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장흥 보림문화제 행사의 백미는 고싸움이다. 중학생 시절 손에 땀을 쥐고 보았던 고싸움 장면은 여전히 강렬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난 4. 28. 개최한 보림문화제 및 군민의 날 행사에서는 고싸움 멜꾼으로 참여하는 영광을 누렸다. 국민건강공단에서 고위직으로 정년퇴직 후 우산리 이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안규경 이장의 권유 덕분이다.

출전 전날, 탐진강변에서 예행연습을 가졌다. 내가 소속된 ‘동부 고’ 멜꾼들은 80대에서부터 20대까지 남녀혼성이었다. 대부분 육십이 훨씬 넘고, 기수들도 갈팡질팡해 승리는 고사하고 정상적인 출전 여부까지 걱정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장비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고’가 왠지 낡아 보여 허접해 보였다. 기대할 것은 오직 멜꾼들의 충만한 기백과 상대편인 ‘서부 고’의 전력이 만만하게 보였다는 것이다.

걱정 속에 북과 꽹과리, 장구 소리에 고무되며 훈련을 했다. 따가운 봄볕 속에 거듭된 훈련은 힘에 부쳤지만, 멜꾼들은 빠르게 오합지졸에서 최정예 병사가 되었다. 여기에는 이형구 훈련대장(기양리 이장)의 걸쭉한 입담과 백전노장다운 통솔력이 돋보였다. 강한 장수 밑에 약졸이 없듯이....

4. 28. 결전의 날. 오늘은 불멸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탄생일이다. 이순신 장군이 전장에 나서는 마음가짐으로 백의를 갖춰 입고 아침 일찍 나섰다. 

출정식장인 탐진강변에 도착해, 맨 처음 눈에 들어 온 것은 화려하면서도 강한 ‘동부고’의 모습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장비빨을 갖춘 것이다. 백의를 갖춰 입은 멜꾼들도 마치 천상에서 내려온 무적의 ‘백의 부대’ 같았다. 

출정식을 마친 후 군민의 날 수상자인 김장규 친구를 태우고 장흥대교를 향해 나아갔다. 장흥대교를 건너기 전, 모두가 한목소리로 ‘상사 디어 어야’를 외칠 때는 장판교에서 고리눈의 장비가 조조의 대군을 향해 호령하는 듯했다. ‘서부 고’ 멜꾼들의 간담이 써늘했을 것 같다. 

북과 장고, 꽹과리 등 진군나팔 소리에 맞춰 맹렬한 기세로 싸움터에 도착했다. 그 기세로 단 삼합 만에 ‘서부고’를 제압했다. 분함과 원통함에 나자빠진 서부고 멜꾼들의 한숨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동부 고’의 승리는 천년 고을 장흥의 평안과 풍년의 약속이었다.

'장흥 고싸움 줄 당기기'는 장흥도호부 시절인 1872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장흥교 밑에서 서부 고와 동부 고로 나눠 풍년을 축원하는 민속공연으로 150여년의 전통을 가진 민속예술이다. 특히 장흥 고싸움 줄 당기기는 다른 지역의 고싸움에 비해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고을형 축제 전통의 전형이다. 줄다리기는 전승범위와 규모를 기준으로 볼 때 마을형과 고을형으로 나눌 수 있다. 마을형이 마을 내 또는 마을 간에 벌어지는 것이라면 고을형은 고을 단위에서 수행되는 것이다. 마을형 줄다리기는 마을 내 골목길을 기준으로 편을 가르거나 인접 마을끼리 편을 나눠 승부를 겨룬다. 이에 비해 고을형은 마을형을 크게 확대한 것이며 마을형과 달리 ‘큰줄 다리기’라고 불린다. 고을형은 조선시대 읍치가 있던 고을에서 전승하는 까닭에 참여하는 마을이나 놀이꾼ㆍ구경꾼들의 숫자가 수천 명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로 진행된다.

둘째, 성대한 규모와 놀이  과정의 역동성이다.     

장흥 고싸움 줄 당기기의 성대한 규모는 위에서 설명한 고을형 축제의 전통과 관련 있다. 관아의 후원을 받고, 행정관청 간의 경쟁심리가 담겨 있어서 더욱 큰 축제로 확장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참여하는 마을들이 많고, 인근 지역까지 포괄한 큰 규모의 승부로 펼쳐졌으며, 참여하는 놀이꾼의 인원수나 줄의 규모 등이 남달랐다. 실제로 장흥 고싸움 줄 당기기는 장흥 관내의 행사에 그치지 않고 인근 강진, 영암, 보성 주민들까지 참여하는 축제였다. 또한 하루 이틀에 끝나지 않고 여러 날에 걸쳐 실시되고 모여드는 인파가 많아서 상인들이 내놓은 물건들이 나오는 즉시 팔려나갔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먹을 것이 나오면 사서 먹어서 ‘허천난 장’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이러한 장흥의 역사적 내력과 공동체의 기억을 담고 있는 장흥 고싸움 줄 당기기가 문화재청 주관 ‘무형문화유산 발굴ㆍ육성 공모사업’에 선정됐다. 공모 선정으로 장흥군은 2024년까지 국비와 지방비를 투입해 고싸움 줄 당기기를 체계적으로 육성한다. 사업이 끝나면 ‘장흥 고싸움 줄 당기기’는 무형 문화재로 지정 추진된다. 장흥 고싸움 줄 당기기 전통이 장흥만의 특색있는 축제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이다. 장흥군을 비롯해 장흥문화와 관련 있는 각 기관ㆍ단체 구성원들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지혜가 돋보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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