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에서 난생처음 진보당 후보에게 표를 주었다. 그리고 그가 전남의 여당인 민주당 후보를 꺾고 압도적 표차로 당선되었다. 우리 지역 도의원 당선자 얘기다. 그동안의 선거에서 나는 보이콧 주의자인 적도 있었고, 정강과 공약이 보다 진보적이라고 판단되는 정당에 투표한 적도 있었다. 또한 흔히 그렇듯 현실적 당선 가능성에 매여 민주당을 찍거나, 이름이 주는 아우라만으로 녹색당을 선택한 예도 있었다. 하지만 진보당에는 애착보다는 경계심이 많은 쪽이었다. 민주노동당 이후 지금까지 진보당이 이어온 이념과 계보를 대강 알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과 이석기 의원에 대한 박근혜 정권의 탄압이 있을 때도 나는 사상의 자유 측면에서 그들을 방어했을 뿐, 그들의 이념과 행위를 옹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진보당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것을 넘어, 심지어 선거운동(?)까지 하고 다녔다. 선거운동이라는 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 만나는 지인들에게 진보당 후보에 대한 칭찬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했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만나는 사람이라는 게 은거에 가까운 요즘 생활에 비추면 극소수고, 그래서 별 영향력도 없겠긴 하겠지만 말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어야 하는 절박함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잠깐 옆길로 새면, 귀촌 이후 가장 힘든 것 가운데 하나가 공공 행사 나들이다. 군 문화제나 면민의 날 행사 같은 데 가서 소속 마을 천막 아래 앉아 있다 보면, 수시로 찾아오는 불청객들 때문에 행사에 집중할 수가 없다. 현직 군수, 도의원, 군의원과 출마 희망자들이 연이어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그늘에 앉아 술추렴을 하고 있던 어르신들은 어정쩡하게 일어나 그들에게 예를 표한다. 유감스럽게도 그들이 상전이며 어르신들이 비복 같은 모양새다. 그들을 호위하는 비서진까지 가세하면 조금 더 과장하여 그들의 모습은 흡사 점령군이다. 어르신들은 예전부터 관습화되어 별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이 너무나 성가셔서 자리를 피해버리기 일쑤였다.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그들의 목적이 민심 파악보다는 눈도장 찍기에 있다는 건 불문가지다. 이게 여타 정치 관련자들을 보면서 든 솔직한 내 느낌이다.

반면, 귀촌 후 지난 10년간 내가 접한 우리 지역 진보당 구성원들의 이미지는 이런 거였다. 그들은 일단, 마을에서 각자 자신의 생계와 노동에 성실하다. 그들은 손수 논농사를 지어 쌀을 생산하며, 각종 작물을 심어 가꾸고 판매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민들이 느끼기에, 전업으로 나선 정치꾼들의 이미지가 아니며, 같은 주민의 일원이다. 이장을 맡기도 하고, 농민회에서 간부로 일하기도 하지만 그들에게서 권위주의의 냄새를 맡기는 어렵다. 그렇게 그들은 대부분 겸손하고 소박하다. 밝고 넉넉하여 드라마에서 정형화되어 있는 다정한 이웃 아저씨나 아줌마 그대로다. 숫기가 없어 실제로 제안해 보진 못했지만, 그들의 소탈함에 이끌려 허심탄회하게 막걸리라도 한잔 나눠봤으면 좋겠다는 충동을 느낀 적도 많다.

그들은 구체적인 의제로 접근하고, 책임감 있게 실천한다. 최근에는 마을과 장터를 돌아다니며 칼을 갈아주는 걸 봤다. 요즘처럼 칼 갈 곳을 찾기 쉽지 않은 세태에 그 일은 실질적으로 주민들에게 도움을 줬다. 또 군내버스 정류장에서 타고 내리는 어른들을 부축해 주고, 자리까지 안내해 주는 일도 했다. 요즘 농촌은 교통편이 좋지 않아 대부분 자가용을 이용하고, 버스를 이용하는 것은 고령의 노인들뿐인데, 그 소식을 접하고는 내가 다 고마울 지경이었다. 물론 이 행사들도 엄격하게는 정치적 이벤트일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 대다수가 생색내기용 이벤트만으로 느끼지는 않는다는 게 중요하다. 평소 주민 속에 녹아든 성실하고 겸손한 그들의 이미지 때문이다. 똑같은 행위를 해도 그게 눈도장 찍기인지 최소한의 진심이라도 들어있는 것인지 사람들은 피부로 안다. 그것은 물론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 소소한 것뿐 아니라, 주민들을 모아놓고 ‘지역양극화 해소’에 대한 리포트를 발표하는 등 의제 연구에도 게으르지 않다. 써놓고 보니 연애편지처럼 오글거리기도 하지만, 이게 솔직한 내 소감이다.

대중조직인 농민회와 당 조직으로서의 진보당을 혼용하는 것이 내 논리로는 비합리적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들은 브나로드(인민 속으로)에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전국적으로 국회 제3당인 정의당이 진보당보다 훨씬 적은 의석을 얻었다. 그리고 진보당이 전원 지역구 당선임에 비해 정의당은 지역구 비중이 2/3에 불과하다고 한다. 정치에서 무엇이 중요한 지점인지 곱씹어봐야 할 일이다.

이제 그들의 말대로 선거 ‘혁명’과 정치‘혁명’에 성공했으므로 그들의 약진을 기대해 본다. 물론 나는 이제 그들의 ‘지지자’에서 ‘비판자’와 ‘감시자’로 돌아설 것이다. ‘성실’과 ‘겸손’은 영원한 것이 아니며, 언제든 권력과 함께 관료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금의 마음을 잊지 않고 정진하길 바란다.

이번 선거 결과, 장흥 군민들이 선출한 도지사와 군수는 물론, 군의원 전원이 민주당 소속이다. 민주당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견제 없이 전개될 군정이 군민들 앞에 놓여있다. 암담한 일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진보당에 하는 사탕발림이라기보다는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 등에 던져 주고 싶은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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