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기사는 지금부터 20년 전 장흥의 문화관광발전을 위한 노력으로 지역브랜드 정남진 탄생의 진실과 장흥군의회 의정활동의 신문기사를 발췌 보도합니다. 지나온 일이지만 모두가 옳은 일 이라기보다 20년 전 장흥발전을 위해 땀 흘리면서 아쉬웠던 부분과 가슴 아픈 사연을 기록한 기사입니다. /편집자주 
 

▲용산면 남포마을 소등섬 
▲용산면 남포마을 소등섬 

1. 정남진 아이디어의 산실 정동진 해수욕장
백광준은 정남진 아이디어를 어디서 착안했을까?

그는 1978년 서울에서 가정용 만능못과 쉬밍팩 목걸이 제조업을 하는 한진개발을 경영했었다.

쉬밍팩(swimming pack)이란 여름 해수욕장에서 수영복으로 갈아 입다보면 돈을 넣을 주머니가 없어 불편함이 여간 아니다. 오래전부터 부산 해운대 강릉 경포대 등 유명 해수욕장에 아침이면 금속탐지기로 모래밭에서 동전을 수거하는 사람도 있었다.

쉬밍팩은 플라스틱 제품으로 꽃게모양 목걸이로 지폐10장 그리고 동전을 넣을 수 있어 해수욕장의 지갑 대용품으로 인기 상품이었다.

만능못은 단단한 콘크리트 벽, 타일 벽, 심지어 벽동 벽에까지 사용이 가능한 못으로 옷걸이 등으로 사용하는 인기 상품으로 신세계, 미도파 백화점과 전국의 가정용품 판매장에서 판매되었던 제품으로 지금도 판매되고 있다.

백광준은 쉬밍팩을 세계적인 필름제조판매회사의 판촉물로 납품키로 70만개를 생산하였는데 1978년 오일쇼크 파동으로 갑자기 납품이 취소되어 회사가 부도 일보직전에 놓였다. 사무실이 덕수궁 옆 오천빌딩에 소재하여 운영비도 무시할 수 없었다.

판매 전략으로 3파트로 나뉘어 동해안, 부산, 서해안 해수욕장에 직판에 나서기로 결정하고 그는 동해안을 담당했다. 강릉경포대 해수욕장에 쉬밍팩 한차를 푸고 하조대해수욕장에서 망상해수욕장까지 동해안 일대의 해수욕장 여름용품판매장에 위탁판매를 시작했다. 당연히 정동진해수욕장도 빠지지 않고 위탁판매를 하던 중 정동진의 미래관광지발전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때 얻은 아이디어가 정남진이다.

상경 후 그는 이영권의원실을 방문하여 전남 서남해안 노선 구축안으로 보성 예당에서 목포간 철도개설을 건의하면서 해안선을 따라 관광철도를 건의 드렸던 것이 최초로 정남진이란 단어가 등장한 1980년 시점이다. 당시 이영권의원은 보성에서 목포간 철도개설을 정부에 강력 건의 중이던 시절이었다. 아~~ 우리 장흥도 수문해수욕장 부근에 정남진역을 만들고 해안선을 따라 관광열차 운행도 좋겠다는 그림을 그려보았던 것이다. 이토록 정남진 상표의 출현은 사실적 근거가 있었기 때문에 백광준의 상표를 취소하려는 장흥군수의 ‘정남진 상표 이의신청 취소소송’에서 흔들림 없이 승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부에서는 공무상 얻은 비밀을 개인 독점의 상표로 사유화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무식한 주장이다. 다음 사연을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 ‘정남진’이 전국에 알려진 시기

백광준은 2002년 당시 미래 농촌 먹거리를 문화관광산업에서 찾아야 한다는 소신에 변함이 없었다. 하여 제4대 장흥군의원에 당선되자 “장흥문화관광포럼”을 한국관광공사 유건(유인학 총재 아우님) 사장님을 모시고 창설하였고 한국관광공사의 도움으로 전국 메이저급 언론사 문화부 기자들의 정남진 답사 기행을 기획 실행했는데 대 성공 이었다. 

나는 물론이고 고 김석중 소설가님이 리무진버스를 대절하여 정남진을 찾은 20여명의 기자들을 안내하는 수고를 해 주셨다.

전국의 유명 일간지(조선, 동아, 중앙, 세계, 한국, 경향, 한겨레신문 등) 전면에 장흥 남포가 정남진으로 소개되었고 한국관광공사 선정 대한민국 3대 일출(정동진, 호미곳, 정남진) 명소로 남포가 선정되어 2003년1월1일 일출관광객만 1만여명이 넘는 놀라운 효과가 나타났다.

남포 주민들과 나는 2002년말 광주국제영화제 유인학 집행위원장님의 배려로 정남진 영화제와 정월 대보름날 김명전(EBS부사장)의 도움으로 유명연예인 초청 가요제를 개최하여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으며 떠오르는 관광지로 정남진이 큰 희망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정남진을 전국에 알리는데 SNS 등 많은 노력을 하는 동안 장흥군의 도움이나 협조는 단 1도 없었다. 순수 민간차원에서 정남진을 홍보하였던 것이다

나와 남포주민 유인학, 강원구(광주ㆍ전남관광협회장) 장흥신문 이외에도 정남진을 전국에 알리는데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정남진이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하자 그때야 장흥군은 정남진 개발 개획을 세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즉, 장흥군이 정남진 지명을 개발하고 개발계획을 세웠던 것이 아니고 나의 노력으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정남진 개발 가능성을 제안하고 전국에 정남진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장흥군이 뒤늦게 지역개발 브랜드로 사용하려고 서두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3. “정남진” 상표출원 뒷이야기 
정남진이란 단어가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던 2004년 1월 초 이영권의원 보좌관 출신인 이충래 후배와 장흥읍 소재 원다방에서 지역발전에 대하여 담소 중 자연스럽게 정남진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이때 이충래는 나에게 “형님 정남진이란 말을 최초로 꺼낸 당사자 아닙니까? 제 동창 특허청 부이사관 출신 김성규 변리사를 소개해 드릴 테니 특허청에 상표출원을 하십시오. 그래야 우리 장흥지역 뿐 아니라 타 지역(강진, 해남, 보성 등으로 이해 했다)에서 정남진 상표 사용이 불가능 합니다.”라는 권유를 받고 2004년 1월16일 이충래 장흥중 동창인 서울 강남의 김성규 변리사를 통하여 “정남진” 상표출원을 특허청에 하게 되었다.

