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출신으로 2005년부터 16년간 집권한 독일 마르켈 총리에 대한 평가는 칭송과 경의의 찬사로 일색이다.

마르켈은 헌신과 성실로 유럽 최대 경제 대국 독일 연방 정부를 이끌었다.

최초의 여성총리, 최연소, 최장기 총리 경력을 가진 그녀는 합리와 이성을 존중했다. 원칙을 중시하고 대화와 포용의 엄마 리더쉽은 유럽의 여제, 세계의 총리라는 아우라가 말해준다.

2021년 퇴임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 내용은 본 받아야 할 교훈처럼 들린다.

그녀는 통치하는 동안 법치의 위반과 비리가 없다. 어떤 친척도 요직에 임명하지 않았다. 영광스러운 지도자인 척도 하지 않았고, 독일과 독일 국민은 더욱 성장해 갔다. 이 모든 일이 자발적으로 일어났다. 그녀는 화려한 패션이나 돈의 유혹에도 빠지지 않았다.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처럼 부동산, 자동차, 요트, 개인 제트기를 사지 않은 화학 물리학자였다.

기자 회견에서 한 기자가 물었다. 우리는 당신이 항상 같은 옷만 입고 있는 것을 주목했는데 다른 옷은 없지요? 묻자 대답했다.

“나는 모델이 아니라 공무원입니다.” 이번엔 집을 청소하고 음식 준비하는 가사 도우미는 없는지를 물었다. “아니요 저는 도우미는 필요 없고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집에서 저는 이 일들을 남편과 우리끼리 합니다.”

그러자 또 다른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누가 세탁을 합니까?

당신이나 남편? 머뭇거리지 않고 “나는 옷을 손보고 남편은 세탁기를 돌립니다. 대부분 이 일은 무료 전기가 있는 밤에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아파트 이웃 사이에는 방음벽이 있어서 이웃에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부연 설명이 일품이다. 그리고 “나는 당신들이 우리 정부가 하는 일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질문 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한 발 앞서가는 재치있는 화법 또한 배려의 정신이다.

그녀는 소박하고 정직했고 진실했다. 교만 하지도 않고 겸손했다.

그녀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거기엔 별장, 하인, 수영장, 정원, 도서관도 없었다. 존경할 수 밖에 없다. 이게 그들의 수준이요 문화이자 국격이다.

부럽다. 우리는 진정한 지도자를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아쉽게도 한국의 대통령 중에는 자신이나 영부인이 화려한 패션 감각을 뽐내는 장면들이 화면에 자주 뜬다. 퇴임 후 국비를 들여 사저를 요란하게 꾸미고, 사람들은 삼엄한 경비원의 눈을 피해 담장 너머 테라스에 잠깐 비친 대통령 부부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을 행운으로 착각하기까지 한다.

충격적인 코메디는 현직시절 선물받은 반려견을 퇴임후 부양하는 비용까지 나랏돈을 내 놓으라며 부도난 약속어음을 내민다. 또 특별사면 복권된 MB의 비비케이 탐욕도 씁쓸해 보인다. 그들에겐 불명예란 없다. 고집만이 명예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도 재물엔 어둡고 겸양과 지조로 일관하신 모범적인 지도자가 존재했다.

4대 대통령 해위 윤보선은 명문 옥스퍼드 대학에서 수학했고, 에딘버러 대학 6년을 졸업한 수재로서 신학자이며 절실한 기독교인이기도 하다. 그는 독립운동의 전설이요 상해 임시 정부의 주춧돌을 놓았던 예관 신규식의 제자가 되고 그로부터 억센 파도에도 꺽일줄 모르는 지조를 갖고 살라는 ‘바다갈대, 해위(海葦)’라는 칭호를 받았다.

1990. 7. 18. 93세로 소천하기 까지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스스로를 정원사라 부르며 안국동 정원을 다듬고 선산을 가꾸며 여생을 보냈다. 틈만 나면 잔디밭에 덜석 주저 앉아 숨어있는 잡풀을 골라주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생애 끝에서 그는 정치인, 민족투사 보다는 꽃을 기르고 정원을 가꾸는 평범한 사람으로 기억해 주기를 바랬다. 그토록 범사에 초연하며 위선과 허욕과도 멀리했다.

그렇지만, 불의에는 추상 같았다. 생활은 절제와 모범으로 가득 찼다.

추녀 높은 안국동 기와집 해평윤씨 가문의 유훈에 따라 술과 담배는 입에 대지 않았다. 언제나 정장 차림을 고집 했지만 몇 벌의 양복이 전부였다.

검소한 식단도 인상적이다. 아침은 빵 한 조각과 차, 점심은 반찬이 크게 필요 없는 국수, 저녁은 된장찌개와 소찬으로 밥상을 차리도록 했고 낭비가 없었다.

자식들에게는 “좋은 국민이 되어 사회와 가정에서 모범적 인물이 되는 것과 효성을 다 해 어머님을 모셔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리고 “나라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라”며 자신의 사 후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것조차 사양토록 미리 단속해 두었다. 성자(聖者)와도 같은 인격의 완성이다. 비교하여 요즘 주군의 가족 식단메뉴 카드결제 전담 공무원, 자녀 입시 권력형 비리,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등 도대체 왜 저럴까?

윤 대통령의 정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1960년 4. 19 혁명으로 제1공화국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물러간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제4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선출된 영광도 잠시, 1961년 5.16 군사 구데타로 임기 1년 5개월만에 장면 총리가 이끄는 내각과 함께 쓸쓸히 하야했다.

정의롭고 담백한, 외롭게만 보였던 선비 풍모의 윤보선 대통령, 그의 곁엔 결기 있는 동반자 공덕귀 여사의 폭 넓은 내조가 있었다. 높은 학구열로 학문적 소양을 충실히 갖춘 대통령 부부는 다정한 친구이자 이념을 같이 한 동지로서 기대고 대화했다.

공덕귀 여사 또한 행동하는 신학자로서 평생에 걸쳐 힘없는 사람을 보살피고 후세교육과 조국의 민주화, 인권회복, 여성문제 해결 등을 추구하며 헌신적으로 현실에 참여했던 여성운동가 였다.

지금처럼 퇴임한 대통령의 치적엔 인색하고 잘못된 부분만을 파헤쳐 가혹하리만큼 비판에 익숙해진 국민정서의 차가운 풍토에서 필자는 아직까지 윤보선 대통령에 대한 과오나 비리를 지적하거나 비판하는 기사를 단 한 번도 보질 못했다. 아쉽게도 역사의 속성은 독재자의 가공할 만한 용기는 옹호하면서도 자애롭고 청빈한 대통령에 대한 조명엔 인색했다.

현실과 이상의 중도를 조율하며 청렴을 지조로 애국에 헌신한 고매한 인격의 두 지도자 메르켈 총리와 윤보선 대통령, 그들의 인물사전과 정치노트는 이 시대의 지도자들과 공무원, 정치 지망생들이 학습해야 할 교과서가 아닌가 싶다. 더불어 소 시민인 우리들에게도 마치 위엄있는 노송과 명경수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며 경외감과 일말의 깨달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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