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정/한학자

欽㦲 毘盧藏海也 挹之無底 酌而不竭 羣藏之淵 輿典之源 浩浩洋洋 波瀾無際 凡蠡測者 未闚其涯涘 爰有淸凉國師 涉其流 探其源 融暢玄猷 光宣大宗 以爲䟽鈔 解其經通其䟽 其肎綮盤節之間 恢恢游刃 辯詣蔑遺 寔可司南也 然其鈔本 曾有此國流行 而中間湮沒去 辛酉載大經鉅舶 自無何漂 泊于荏島江干 曹溪栢庵 獲此經 使門人登梓 而
唯洪字一卷 失於風濤 齋未刊勒 香山雪巖禪師 素以斯典 爲遊心之場 亦寶玩而惜之曰 眞雪山童子之半珠也 切欲得補其缺而全之 因赴燕 使再三購求而不可得者 有禩矣 會我月渚大師 獲鈔本於南中 乃與同志 蕫役剞劂 不閱月而竣事 配爲全寶 盖其字劃之糢糊 雖不可覽 豈以緇磷棄其温玉也 倘或因此 透入重重無障礙法界玄門 則何論標指之臧否 噫 微斯人 其孰能轉布東國 傳之於後之世也 無盡無盡焉㦲 其亦幸矣

庚辰孟秋上浣虛靜法宗謹跋

출전 <虛靜集>卷之下

注)
淸凉國師(738~839) - 중국 당나라 때의 불교학자, 화엄종의 제4대조.
화엄경소초(華嚴經䟽鈔)는 청량징관(淸凉澄觀,738~839)이 80권 본 화엄경에 주해인 소(䟽) 60권과 요약인 초(鈔) 90권을 붙여 해설한 주석서다. 
肯綮(긍경) - 뼈와 살이 접한 곳. 핵심.
盤節(반절) - 뼈와 뼈가 이어지는 마디이다.


❍화엄경 후발

공경하라, 대장경(毘盧藏)의 바다를! 손으로 움켜쥐어도 바닥나지 않고 아무리 따라도 마르지 않나니 모든 장경(藏經)의 연원이요 수많은 전적들의 근원이로다. 널게도 넘실거려 그 물결은 끝이 없으니 소라 껍데기로 헤아린다면 그 바다의 끝을 규탐(闚探)하지는 못하리라. 
이에 청량 국사(淸凉國師)가 그 물결을 건너 그 근원을 탐색하여 현묘한 뜻을 원융하게 창달하고 큰 종지를 빛나게 펴서 이것을 소초(䟽鈔)로 삼아 그 경을 풀이하고 그 소(䟽)를 소통시켰다. 
국사는 긍경(肯綮)과 반절(盤節) 사이에서 매우 광대하게 칼날을 놀려 남김없이 변별해 나아갔으니 진실로 나침반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그 초본(鈔本)이 일찍이 이 나라에서 유행되다가 중간에 흔적이 모두 없어졌다.
신유년(숙종7년1681)에 대장경을 실은 커다란 선박이 어디에서부턴가 표류하여 임자도(荏子島) 강변에 정박했다. 
이때 조계산 백암 성총(栢庵性聰,1631~1700) 대사가 이 경을 획득하여 문인들로 하여금 나뭇조각에 새기게 하였는데 오직 홍자(洪字) 한 권이 풍랑에 유실되어 온전히 간행되지는 못하였다.
묘향산의 설암 추붕 선사(雪巖秋鵬禪師,1651~1706)는 평소 이 전적으로 마음이 노닐 도량으로 삼고 또한 보물과 골동품으로 여겼다. 
그는 이를 애석해하며 “참으로 설산동자(雪山童子, 동자로서 설산에서 고행하던 때의 석가모니)의 반쪽 구슬이로다.” 하고는 그 결락된 부분을 보충하여 온전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절실했다. 
그래서 연경(燕京)으로 가는 사람 편에 부탁하여 두 번 세 번 구매하려고 했으나 얻을 수 없었던 것이 여러 해였다. 
우리 월저 대사(月渚大師,1638~1715)를 만나 남쪽 땅에서 초본을 얻게 되었다. 
이에 동지들과 함께 일을 독려하고 판각하여 채 한 달이 되기도 전에 일을 마쳤고 짝을 찾아 넣어 온전한 보물로 만들었다.
대개 그 자획이 모호하여 열람할 수는 없을지라도 어찌 물이 들거나 닳아져 나갔다고 그 따뜻한 옥을 버리겠는가. 
혹시라도 이로 인하여 중중무장애법계(重重無障礙法界)의 현묘한 문으로 곧장 들어간다면 표지(標指)가 감춰지고 말고를 어떻게 따지겠는가. 
아, 이런 사람이 적으니 그 누가 동국에 널리 배포하고 후세까지 전할 수 있겠는가. 
다함이 없고 다함이 없다면 어찌 또한 다행하지 않은가.

경진년(숙종26년1700) 맹추 상순에 허정 법종이 삼가 발문을 쓴다.

●허정 법종 대사 시문
-허정 법종(1670~1733
)

▲옥봉 백광훈, 송호 백진남 부자 글씨

▶次一華韻 일화 대사 시에 차운하다.

出俗安閑物外場 세상 밖 도량 탈속해 편안하고 한가하니
脫然還似馬無繮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秋將竹杖遊楓嶽 가을 닥치면 죽장 짚고 풍악산 유람하고
春拂蘿衣入妙香 봄 되면 벽라의 벗어던지고 묘향산 들어간다.
桂月方明趺坐室 계수의 달 밝아오면 선방서 가부좌 틀고 
天花時落誦經床 하늘의 꽃 떨어질 때는 안상 불경 암송한다.
少林暫得禪枝靜 소림사에서 잠시 고요한 선의 지혜 깨달으니
無限淸風動晩凉 무한한 청풍 요동하자 저물녘은 서늘하다.

