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래공수거  [空手來空手去]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뜻으로, 사람이 재물에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또 과유불급  [過猶不及] 정도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음. 《논어(論語)》의 <선진편(先進篇)>에 나오는 말로, 중용(中庸)의 중요성을 이르는 말이다. 장흥에 기부문화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자.

「공정」은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 중 하나였다. 대학 입시 비리를 시작으로 대기업이나 공기업 채용 과정의 투명성이 흔들릴 때 대한민국은 가장 크게 분노한다. 우리가 이렇게 「공정」에 목을 매는 이유는 셀 수 없는 불평등이 난무하는 중에 인생의 질과 향방을 가르는 지점에서만은 그 기준이 명확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다시피 같은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똑같은 재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하면 유전적인 요소부터 자라온 환경까지 확연히 다른 사람들을 몇 가지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부모님 재력이 자녀의 학력이 된다는 통계에서도 수없이 확인된 사실이다. 따라서 무엇을 가졌는지에 따라 사는 곳, 학교는 물론 접하고 교류하는 사람이 다 달라지는 이들을 모아두고 수능이나 몇 가지 채용 기준으로 판단하는 건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도 수능이라는 제도가 여전히 유효하고 절대적인 이유는 개인의 노력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능력이 모든 것을 뒤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은 학업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성공, 즉 돈을 많이 벌거나 높은 직책에 올라갈 때도 통용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그러나 성공을 순전히 개인의 노력과 능력이라고 단정 짓기 전에 우리는 또 한 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운」이다. 우리는 때때로 노력과 능력의 정도에 큰 차이가 없음에도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상황을 보곤 한다. 혹 우리의 가족이나 지인이 근소한 차로 경쟁에서 졌을 때 곧바로 “이번엔 운이 없었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운」이 성공을 이끄는 결정적 요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경쟁에서 밀렸을 때 「운」보다 자신의 노력과 능력을 탓하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면 「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그다지 깊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운」을 경시하는 우리의 사고방식에 두 석학의 통찰은 큰 울림을 준다. 코넬대학교 경제학석사인 로버트 H. 프랭크 박사의 책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에서 저자는 성공한 이들이 「운」의 영향력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프랭크 박사는 타고난 유전자를 제외한 모든 환경적 요소는 결국 「운」에 의한 것임에도 이것들을 개인의 노력과 능력으로 치부하는 사고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정의는 무엇인가』라는 책으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최근 저작에서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능력주의 이상이 근본적으로 잘못 되었다고 지적하며 「운」의 존재를 언급한다. 두 석학이 「운」의 존재를 강조한 이유는 분명하다. 어느 것 하나 동일하지 않은 조건에서 이루어진 성공의 주된 요인을 개인의 능력으로 이해하기에는 그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저자는 명확한 인과관계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능력ㆍ노력과 성공의 관계를 절대 진리인 듯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성공한 사람들」이 운의 존재를 인정하고 겸손한 자세로 「일(직업)」 자체의 존엄성을 더 가치 있게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체적인 부분 외에는 「운」에 의해 주어진 환경과 다양한 요소로 이룬 성공인 만큼, 이 사회가 모든 사람에게 좋은 환경이 될 수 있도록 솔선수범해야 한다고도 지적한다.

행운의 여신이 허락한 축복으로 성공을 거머쥔 사람들이 소속된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성공을 꿈꾸는 많은 이를 만나 성공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을 공유할 수도 있고 또 격려의 말을 건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일시적이거나 불평등한 사회 제도를 바로잡는 데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운」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요소라면 많은 「운」을 만들어야 한다. 편중된 성공과 부의 기회가 공평해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며 극명히 대비되는 환경적 요소가 평준화되도록 과감한 사회 구조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의 「운」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동일한 「기회」 속에서 자신은 성공했다는 유아적 사고방식이 아닌, 기회의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한 이들의 삶을 떠올려야 한다. 겉보기엔 공정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사회 제도 개선은  「성공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선택사항이 아니다. 「운」을 선사한 사회에게 갚아야 할 빚인 동시에 의무다. 앞장서서 제도 개혁을 외치는 것은 물론 기부를 통해 받은 것을 돌려줄 줄 알아야 한다.
로버트 H. 프랭크 박사는 성공에 필요한 행운은 충분히 만들 수 있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공공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공공투자, 즉 기부야말로 「운」으로 성공을 이루고 부를 이룩한 이들이 주저 없이 실행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의무인 것이다.

「기부」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많은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좋은 마음을 가지고 행하는 선한 행동이라는 지극히 단편적인 생각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사회적 「성공」이라는 결과를 대상으로 한 많은 논의와 연구 결과는 늘 같은 대답을 내놨다. 이제는 그들의 통찰을 사회와 우리들과 그리고 성공한 이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때다. 특정 시대에 태어났기에, 성공에 필요한 사회적 환경과 제도가 있었기에 그들의 성공은 가능했다. 그들의 성공에 기여한 주변 사람들의 헌신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더욱 사회로의 환원은 꼭 이행되어야 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듯 사람도 사회도 없는 곳에서 막대한 부를 이룰 수 없다. 성공한 이를 둘러싼 모든 것이 결국은 성공을 촉진한 것들이었다. 이제는 받은 것을 돌려줄 때다. 그것이 성공한 사람들의 의무이자 신이 그들의 성공을 허락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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