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정/한학자
▲김규정/한학자

云云 是年癸亥二月十二日亥時 新湼槃冥眞大禪師 法號守一 泰仁縣沐浴洞人也 西山法祖五世孫 月渚和尙門弟子 俗姓徐氏 貫達城 母完山李氏 崇仁修德之淸信家也 年甫十六 投點睽爻於雲住山龍莊寺玄覺長老 靈性文思 爲衆歎服 十九受具戒於寶圓禪師 因禀密旨 至二十五歲 博覽群籍 明通三藏 遍叅南城知識 而得華嚴妙旨於月渚鉗鎚邊 再逢彌感 實法室中父子情耳 通方大眼 宜褰緇帷納來學 學者坌集 遂拂向金剛妙香 山水之間 飮澗餐松 頓絕諸緣 究明自己 特立死限 應有㘞下消息而恐泄眞機 對學者之問 恒以不逮稱 無恃㝎之慢 此眞實指示無所悟之面目耶 未有一人度其涯岸者也 嘗有學子問曰 華莊編一切處 現今天堂地獄 當在何處 曰懷州牛喫草 益州馬腹脹 又云此是格外相見 實不頓入 更乞一轉語 曰天下人求醫 灸猪左膊上 以此觀之 如此玄旨 孰能覷破耶 嗚呼 大道緣盡 欲施於他方耶 假示微疾 至第八日 呼侍者曰 汝撫我躬 我今逝矣 因著淨衣巾 轉身向西而坐化 全身放光 瑞彩晃然 七支橫空 般若靈驗 信不誣也 曁三日茶毘 得精骨兩片靈珠二箇 於百步許磐石邊 紺色玲瓏 悅可衆心 歎之服之 誰不然 誰不然 且羣鴉競集 闍維七日後 皆飛散去 是何徵也 於乎異哉 若此異迹 不可湮沒故 通告諸山僉碩尊 伏望速修淨業 同歸解脫大法海 普利一切衆生界焉 千萬幸甚

출전 <龍潭集>

注)

淸信士 - 범어 ‘upāsaka’ [優婆塞]'의 번역. 속가(俗家)에 있으면서 삼보(三寶)에 귀의하여 5계를 받아 지키는 남자 신도. 칠중(七衆)의 하나 청신남(淸信男)이라고도 한다.

鉗鎚(겸추) - 집게와 망치. 선사가 학인을 지도할 때 사용하는 매서운 수단을 비유.

緇帷(치유) - 강석(講席)을 뜻한다. 《장자(莊子)》 〈어부(漁父)〉에 “공자가 치유의 숲에서 노닐고 행단의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였는데, 제자들은 글을 읽고 공자는 거문고를 퉁기며 노래를 불렀다.〔孔子遊於緇帷之林 休坐乎杏壇之上 弟子讀書 孔子絃歌鼓琴〕” 고하였다.

飮澗餐松(음간찬송) - 남조(南朝) 양(梁)나라 심약(沈約)의 《선관비(善館碑)》에 “솔잎 먹고 산골짜기 물 마시는 정은 이치상 나무를 가벼이 하기 어렵다.〔餐松飲澗之情 理難輕樹〕”라는 말에서 유래하여 은거함을 뜻한다.

一轉語 - 깨달음의 계기를 제공해 주는 한마디 번뜩이는 禪語. 禪僧이 한마디 말로 學人 또는 他人의 心機 날 끝(機鋒)을 發揚하여 주는 常格을 벗어난 語句.

◆명진대사 출세 통문

말씀드립니다. 올해 계해년(영조19년1743) 2월 12일 해시(亥時)에 새로 열반하신(新湼槃) 명진 대선사(冥眞大禪師)는 법호가 수일(守一)로 전라도 태인현 목욕동(全羅道泰仁縣沐浴洞) 사람입니다.

서산법조(西山法祖)의 5세손이고 월저 도안 화상(月渚道安和尙,1638~1715)의 문하 제자도 됩니다.