장흥 부산면 출신인 김성규변리사(당시 지성국제특허 대표변리사, 지금은 특허법인 화우 대표변리사)는 ‘정남진’이라는 상표를 듣자마자 봄의 대표적인 가곡 ‘남촌’의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를 연상시키며, ‘남쪽나라 바다멀리’의 ‘고향초’ 향수가 느껴지는 좋은 상표라고 하면서 대박 날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분야별로 총 5건의 상표출원을 하였는데 특허청 심사결과 1건은 2004년 12월9일 등록되었고 나머지 4건에 대하여는 장흥군수가 변호사 3인을 선임하여 ‘정남진’이라는 상표는 개인이 소지할 수 없는 지명이란 이유 등으로 공고 결정 후 특허청에 이의신청을 하였으나, 김성규 변리사는 나와 협의하여 ‘정남진’ 상표는 장흥군의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나 그 약어에 해당되지 아니하고, 일반 수요자에게 널리 알려진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상표법에 따라 출원인이 정남진이라는 상표를 직접 사용하고자 하는 자에 해당되어 출원인 적격에 하자가 없는 자라고 주장하여, 결국 ‘정남진’ 상표출원료, 이의 신청에 따른 소송비, 승소사례 등 막대한 지출을 하면서 나는 장흥을 위해(최초는 수문에 정남진역 개설을 제안했으나 어렵게 되어 남포를 정남진으로 지정하자는 운동을 펼치게 됨)최선을 다했다. 특히, 2002년도부터 장흥과 정남진을 대재적으로 알려 미래 관광산업으로의 발전을 생각하였지 나 개인의 이익을 위한 일이 아니었기에 단돈 1원의 혜택도 없이 가족과 친지의 반대에도 무상으로 장흥발전을 위해 사용해 달라고 2008년 1월 장흥군에 기증하였다.

기증 당시의 나의 조건은 ‘정남진’ 상표 사용 조례를 제정하여 브랜드의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하여 달라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약속하고 기증받은 장흥군에서 기증만 받았지 지금까지 아무런 관리는 하지 않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이다. 그저 공짜로 생긴 상표로 허술하게 관리되니 기증자의 뜻과 너무 다른 것이다.

지금도 내가 관리했으면 장흥발전에 많은 기여가 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4. 남포(南浦)를 정남진으로 지명하게 된 이유
우리나라의 지명은 역사적인 근거와 유래에 따라 지명을 지어왔다.

장흥군의 경우 용산면은 부용산, 관산읍은 천관산의 앞 글자만 때고 지명이 결정되었으며, 온양, 이천, 백암 등의 지명은 온천수가 나온 근거로 지어졌으며 각 마을이나 시군의 지명 유래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정동진의 지명도 한양에서 말을 타고 동쪽으로 갔더니 다달은 나루터라는 유래에서 정동진(正東津)으로 불리게 되었다.

남포(南浦)는 어떤 곳인가?

옛날 용산면은 남상면과 남하면으로 불리다가 남상면과 남하면을 합해 남면(南面)이 되었는데 행정구역 지명개편으로 용산면이 되었으며 용산면을 흐르는 남상천은 남포에서 바다와 만난다. 

남포마을은 남쪽 나루터란 의미로 석화구이와 소등섬 축제 영화촬영 등 서정적이면서 아름답고 애달픈 소등섬 할머니의 설화가 있어 스토리텔링에도 좋은 지역으로 매년 사진작가와 일출명소를 찾는 관광객의 발길이 지금도 끈이지 않고 있는 南浦마을이다.

포(浦)진(津)이란? 나루터의 뜻으로 대부분 지역의 조그마한 바다나 강의 나루터에 많이 사용되는 글자다. 강진에도 남포가 있고 서울에는 마포가 있다. 모두가 나루터의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중강진(中江津) 또는 이 지역은 군사적 요충지 중 하나로 중강진(中江鎭)이라고도 하였으며, 현재도 이 지역은 중강진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중강(中江)이란 백두산 천지에서 서해로 흐르는 압록강의 중간지점이란 근거로 중강이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토록 지명이란 근거와 유래에 따라 지어져 왔으며 지명이나 이름은 선점하는 자의 것이지 특히 지명을 지도상 경도, 위도를 가지고 명명한 지역은 한군데도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지명으로 광명시가 선정되었는데 아무리 욕심이 나도 장흥군이 사용할 수 없지 않는가 말이다.

지금이라도 무식을 계속적으로 드러낼 것이 아니라 정남진 지명의 근거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위도 경도로 장흥이 정남진이라는 허위사실을 계속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국토지리 정보원에 다시 문의하면 답이 나온다. 대한민국 국토지리정보원 어디에 장흥군의 주장처럼 경도 126도59분, 위도 34도32분이 정남진이란 말은 없다. 

장흥군은 서울 광화문에서 정남족 나루터라는 의미로 회진이던 신동이던 남포든 수문이던 모두 정남진권으로 개발하여 장흥군이 발전하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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