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억불산 

꿈 많고 끼 많던 학창시절을 보내고 직장생활을 바로 한 탓에 지금까지 장흥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나, 학업 때문에 잠깐 나갔다 온 기간을 빼고는 거의 내 삶의 전부를 내 고장 장흥에서 보냈으니 장흥의 산 증인이라고 보아도 무리는 아닐 듯 싶다. 꿈많고 어디로 튈 지 모르던 학창시절과 직장에 정착을 하고서는 멋진 배우자와 예쁜 가정을 꿈꾸며 보냈던 나의 청년 시절을 떠 올리며 배시시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띄어 본다.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에 지금의 남편과 지인의 소개로 소개팅을 했다. 그때 당시를 회상해 보면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가 나올 정도로 27살의 어여쁜 아가씨와 서울 본사에서 근무를 하다가 광주 지사로 잠깐 파견 나온 풋풋하고 멋진 한 청년은 1994년 11월 둘째주 토요일에 역사적인 만남을 시작으로 결혼을 하고 자녀를 놓고 지금까지 꿋꿋히 장흥을 지켜온 사례가 된 것이다.

27년의 인생을 장흥에서만 지냈던 터라 서울 표준말을 하며 매너가 좋은 한 남성을 만나 대화를 주도해 가며... 

아니 사실은 주도라기 보다는 오리지널 전라도 사투리에 장흥 사투리까지... 서울 총각의 눈에는 내 모습이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얼마나 재밌고 연구대상이었나 싶다. 그때는 토요일에도 근무를 했던 시절이라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광주행 버스를 타고 점심도 먹지 못한 채... 배고픔도 잊고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예쁜 치마 투피스 정장을 입고 빨강색 힐에 예쁜 가방도 매고 조금이라도 멋진 호감을 사려고 잔뜩 꾸미고 나갔다. 

약 26년 전인데도 제법 대화가 잘 통하고 첫 만남에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집(장흥)까지 바래도 주는 센스까지...  첫인상은 완전히 좋았던 것 같다.

결혼을 한 후 나중에 알았던 사실이지만 소개팅을 했던 날 지금의 남편은 서울에 있는 본가에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장흥까지 나를 바래다 주고 또 다시 그 길로 서울까지 올라갔으니 이 얼마나 감동할 일인지... 소개팅 후 했었던 행동들을 보면 아마 남편도 나에 대한 첫인상이 좋았던 것 같다. 그날 새벽 남편은 서울 입구에 있는 마지막 휴게소에서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게 꿀잠을 자버렸다고 한다. 그사이 해는 중천.. 둥근해가 뜨고 시부모님은 걱정을 하시느라 한숨을 못 주무셨다는 에피소드까지 있다.

남편은 그 후로도 주중과 주말에 광주에서 장흥을 오가며 정말 지극 정성으로 나에게 공을 드렸던 것 같고 만난 지 3개월만에 우리는 결혼에 “골인”... 나도 드디어 꿈꾸며 상상해 왔던 아름다운 가정을 꾸며야겠다는 환상도 잠깐, 금방 배가 불러 뒤뚱뒤뚱~~ 허니문 베이비를 갖고 바로 나의 사랑 큰 딸을 품에 안게 되었다.

초보엄마의 설렘으로 마냥 신기하기만 했던 사랑스럽고 예쁜 딸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피곤과 근심 걱정은 모두 날아가고 마냥 좋기만 했던 것 같다.

직장생활을 계속 했던 터라 산부인과에 진료를 다니며 예정일을 잡는데 제일 힘이 들었다. 산모의 건강 상태나 골반 상태 등으로 봐서는 순산을 장담하지만 아이의 머리가 크다는 의사의 말에 의기소침해져서 살짝 두려움이 엄습해 왔었다. 아니나 다를까 유도분만을 시도하며 애를 썼지만 17시간의 시간은 정말 더디게도 흘러 갔고 날을 새어가며 진통을 했는데 결국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너무 힘들다”는 담당의사의 말 한마디에 바로 제왕절개 수술에 동의했고 드디어 3.2kg의 건강하고 예쁜 딸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머리의 지식과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나의 뱃 속에서 이렇게 예쁜 아이가 나왔다는 게 정말 신기했고 비록 자연분만은 실패했지만 내가 스스로 너무 자랑스러웠다. 이 사랑스러운 딸 아이는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랐고 장흥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거쳐 지금은 서울에 있는 대학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다.

그 후 우리 부부에게 2년 6개월 후 정말 사랑스럽고 예쁜 둘째딸 아이가 또 선물로 찾아왔다. 얼굴은 뽀얀게 보름달 같고 입은 오밀조밀, 손가락 발가락은 꼼지락 꼼지락... 초등학생 시절엔 성장이 빨라 키도 크고 운동도 제일 잘 했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에는 또래상담 활동을 하면서 친구들의 고민도 들어주고 조언도 해주며 위로를 할 줄 아는 착하고 예쁜 딸이다. 여러 가지 재능을 갖고 태어난 둘째는 여러 방면에서 상도 많이 받고 칭찬도 많이 받으며 사랑스럽게 자라서 지금은 대학에 진학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이러한 성품은 성인이 되어서도 변함없이 대학에 진학을 해서도 빛을 발하고 있는 중이다.