속성은 서씨(徐氏)이고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어머니는 완산 이씨(完山李氏)이니 인(仁)을 숭상하고 덕(德)을 닦는 청신사(淸信士, 남자 불교신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이 겨우 열여섯 살에 운주산(雲住山) 용장사(龍莊寺) 현각장로(玄覺長老)에게 규효(睽爻) 점을 던졌는데(집을 나와 현각장로에게 의탁하여 머물렀는데) 영성적 문장과 사상(靈性文思)에 대중들은 탄복했습니다.

열아홉 살에 보원선사(寶圓禪師)에게 구족계를 받고 이어서 비밀의 뜻(密旨)을 명령 받고(稟命) 스물다섯 살에 이르러 여러 가지 전적을 폭넓게 많이 읽고서 삼장(三藏)에 눈이 밝게 뜨이자(明通) 남녘 성의 선지식(善知識)을 두루 참방(參訪)했습니다.

그리고 화엄의 오묘한 지취(華嚴妙旨)를 월저 도안의 겸추(鉗鎚, 엄한 법) 주변에서 깨닫고서 진실한 법의 집안에서 다시 만났으니 더욱 감개무량한 부자의 정 뿐이었습니다.

통달한 큰 눈(通方大眼)은 강석(講席)을 열고 찾아오는 학인(學人, 도를 배우는 사람)들을 받아들여야 마땅한데도 작은 것을 깨달은데 만족하지 않고 외려 자신은 상승(上乘)의 경계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두려워하며 솔 사립문을 닫고 조사의 뜻을 참구(參究)한 것이 마흔 해나 되었습니다.

학자들이 줄지어 모여들었지만 마침내 떨쳐버리고 금강ㆍ묘향 산수의 사이에서 산골 물을 마시고 솔잎을 먹으면서 모든 인연을 단박에 끊고 자기를 깊이 따져 밝히겠다면서 죽음의 기한을 특별히 세웠습니다(特立死限).

응당 깨달음의 소식(㘞下消息)이 있었지만 진정한 기틀(眞機)이 누설될까 두려워 학자들이 만나 물으면 항상 부족하다고 말하며 선정(禪定)을 믿는 게으름이 없었으니 이것은 깨달은 바가 없는 면목을 진실하게 가르쳐 보여 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를 물가 언덕(涯岸)에 건네 준 자는 한 사람도 있지 않았으니 일찍이 어떤 학생(學子)이 물으며 말하기를, “화장세계(華藏世界, 석가釋迦의 진신眞身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정토淨土)가 모든 곳에 편만하다면 현재 천당과 지옥은 당장 어느 곳에 있습니까.”라고 하자 말하기를, “회주의 소가 풀을 먹었는데 익주의 말이 배가 볼록하구나.”라고 하니 다시 말하기를, “이렇게 바로 격외의 선지(格外禪旨)를 상견(相見)했지만 실제로는 단박에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다시 일전어(一轉語)를 구합니다.” 라고 하자 말하기를, “천하 사람들이 의원을 찾아 헤매다가 겨우 찾고 보니 돼지 왼쪽 팔뚝위에 뜸을 뜨고 앉아있네.”라고 했습니다.

이로써 관찰하건대 이와 같은 심오한 도리를 누군들 능히 간파할 수 있겠습니까. 오호라, 대도의 인연이 다하여 다른 세계에서 베풀고 싶었던 것입니까.

잠시 가벼운 질환(微疾)을 보이시더니 여드레째 되던 날에 이르자 시자를 불러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몸을 주물러다오. 나는 지금 가야겠다.”하고는 깨끗한 옷과 두건으로 갈아입고 몸을 돌려 서쪽을 향하고서 앉은 채로 입적했습니다.

그러자 온 몸에서 빛을 내뿜고 환하게 밝은 상서로운 채색 일곱 가닥이 허공을 가로지르니 반야에 영험이 있다는 것은 진실로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사흘이 되어 다비하자 백보 쯤 떨어진 반석 곁에서 정골(精骨) 두 조각과 영롱한 감색 사리(靈珠) 두 과를 얻었습니다.

