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秋直宿玉堂(중추직숙옥당)/삼괴당 신종호

가늘게 옥잔 잡아 달을 기다리려니
찬 밤 성긴 주렴 바람 이슬 가득한데
미울 손 오동나무로 처마를 못 비추네.
細把瓊杯待玉蟾    夜寒風露滿疏簾
세파경배대옥섬    야한풍로만소렴
生憎屋角梧桐樹    遮斷淸光不到簷
생증옥각오동수    차단청광불도첨

요즈음 당직이라고 하는 숙직제도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른바 업체에서 숙직 업무를 대행해 주고 있다. 불과 3~4십년 전만 하더라도 숙직 제도가 철저했고, 사고라도 나면 당직이 그 책임을 다 했다. 엄격하게 근무지를 지키는 공무의 책임이었다. 아마도 시인은 반가운 중추절 날 숙직 업무를 맡았던 모양이다. 마음 편치 못했으리. 미울 손 추녀 끝에 저 오동나무 끝에는, 맑은 빛을 가로막아서 처마를 못 비춘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차가운 밤 성긴 주렴 바람에 이슬은 가득하고(中秋直宿玉堂)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삼괴당(三魁堂) 신종호(申從濩:1456~1497)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1487년 <여지승람>을 정정하여 <동국여지승람>으로 다시 찬술하는데 참여하였던 인물이다. 

이듬해 그 공으로 왕으로부터 녹피를 하사받았으며, 왕명으로 요동에 가서 한어를 배우고 돌아왔던 출중한 인물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가늘게 옥잔 잡아 달을 기다리려 하니 / 차가운 밤 성긴 주렴에 바람이 부니 이슬은 가득하고 // 미울 손 추녀 끝에 저 오동나무 끝에는 / 맑은 빛을 가로막아서 처마를 못 비추는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중추절에 옥당에서 숙직하면서]로 번역된다. 맑게 갠 중추절 밤 주렴 끝에 매달린 달을 보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일어날 수가 있다. 고향 생각이며, 근친해야 할 부모님 생각을 더하게 된다. 모두를 고향이나 안식처를 찾아 떠나고 없는 외로운 관가를 지키고 있는 자기의 처지는 더 없이 초라한 생각에 잠기는 경우가 많았다.

시인의 심정도 중추절을 맞이하여 그런 생각에 잠기면서 숙직(그 시대엔 ‘직숙直宿’이라 했음)을 하면서 다른 생각에 젖었음을 느끼는 시상이다. 가늘게 옥잔 잡아 가만히 달이 떠오기를 기다리려니, 차가운 밤 성긴 주렴 바람에 이슬은 가득했었다고 했다. 중추절을 느끼는 무르익어 가는 가을이었음이란 선경의 밑그림은 토실해 보인다.

화자는 창 넘어 휘영청 비치는 보름달을 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밉다는 생각까지 했다는 시상을 이끌어 냈다. 미울 손 추녀 끝 저 오동나무들이 맑은 빛을 가로막아서 처마를 못 비추고 있으니 라고 했다. ‘미울 손’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범죄라고나 할까 특별하게 고의적으로 잘못한 일이 아닌데도 살며시 미운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옥잔 잡아 달을 기대 성긴 주렴 이슬 가득, 추녀 끝에 오동나무 맑은 빛을 못 비추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細: 가늘다. 把瓊杯: 옥잔을 잡다. 待: 기다리다. 玉蟾: 옥섬. 달에 산다고 하는 두꺼비. 달을 뜻함. 夜寒: 밤이 차갑다. 風露: 바람과 이슬. 滿疏簾: 가는 주렴을 채우다. // 生憎: 미울 손. 屋角: 추녀 끝. 梧桐樹: 오동나무. 遮斷: 가로 막다. 淸光: 맑은 빛. 不到 簷  : (달빛이) 주렴에 이르지 못하도록.

 

저작권자 © 장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