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꽤 많은 비가 내렸다. 섬 지역과 광주는 오랜 가뭄으로 인한 제한 급수 등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흠뻑 내린 비가 반가우면서도 한편 개운치 못하다. 

남는 쌀 대책을 위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현 정부에서 1호로 거부되었기 때문이다. 보릿고개 시절처럼 농민의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아 이를 바라보는 농민의 가슴은 무겁고 씁쓸하다. 이런 와중에 ‘아침밥 한 공기 다 먹기’를 주장한 정신 나간 선량, 70대 농민 먹여 살리려고 헛돈 쓸 것 없다는 보수논객의 발언은 타들어 가는 농민의 가슴을 더 아리게 한다.

양곡법의 핵심은 쌀이 수요에 비해 3~5% 초과 생산되거나 쌀값이 직전년도에 비해 5~8% 하락된 때에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매입하도록 하는 게 주요 골자다. 과잉 생산된 쌀의 시장격리는 쌀 생산과 수급, 가격보장은 정부의 최소한의 책임이며 의무이다. 시장원리에 맡겨야 할 미분양아파트는 건설업계 불황 타파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부가 나서 매입하면서 쌀 과잉에 대해 정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식량 위기 시대 농업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는 농업 포기 선언이나 다름없다. 

  농업은 단순히 먹거리 생산이 아닌 식량안보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으로 난방비 폭탄을 맞으며 자원 안보에 대한 학습효과를 겪었다. 식량안보 강화를 위해 해외 식량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보다 식량 자급율을 높이는 정책이 더 중요한 것이다. 2021년 기준 국내식량 자급률은 44,4%, 곡물자급률은 20.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2021년 쌀 생산이 늘어나면서 농협과 민간 RPC 재고량이 쌓이자 정부가 비축미를 방출하면서 쌀값 폭락이 시작됐다. 밥 한 공기는 200g으로 돈으로 환산하면 200원 정도다. 정부는 올 수확기 쌀값을 80kg들이 한 가마당 20만 원이 되도록 한다지만 기존 정책과 큰 차이가 없다. 이는 지난해 산지 쌀값 18만 7천 원보다는 웃돌지만 20년의 21만 6천 원, 21년 21만 4천 원보다는 낮다. 생산비는 급증한 데 반해 오히려 쌀값은 떨어져 수익성이 악화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전략 작물만 해도 그렇다. 벼를 심었던 논에 콩을 심으면 보조금을 준다지만 콩은 가격과 단위당 수확량 변동성이 2.4배나 돼 수익 변동성이 쌀농사에 비해 5.4배에 이른다. 고령화된 농민이 새로이 시설 장비를 투자할 여력도 없고 어렵게 생산하더라도 판로확보 등 소득 불안정성 등의 위험요인이 이를 가로막는다. 

  농업은 자연환경에 따라 생산량이 좌우된다. 태풍과 집중호우 등 정부가 자연재해 없이 매년 풍년이 드는 것을 전제로 정책을 수립하는 것도 한심하다. 또 맛 좋은 다수확 품종인 신동진 벼를 정부 비축미 품종에서 제외시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마치 70~80년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산아제한 정책으로 오늘의 인구절벽 시대를 잉태한 것과 다름없다. 

  쌀값 안정을 위해 생산조정이 필요하다는 데는 누구나 공감한다. 2021년 그동안 쌀값 안정장치 역할을 했던 변동직불제를 폐지하고 공익직불제를 도입하면서 현재의 쌀값 문제는 예견되었다. 쌀 실질가격은 2000년 이후 30% 이상 하락했고 가격 변동성이 10년 전보다 두 배나 높아져 농가 경영은 그만큼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고령 영세농으로서는 선택의 폭이 없는 것이다. 

  농진청 자료에 의하면 쌀농사 1ha 총소득은 1,000만 원으로 생산비 855만 원을 제외하면 순소득은 150만 원에 불과하다. 우리 농가는 호당 평균 1.5ha로 영세한데다 농업경영주의 60%가 65세 이상의 고령층이다. 농가의 절반이 넘는 54만여 호가 쌀농사에 종사하며 쌀 소비가 반토막 난 상황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쌀농사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소득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청년 농업인 3만 명 육성이라는 대책도 구호에 그칠 공산이 크다. 광역자치단체 등이 청년 농업인 연령을 현행 39세에서 45세로 상향하는 움직임이 오늘의 농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고령의 농가 경영주들이 은퇴하면서 영농승계나 농지보전 이용 등 농업의 지속가능성은 심각해지고 있다. 농지법이 개정되면서 도시와 농촌을 구별하지 않고 농지부동산 투기를 금지함으로써 오히려 농촌의 농지거래를 막고 농지의 타용도 사용을 제한하면서 쌀값 대책을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주지 않는 건 모순이다. 

  정부 주도로 쌀 생산량을 줄이거나 가격을 높이려는 생각은 위험하다. 시장에서 가격과 수급이 결정되도록 하되 대신 쌀 가격이 기준 이하로 하락되면 그 차액의 85%를 보전하는 미국식 가격손실보상제도(PLC)를 도입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미국은 1980년대 이후 15개 주요 농산물을 이 제도를 적용해 전체 농지의 80% 정도가 미국 농정의 핵심인 이 제도의 우산 아래 있다고 한다.

  농업인은 국가사회안전망에서도 늘 소외되는 느낌이다. 코로나19 때 일곱 차례 재난지원금이 있었지만 농민은 농지 면적 기준 0.5ha 미만 소농을 대상으로 두 번만 지급하였을 뿐이다.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한 농업인 소득구조가 정확히 파악된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농업 분야에 대한 통계가 부실함에 기인한다. 이를 개선할 수 있도록 농민의 세부담으로 이어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농민의 소득신고 범위를 확대하여 통계의 정확성과 소득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도 해결해야 할 정부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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