대중들은 마음속으로 기뻐할 만하여 탄복하였으니 누군들 그러하지 않고 누군들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또 수많은 까마귀 떼가 다투어 모여들더니만  다비(闍維) 7일 후에는 모두 흩어져 날아갔으니 이것은 무슨 징조입니까.

아아, 이상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기이한 자취(異迹)가 흔적이 모두 없어져서는(湮沒) 안 되겠기에 모든 산중의 여러 석덕과 존자들께 통고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속히 선업을 닦아서(速修淨業) 해탈(解脫)이라는 큰 법의 바다로 함께 돌아가 일체 중생의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한다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

◆波根祖室中
-龍潭慥冠 大師(1700~1762)

書來細悉法味 無事提接 爲喜無已 病阨無撓支撑 而昏矓漸深 是事無過乎 摧折之端矣 如之何也 天在恩家 亦無事否 當在戀戀 前日所持工夫如一 益增而無怮於其間乎 五六年身數 曾已叮囑於耳邊 倘信老僧惜齒之情 則安能放心而有退乎 此在當人 吾何敢言 且德之爲本起於柔和善順之間矣 此亦常常提起之談 或恐忘却耶 人雖打罵 說空知虛者 何恨之有㦲 古云人我山崩處 無爲道自成者是也 若干兒子 帶起信於說聽之間乎 移山事 善爲思量 與相從軰細議 從便如意處之爲望 內藏剋念工 外無矜慢之態 則安徃而不便㦲 來年寅刧之年 恐有虛驚之事也 愼之 專念工夫也 老僧歸期 爲印字所 不能定歸期耳 餘不一一 姑惟

출전 <龍潭集>

◆파근사 조실에게

서신이 와서 법력의 묘미(法味)를 자세히 살펴보니 아무 일없이 제접(提接, 스승이 문답을 통해 제자를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하고 있다니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병으로 곤경에 빠지자 몸이 흔들려도 지탱할 수가 없고 어지럽고 몽롱함이 점점 심해지니 이런 일은 허물이 없는 것입니까.

꺾이고 부러질 단서입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늘에 계신 은가(恩家)께서도 아무 일 없으시겠지요. 마땅히 연연(戀戀)해야 합니다. 전날부터 새겨 지닌(所持) 공부는 한결같습니까. 더욱 늘어나서 그 사이에 근심하지는 않았습니까. 

오륙년 사람의 운수 전에 이미 귓가에 대고 단단히 부탁했으니 만약 노승의 치아 사이 인정을 아끼고 믿는다면 어찌 방심하여 물러섬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때가 되면 당사자가 할 일이라 제가 어찌 감히 말씀 드리겠습니까. 또한 덕이란 본래 부드럽고 따뜻하고 착하게 도리를 따르는 사이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도 종종(常常) 제기했던 이야기입니다마는 간혹 망각했는지 염려스럽습니다. 사람들이 때리고 욕하더라도 허공(虛空)을 설하고 아는 자가 무슨 한스러움이 있겠습니까.

옛사람이 말씀하시기를, “남과 나를 구분하는 견해의 산이 무너진 곳에 무위의 도가 저절로 완성된다.”라고 한 것이 이것입니다. 약간의 제자아이들은 설법하고 청강하는 사이에 믿음은 일으켜 지니고 있습니까.

산을 옮기는 일(주석 처를 바꾸는 일)은 잘 생각하여 헤아려 보고 따르는 무리들과 서로 자세하게 의논하여 뜻대로 할 수 있는 데로 바로 따라서 되기를 바랍니다. 

안으로는 사사로운 마음을 이겨나가는 공부를 감추고 밖으로는 뽐내거나 거만한 태도가 없다면 어디를 간들 불편해 하겠습니까. 

내년은 인겁(寅刧)의 해인데 괜히 놀랄 일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삼가시고 공부에 전념하기를 바랍니다. 노승의 돌아갈 기약은 도장(印字)에 끌려가는 것이기에 돌아갈 기약을 정할 수 없을 뿐입니다. 나머지는 하나하나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잠시 헤아려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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