注)
一華(일화) - 일화대사. 옥봉 백광훈 자손으로 출가했다. 천관산 명승이고 善筆로도 나라 안(國中)에 이름을 날렸다.
蘿衣(나의) - 《초사(楚辭)》의 ⟨구가(九歌) 산귀(山鬼)⟩에 ‶벽려로 옷 지어 입고 여라 띠를 둘렀도다.[被薜荔兮帶女蘿]″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은자(隱者)의 옷을 가리킨다.
桂月 - 계수나무가 있는 달이라는 뜻으로 달을 운치 있게 이르는 말. 음력 8월을 빗대어 이르는 말.
天花 - 하늘 위의 세계에서 핀다는 신령스럽고 기묘한 꽃. 또는 그에 비길 만큼 좋은 지상의 꽃.
禪枝 - 선의 지혜를 나뭇가지에 비유하는 말.

▶贈一華 義州僧 일화 대사에게 드리다. 평안도 의주 납승이다.

掃蘿影 덩굴 그림자 쓸고
誦蓮經 묘법연화경 독송한다.
一朝還告別 하루아침에 다시 이별 고하니
千里不堪情 천리 그리운 정은 감당 못하겠다.
停笻更問今歸路 멈춰 서서 오늘 귀로 다시 물으니
遙指西邊鴨海靑 머나먼 서쪽 푸른 압록강 바닷가 가리킨다.

◆瑞巖禪師傳
 
禪師 名日華 號瑞巖 長興支提山天冠寺人 芙蓉靈觀下有二派 一淸戲休靜 一浮休善修 浮休之嗣 碧巖覺性 碧岩之子 翠微守初 翠微之子 雪坡敏機 雪坡之子 氷谷德玄 氷谷之子 瑞岩日華 瑞岩之子 石潭萬冝 石潭之子 虎峰聖舘 蒲庵德政 船月幸政 日華佛家之名筆也 其軆若李員嶠 而作屛入刻 緇白爭印裝潢者也 其後 嶺南之影波聖奎 湖南之永坡德壽 筆法如也 昔者 晋王右軍 書遺敎經 傳之于後 宋道肯 書金剛經 元趙松雪 書證道謌 白玉峯之屏書 金秋史之心經 西山大師之四家錄 尹洛西徐學老李蒼岩之額 蓮泉龍雲之楹聯 草衣之梵書 鐵船之簡牘 元奇之册書 皆是筆家之有名 日華之筆 亦不愧於古今 伊時人皆稱道之 岸亦一見屏書 若龍蛇飛走 莫知其始終也 

출전 梵海覺岸 <東師列傳> 第三

◆서암 선사 전

선사의 법명은 일화(日華)이고 호는 서암(瑞巖)이며 장흥부(長興府) 지제산(支提山) 천관사(天冠寺) 사람이다. 부용 영관(芙蓉靈觀)의 문하에는 두 파가 있으니 한 파는 청허 휴정(淸虛休靜)의 계열(系列)이고 다른 한 파는 부휴 선수(浮休善修)의 계열(系列)이다. 부휴의 법을 이은 제자는 벽암 각성(碧巖覺性)이고 벽암의 법제자는 취미 수초(翠微守初)이며 취미의 법제자는 설파 민기(雪坡敏機)이고 설파의 법제자는 빙곡 덕현(氷谷德玄)이며 빙곡의 법제자는 서암 일화(瑞巖日華)이고 서암의 법제자는 석담 만의(石潭萬宜)이며 석담의 법제자는 호봉 성관(虎峰聖舘)·포암 덕정(蒲庵德政)·선월 행정(船月幸政)이다.
일화는 불가(佛家)의 명필이다.
대사의 글씨체는 18세기에 출현한 조선 고유의 서체인 동국진체(東國眞體)로 이 원교(李圓嶠)의 필법과 같아서 병풍을 만들어 거기에 새겨 넣는 등 치백(緇白, 승속僧俗) 간에 다투어 낙관(落款)을 받아 표구를 잘해서 간직하려고 했다. 그 뒤에 영남의 영파 성규(影波聖奎,1728∼1812)와 호남의 영파 덕수(永坡德壽)의 필법이 서암과 같았다.
옛날 진(晋)나라 왕우군(王右軍, 왕희지)은 <유교경遺敎經>을 써서 후대에 전하였고 송나라 도긍(道肯)은 <금강경金剛經>을 썼으며 원나라 조 송설(趙松雪, 조맹부趙孟頫)은 <증도가證道謌>를 썼다. 백 옥봉(白玉峯, 백광훈白光勳)의 병풍 글씨와 김 추사(金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심경心經>과 서산 대사의 <사가록四家錄>과 윤 낙서(尹洛西, 윤덕희尹德熙)·서 학로(徐學老, 속인 처사俗人處士)·이 창암(李蒼岩, 이삼만李三晩)의 편액(扁額), 연천 용운(蓮泉龍雲) 대사가 기둥에 쓴 주련(柱聯)과 초의 의순(艸衣意洵)의 범서(梵書)와 철선 혜즙(鐵船惠楫)의 간독(簡牘)과 경운 원기(擎雲元奇)의 책서(冊書)는 모두 병필가(秉筆家)들 사이에서 이름 있는 것들이다.
일화 대사의 글씨도 고금의 명필들에 비하여 조금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여서 그 당시 사람들은 모두 다 찬양했다. 이 책의 편자(범해 각안梵海覺岸)도 한번 병풍에 쓴 서암의 글씨를 본 적이 있는데 마치 용이 하늘을 날고 뱀이 달리는 듯하여 그 시작과 끝을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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