둘째를 선물로 받은 후 2년 2개월 후 세 번째로 막내 아들을 출산하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위로 누나 둘을 두었지만 씩씩하고 남자답게 잘 자라서 현재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리더쉽이 강해서 지금까지는 리더로서 지도자로서의 일을 잘 감당하는 것 같고 부모님의 말씀도 잘 순종해서 뭐 하나 버릴게 없는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아들이다.

다시 한번 이 글을 쓰며 귀하고 사랑스러운 딸들과, 아들을 주심과 귀한 가정이 있음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이렇게 산 좋고 물 좋고 사람들이 좋은 장흥에서 세 자녀를 초·중·고등학교 까지 과정을 졸업시키고 잘 양육할 수 있었던 것은 어찌보면 큰 행운이 아닌가 싶다. 부모로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앞으로도 지금처럼 큰 꿈을 꾸며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여 소망하는 대로 계획한 대로 꿈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축복하고 기도할 뿐이다.

이제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에 운명처럼 만났던 지금의 남편의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운명같은 만남을 시작으로 좋았던 일, 슬펐던 일 힘들었던 일, 괴로웠던 일, 기뻤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친다. 나에게 있어서 남편은 부모님을 잘 봉양하고 효를 실천하며 자녀의 도리를 몸소 행하는 지행합일의 사람, 아내에게는 배려심이 많고 이해도 잘하여 위로할 줄 아는 그리고 모든 일에 사랑을 실천하며 언행이 일치하는 그런 멋진 사람이다. 자녀들에게는 인생의 선배로써 친구 같고 때론 엄한 스승 같아서 옳은 길로 인도하며 쓴소리로 조언을 아낌없이 해 주는 아빠, 여러 가지로 본이 되는 참 모범이 되는 아빠이다.

그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서 장흥 구석구석을 다니며 SNS에 홍보도 하는 홍보맨이며 산 타는 것을 좋아해서 억불산·천관산·사자산·제암산·가지산 등 장흥에 있는 산은 모두 섭렵할 정도로 등산을 좋아한다. 또 걷기를 좋아해서 나도 덩달아 함께 탐진강변을 산책하며 하루를 반성하고 또 서로를 격려해 주고 위로하며 내일을 계획도 하며 미래를 설계해 보기도 한다. 요즘은 사이클에 관심을 갖고 장비 일체를 구입하는 등 라이딩을 즐기며 주말을 보내고 있다. 남편은 평소에도 배려심이 깊고 사려심이 깊어서 타인을 잘 이해하고 배려하며 양보할 줄 아는 매너남이다. 지금 남편의 조그마한 바램은 아내와 함께 사이클을 타고 라이딩도 즐기고 사진도 같이 찍으러 다니고 싶다고 한다. 아무래도 그 바램은 미안하게도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지만, 최대한 빨리 이뤄지도록 이번 기회에 노력을 해 보겠다고 마음 먹어 본다.

남편은 30여 년 전 서울에서 결혼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이곳 정남진 장흥에 정착하여 살아가는 중이다. 총각때 여행을 좋아해서 전국 일주를 하던 중 장흥을 경유했던 적이 있었는데 장흥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억불산 “며느리바위”의 전설을 이야기해 주셨다고 한다. 남편은 며느리 바위를 바라보며 “내가 또 언제 며느리 바위를 볼까?” 하며 눈여겨 봤다고 한다. 아뿔사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날마다 보게 될 줄이야... 가끔 지인들에게 그때 당시를 떠올리며 운명 같은 이야기를 신나게 할 때면 우리의 만남은 정말 인연은 인연인 듯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또한 장흥을 사랑해서 장흥군 홍보대사로 이곳 저곳을 누비며 사진으로 영상으로 재능기부를 하고 있고 전남 SNS 서포터즈로도 활약하고 있는 중이다. 작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내 고장 장흥에서는 기를 못 펴고 있다. 이것은 자연적인 환경과 이렇게 사람 좋고 산 좋고 물 좋은 장흥에서 살아 간다는 게 얼마나 복 받은 일인지..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반백의 인생을 살아가는 이때에 다시 한번 삶을 정리하며 또 다른 내일을 계획하는데 좋은 기회가 된 듯 싶어서 이런 기회를 준 장흥군에 다시 한번 감사하며 가정과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애정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서 좋았다. 앞으로 장흥을 사랑하고 지키며 홍보하고 잘 보존해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

내 고장 장흥(長興)은...

                 위 삼 석

내 고장 장흥(長興)은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곳

내 고장 장흥(長興)은

문림과 의향의 얼을 이어 

가는 곳

내 고장 장흥(長興)은

사랑과 격려가 흘러 

넘치는 곳

내 고장 장흥(長興)은

먹을 거리와 볼거리가 

많은 곳

내 고장 장흥(長興)은

산 좋고 물 좋고 사람 

좋은 곳

내 고장 장흥(長興)은

영원 무궁토록 길이 길이 

흥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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