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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필체에 대한 단상야은칼럼/▲김창석/수필가
관리자  |  ch23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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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0.08  10: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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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석/수필가

다가오는 한글날을 얼마 앞두고 과거 여고생의 국군장병 위문편지나 잘못을 저지르고 작성했던 자술서나 반성문등 사연 있는 손 글씨의 추억이 떠오른다. 글씨체나 내용이 맘에 안들때면 꼬깃꼬깃 접어 버렸다가도 금방 몇 번이고 새 종이에 옮겨 다시 고쳐 쓰곤 했던 손글씨의 추억은 풍금소리와 함께 기성세대들의 마음을 살포시 흔든다.
무엇보다 필체가 뛰어나면 첫인상부터 호감과 신뢰와 정상참작이란 우군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 땐 글씨체에 신경을 많이 써 남의 예쁜 필체를 부러워하며 자신만의 개성 있는 글씨체가 틀을 잡기까지 유혹과 결단의 갈등을 겪기도 했다.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일은 손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손과 뇌의 상호작용을 북돋운다. 손글씨를 쓰려면 먼저 머릿속으로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펜과 종이의 저항 때문에 평소 컴퓨터로 작업하는 많은 저술가들도 숙고할 일이 있으면 초안을 손글씨로 작성하여 몇 차례 수정을 거쳐 타자한다.

필자의 경우는 글을 쓸 때 아예 처음부터 손글씨로 시작한다. 그리고 초안을 곁에 놓고 식사 중에도 훑어보고 누워서도 편하게 뒤척이면서 갑자기 떠오르는 신비스런 영감들을 정리하여 글을 꿰맞추면 글의 맵시가 훨씬 우아하고 기운차며 세련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의 글 한편이 완성되기까지는 최소한 대여섯 차례의 되새김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컴퓨터에 오른다.
꺼칠한 첫 문장을 여러 번 체로 걸러내고 새 살을 붙여가면서 느끼는 필체의 야릇한 쾌감이랄까. 더불어 자신이 구상한 주제의 핵심과 수사의 표현이 명료하게 잡힐 때 그 성취감이야말로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덕분에 나는 요즘도 필체가 좋다는 말을 듣고 쑥스러워 할 때가 더러 있다. 우리는 학창시절 기억으로 공책을 삐딱하게 놓고 비스듬히 기울어진 필체를 즐겨 쓰는 친구들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쓴 편지는 오늘날 수준에서 보면 작은 예술품이랄  수 있다. 

천재는 음치라는 애교스런 표현처럼, 필체가 좋은 사람은 머리가 나쁘다는 속설도 퍼져있고, 또 필적이 좋다는 것이 반드시 지적인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대체로 보면 훌륭한 필체의 편지나 서류들을 읽는 것은 퍽 기분 좋은 일이다.

초등학교 때 입학하면 처음 몇 달 동안은 공책에 기준선을 그어놓고 거기에 맞춰 한글을 썼다. 그렇게 숙달을 통해 우리는 앙증맞은 펜촉으로 한글을 제법 모양 있게 그릴 수 있었다.
한쪽은 굵고 볼록하고 다른 면은 얇고 가느다란 펜이었다. 하지만 그런 펜으로 글을 쓰는데 항상 성공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볼펜이 나오기 전까지 펜촉을 잉크에 묻혀 쓰던 시대를 경험했다.
그런데 잉크의 속성은 번지는 것, 걸핏하면 책걸상, 교과서, 공책, 손가락과 옷이 더럽혀졌고, 그건 잉크병에 조심스럽게 펜촉을 담갔다가 꺼내면 끈적끈적한 침전물이 약간 묻어서 나올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만약 실수로 잉크병이 엎질러질 경우 상황은 심각하다. 투명하고 깨끗한 하복이 잉크 얼룩으로 불결해 보이면 대책 없이 새옷이라도 염색하거나 버려야만 했다.

과학은 위기 때마다 발전의 속도감이 더 붙는다. 명품 몽블랑 만년필의 역사는 그런 잉크의 진화로 탄생하였다.
또 다른 위기는 볼펜의 등장이었다. 초창기에 나온 볼펜 역시 주변을 심하게 더럽혔고, 글자를 쓴 뒤 실수로 마지막 글자를 손가락으로 스치기라도 하면 모든 글자가 뭉개져 버렸다. 마치 실수로 컴퓨터 글자가 파리처럼 순간적으로 날아가 버리듯 황당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위기는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보다는 볼펜이라는 새로운 기술의 발달과 함께 글씨를 잘 쓰려는 의지 자체가 없어진 것이다.
아무리 깨끗하게 써도 볼펜으로 쓴 글자는 영혼이 없고 자기만의 스타일이나 개성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요즘 그 사람 필체가 좋다는 말 같은 건 듣고도 시큰둥 한낱 촌스런 자랑으로 관심 밖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관공서나 어느 서실에 들린 기회에 고급스럽고 섬세한 펜글씨 필적을(읍면행정복지센터의 호적대장 등) 보고는 마치 화폭같은 예술성에 저절로 감탄하며 그 사람 성품을 옮겨 놓은 것 같다며 격찬과 함께 존경심을 가질 때가 있다.
허면, 오늘날 우리는 왜 필체가 점점 사라져가는 것을 아쉬워하는가?
자판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글을 쓰는 건 신속한 생각을 기르는데 유익하기 때문이다. 이때 컴퓨터에 혹시 단어를 잘못 쓰기라도하면 자동으로 빨간 줄이 쳐지면서 친절하게 오류를 지적해 준다.

또 다른 효과는 시간단축과 종이의 소비도 줄인다.
요즘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을 쓰면서 줄임말을 쓴 것이 상용화 되었다. 이런 것들을 보고 기성세대들이 가볍다고 푸념한다면, 그건 우리 선조들도 오늘날 우리가 보통 쓰는 스펙이니 페러디니 등 많은 외래어 단어들을 보면 아마 경악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아이들도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는데 익숙해졌다.
하지만, 인류는 그 동안 진보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없어질 수밖에 없었던 문화를 스포츠나 예술적 즐거움으로 되찾아오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행에 옮겼다.

이제는 말을 타고 이동할 필요가 없는 시대임에도 사람들은 승마장으로 말을 타러 간다. 비행기가 있음에도 범선 항해를 즐기고, 터널과 철도가 있음에도 알프스 산맥의 험준한 고갯길로 트래킹을 떠나고, 이메일로 모든 소식을 공유하는 시대임에도 우표를 수집한다.

또 한편에서는 개척시대 서부영화 OK목장의 결투를 연상하듯, 생갈치 모양의 은빛 칼을 들고 삼총사의 경쾌한 버전으로 승부를 겨루는 평화로운 펜싱대회를 관중들이 흥미롭게 구경한다.
하여 오늘날 부모들이 자녀를 캘리그래피(아름다운 서체) 학교에 보내고 그런 대회나 행사에 참여시키는 건 매우 환영할 일이다. 그런 학교는 이미 존재한다. 아름다운 필체는 아름다운 영혼에서 피어난다.
춤을 추는 듯한 부드러운 손글씨의 요염함이야말로 얼마나 낙천적이고 예술적인가. 문인화에서 한호 한석봉과 추사 김정희의 서첩을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이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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