장흥부와 벽사도라는 지역의 역사와 전승의 맥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 동짓달 15일경부터 고삿줄로 시작하여 정월대보름에 그 절정을 이룬다는 점, 청사초롱을 매달고 횃불을 들고 행군한다는 점, 토반과 예인이 줄 위에 타고 특이한 노래가 불려진다는 점, ‘깔기’와 ‘밀치기’가 행해진다는 점 등 장흥만이 갖는 특징이고 가치이다.  

◆명칭

장흥 고싸움 줄당기기는 고싸움과 줄당기기가 같은 줄로 한꺼번에 이어지는 놀이이다. 고싸움은 고를 맞대고 서로 겨루어 넘어뜨리는 형식의 놀이이다. 줄당기기는 고싸움이 끝 난 뒤 한쪽의 고를 다른 쪽의 고에 끼워넣고 비녀목으로 고정한 뒤 양쪽에서 줄을 당기면서 겨루는 놀이이다. 줄당기기, 줄땡기기, 줄다리기, 삭전(索戰) 따위 여러 명칭이 있다. 

민속문화는 해당 지역의 현장에서 주민들이 쓰는 용어를 일종의 표제어로 쓴다. 1970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나갈 때는 장흥 보름줄다리기라고 했다. 고쌈, 고싸움, 고줄쌈, 고줄놀이, 줄쌈 등으로 불렀다. 

고싸움과 줄당기기가 같은 고줄로 바로 이어지는 경우는 장흥에서만 남아 있다. 다른 지역은 고싸움과 줄당기기가 따로 행해져 서로 다른 놀이처럼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장흥 고싸움 줄당기기는 장흥에서 전래되고 행해지던 민속놀이 현장을 그대로 반영하면서, ‘고’와 ‘줄’의 겨루기가 같은 줄로 할 수 있는 가장 원형의 의미를 담고 있는 명칭이다.

◆전승

장흥 고싸움줄당기기는 조선시대 후기부터 이어져 왔다. 1917년의 사진이  『전남사진지』에 실려 있는데, 사자산을 배경으로 탐진강 하중도의 시장마당에서 줄당기기하는 사진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줄당기기 사진 가운데 가장 오래된 사진이라 한다. 사진에는 장옥(場屋)이 50여동이 보이는데, 비교해 보면 줄의 길이는 200~250미터쯤이고 참여 인원은 300여명으로 보인다. 

1918년에는 금장 출신 소천 이인근((小川 李寅根, 1883~1949)선생이 고싸움줄당기기 현장을 보고 지은 한시가 『소천유고(小川遺稿)』에 실려 있다. 기산 출신 신헌 김옥섭(愼軒 金玉燮, 1878~1930)의 시도 있다. 그리고 1925년, 1928년, 1929년, 1931년에 장흥에서 삭전대회(索戰大會)가 열렸다는 신문기사가 있어 1930년대까지는 꾸준히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같은 기록자료는 다른 지역에서는 흔하지 않아 역사적 가치를 평가하는데 중요하다.  

▲1917년 장흥고싸움줄당기기 전경(장흥읍 탐진강 강터 시장, 전남사진지)
▲1917년 장흥고싸움줄당기기 전경(장흥읍 탐진강 강터 시장, 전남사진지)
1918년 한시(소천 이인근(1883~1949),  독우재 소장)
1918년 한시(소천 이인근(1883~1949),  독우재 소장)

◆시문

장흥의 선비들이 고싸움줄당기기를 보고 지은 한시(漢詩)는 줄을 만들거나 당기는 직접 참여자는 아니지만, 관람자도 참여자의 한 축이라 주목할 자료이다. 특히, 무형유산이나 민속생활사 자료들은 문헌 기록으로 전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1918년 대보름의 고싸움줄당기기를 보고 지은 소천 이인근(1883~1949)의 시 제목은 「무오년 정월에 백형의 삭전운에 차운하다[戊午正月次白兄索戰韻]」이다. 내용을 보면, “징 북소리 시끌벅적 호령소리 분명하니, 동서의 형세 두 편으로 나뉘어 일어나네. 용과 호랑이 천근의 힘으로 다투어 싸우고, 땅과 하늘 만인의 소리로 기울고 무너지네.(鉦鼓喧喧號令明 東西形勢兩分生 龍爭虎鬪千斤力 地塌天崩萬仞聲)”라 하였다. 풍악과 호령 속에 동서 두 편이 행하는 용호상박의 줄당기기 현장을 읊고 있다.

신헌 김옥섭(1878~1930)의 시는 「정월 보름에 줄당기기를 보다[上元日 觀索戱]」라는 제목인데, “머리를 맞대고 쌍용이 들 가운데서 싸우고, 성 가득 우레 북 울려 하늘을 흔들려하네. 웅건한 기세로 다투니 끝내 진정되기 어려워, 마침내 움직이지 않고 견디고 있으니 가련하구나.(交首雙龍鬪野田 滿城雷鼓欲掀天 爭雄氣勢終難穩 畢竟戢鱗堪可憐)”라는 내용이다. 고머리를 맞대고 동부와 서부고의 쌍용이 싸우고 성안 가득 울려 퍼지는 우레 북소리에 하늘까지 흔들리는 듯한 현장을 형상화하고 있다.

▲1931년 장흥 고싸움줄당기기[索戰] 보도자료(매일신보, 1931.03.01.)
▲1931년 장흥 고싸움줄당기기[索戰] 보도자료(매일신보, 1931.03.01.)

◆재현

장흥 고싸움줄당기는 1970년에 재현 형태로 다시 고줄을 꼬았고 고싸움을 하고 줄당기기를 했다. 1970년 4월 15일 열린 제1회 보림문화제의 상징행사로 30여년만에 재현되었다. 장흥읍 행원리에서 제작을 했고 원도리에서 연습을 했으며 탐진강에서 실연을 했다. 

이어 제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여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970년 10월 21부터 23일 사이 광주 공설운동장에서 열렸다. 당시 지춘상(1932~2009) 교수가 지도하였고 이 대회의 사진이 잘 남아 있다. 

1982년에는 KBS 주최의 ‘열전 팔도대항’을 통해 다시 한번 알려지면서 문화계와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1970년 재현 이후 2011년 5월 제41회 장흥군민의 날‧보림문화제까지 매년 연행되었다. 이후 인원 동원과 준비의 어려움 때문에 홀수년 격년제로 시행하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광주공설운동장, 1970.10.21., 사진 지춘상교수)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광주공설운동장, 1970.10.21., 사진 지춘상교수)
▲1970년 시연(장흥읍 원도리, 옛 장흥교도소 자리, 사진 지춘상교수)
▲1970년 시연(장흥읍 원도리, 옛 장흥교도소 자리, 사진 지춘상교수)

◆참고

-이경엽‧양기수‧이옥희,『장흥 고싸움 줄당기기』,장흥문화원,민속원, 2013.

-장흥군‧장흥문화원‧문화재청,『미래무형유산과 장흥 고싸움 줄당기기의 전승 방향 학술회의』(발표문집),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관 영상실, 2023.03.03.

-양기수‧김희태‧김상찬,「장흥 고싸움 줄당기기 고줄 제작과정」-장흥읍 행원리, 2023.04.07.~04.10.-,장흥군 제출자료, 2023.

-김희태,「장흥 고싸움 줄당기기의 유래와 전승」,『제53회 장흥군민의날‧보림문화제 고싸움 사진집』,마동욱사진, 2023.

**2023년 사진 –양기수‧마동욱‧김상찬‧김희태참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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