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왜냐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방폐물) 처분장 건설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국회에 3개 법안이 계류 중이고, 정부 역시 조속한 입법을 희망하고 있다. 발전소 내 임시 저장시설의 포화로 원전 가동 중단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 싶은 의도에서일 것이다.

핵발전 확대의 빌미가 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적절한 법제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안전하고 투명한 핵폐기물 처분장 건설을 보장하며 지역사회는 물론 현장 활동가들의 우려와 기대에 부응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는 특별법 제정을 통해 안전하고 민주적인 핵폐기물 관리가 가능할지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3개 법안은 고준위 방폐물 관리를 전담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위원회’를 국무총리 소속 행정위원회로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차제에 고준위 방폐물 관리주체를 명확히 하고 독립 행정기관으로 편제하면 정권 변동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안정적인 폐기물 관리가 가능해진다. 이 위원회가 정권의 부침에 기생하더라도 ‘눈치껏’ 할 수밖에 없어 지금처럼 산업부가 원자력 진흥과 방폐물 관리를 한 손에 틀어쥐고 할 때보다 방폐물 관리 정책의 투명성이 높아지고 정책 변동의 기울기가 줄어들 개연성이 높다.

둘째, 3개 법안은 지자체 신청→부지조사→주민투표 순서로 이어질 고준위 방폐장의 입지 선정 절차만이 아니라 처분 방식과 시설 규모까지 규정해 앞으로 방폐물 관리의 포괄적 기반으로 작동할 것이다. 여기에서 시설 규모를 운영 허가 기간 중 발생량으로 할 것이냐, 설계수명 중 발생량으로 할 것이냐는 여전히 여야 간 쟁점으로 남아있지만, 어느 것이 되든 시설 규모의 가변성을 전제로 규정 자체의 탄력성을 확보하면 앞으로 에너지 포트폴리오의 대강을 합법적으로 통제하는 길이 열릴 수 있다.

셋째, 특별법에 고준위 방폐물 처분장 건설의 이정표와 시간표를 못 박으면 발전소 내 임시 저장시설이 영구 처분장이 될까 두려워하는 지역주민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 방폐장 부지 검토부터 입지 선정과 건설까지, 시간표의 완급을 둘러싼 논란은 그를 탄력적으로 규정하거나 법 개정의 가능성을 열어두면 될 일이다.

넷째, 고준위 방폐물 처분장 건설 과정과 절차에 체계적인 주민참여 기제를 촘촘히 설계하면 지금보다 참여적이고, 수용성 높은 해법을 찾아낼 수 있다. 우리 예상보다 더 빨리 변하는 과학기술과 국제 정세 등 에너지 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직ㆍ간접 이해당사자의 참여를 두루, 고르게 보장해야 함은 물론이다.

고준위 방폐물 처분을 위한 포괄적 기반으로 작동할 특별법은 방사성 폐기물의 안전한 처리를 위해 명확한 법적 기반을 제공하는 동시에 시민 참여를 통한 투명성 확보와 민주적 통제, 사업자 감독을 위한 명확한 책임과 절차를 수립하는 게 목적이다. 이 세 가지 목적을 충족하는 내용이라면 특별법 자체를 반대할 일은 아니다. 관점과 입장의 차이를 넘어 일단 회기 내에 통과시키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면 된다.

고준위 방폐장 건설에 성공한 주요국들의 경험을 짚어보면 그 중심에 중앙의회와 지방의회가 있다. 수십 년을 기다려 드디어 열린 입법의 창, 내년 총선의 열기가 밀려오는 하반기면 속절없이 닫힐 게 뻔하다. 그래서 지금이어야 한다.  (한겨레신문 5/22자 보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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