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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 서거 111주년 기념 장흥신문 기획특집(5)【옥중 집필본 동양평화론】전감(前鑑)에서 문답(問答)까지
관리자  |  ch23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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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3.19  10: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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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본 원문에 스며들어 시적인 상상력으로 휘감긴
안중근! 동양평화 [각론]을 가슴으로 뿌리며

▼지난호에 이어서
(08) 이 때를 당해서 일본인 중에도 식견이 있고 뜻이 있는 자는 누구라도 창자가 갈기갈기 찢어지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 이유를 따져보면 이 모두가 일본의 과실이다. 이것이 이른바 구멍이 있으면 바람이 생기는 법이요, 자기가 치니까 남도 친다는 격언을 한 아름 품에 안고 있다. 만일 일본이 먼저 청국을 침범하지 않았다면 「러시아」가 어찌 감히 이와 같이 행동했겠는가. 가위 제 도끼에 제 발 찍힌다는 격이다.
(09) 이로부터 청국 전체의 모든 사회 언론이 들끓었으므로 무술개변(戊戌改變)이 자연히 양성(釀成)되었을 것이고, 의화단(義和團)이 들고 일어났을 것이며, 일본과 서양을 배척하는 화난이 더욱 크게 치열해졌을 것이다.
(10) 8개국 연합군이 발해(渤海) 해상에 운집하여 천진(天津)이 함락되고 북경(北京)이 침입을 받았다. 청국 황제가 서안부(西安府)로 파천하는가 하면 군민(軍民)할 것 없이 상해를 입는 자가 수백만 명에 이르고 금은재화의 손해는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었다.

   
▲효창공원의 안중근 의사 가묘 왼쪽

3. [전감]을 통해 본 동양평화론 시적인 지향세계 : 전감 10개 문단에 의함
위 문답을 포함하는 제안 작품으로 불러내어 명예로운 자리로 앉게 했다. 아래 율시 한 편의 첫째 [기구]는 승구를 끓어 당겼고, 둘째 [승구]는 전구를 끓어내 화합했으며, 셋째 [전구]는 넷째 [결구]와 어울림 한 마당을 【전감】이란 대문이 보다 잘 채워질 수 있도록 얹어 두었다. [전감]이 마무리를 잘 불러들인 조력제란 역할만은 손쉽겠다.

應翁前鑑理眞淸  (응옹전감리진청)
亞勢開陳忠義誠  (아세개진충의성)
退出中華    我獨  (퇴출중화부아독)
敗亡露國破東平  (패망로국파동평)
治途偵探追從態  (치도정탐추종태)
運輸忘勞協助情  (운수만로협조정)
團結黃人參聖戰  (단결황인참성전)
日軍逐斥擧民享  (일군축척거민향)
=敍光『東洋平和論【前鑑】』의 決心과 感想
의사의 평화론에서 전감(前鑑)의 이치 참으로 맑아
아세아 정세를 개진한 의사의 충의가 정성스럽다네
청일전쟁으로 중국이 퇴출되니 우리는 독립을 뺏겼고
노일전쟁으로 노국이 패하니 동아세아 평화는 깨졌네
일인이 길을 낸데도 추종한 한청 민족은 그런 태도였고
왜놈의 물자를 우송한데도 협조한 한청 사람 정이었네
황색인종들은 단결해 성스러운 항일 전쟁에 참가했으니
일본군인 물리쳐서 쫓아내 우리 백성들 자유 누려야겠네.

시인은 전감(前鑑)에 놓았던 동양평화론 40개 문단 중 피라밋트형으로 앞에 놓인 10문단의 시적인 재료를 어루만지며 시상을 일으켰다. 논의를 제기한 안중근의 평화론이 전감(前鑑)의 참 이치에 맑다고 칭찬하면서, 아세아 정세를 개진한 의사의 충의가 정성스러워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고 있다. 그것은 청나라를 공격할테니 길을 비켜달라는 일인의 호소에 우리는 속았음을 뼈아프게 통감하게 되었으니 청ㆍ일 전쟁으로 드디어 중국이 퇴출되니 이제 우리들은 독립 뺏겼다고 했다. 이어가며 다음은 러시아를 굴복시키는 노일전쟁을 일으켜 노국이 패하니 동아세아 평화가 기대하는 것보다는 너무 쉽게 평화가 무너지는 게임은 한국으로 이어지면서 깨졌다.
화자는 청나라와 러시아가 일본에 무릎을 꿇어 제 네들 속국임을 자청하며 잔치를 베풀었음을 알겠다. 방심한 청은 그렇다손 치자. 한국은 어떠했던가. 일인(日人)들이 길을 낸데도 꼼짝없이 이를 추종했던 한ㆍ청 민족의 태도였고, 일인들이 물자를 우송하는데 적극 협조한 사람들도 결국은 한국인과 청나라의 정이었다는데, 큰 방점을 찍는다. 화자의 간절한 희망은 코가 큰 러시아는 제외하고 한ㆍ청의 황색 인종들이 뭉쳐 단결하여 성스러운 우리들의 항일(抗日) 전쟁에 참가하여야 한다고도 했다. 황색인종이 단결하여 두 전쟁에 패했던 해삼위(海蔘威) 라고 불렀던 블라디보스토크을 찾아 염려하면서 일본군을 물리쳐 쫓아내서 백성들은 자유를 누리자고 했다.

「죽을 곳에서 죽음으로 그 이름을 얻었네」에서 보이듯이, 살기 위한 곳이 아닌 죽을 곳(死地)를 찾아서 기꺼이 죽음으로서 귀한 이름을 얻었다며 정성으로 바친 헌시(獻詩)다.
海東明月照人淸 (해동명월조인청) 
우리나라 밝은 달이 국민에게 맑게 비춰
大義堂堂所願成 (대의당당소원성) 
큰 뜻을 당당하게 행해 소원을 이루었네
一發砲聲天地動 (일발포성천지동) 
일발 포성(총성)조선 천지에 크게 진동해
死於死地得其名 (사어사지득기명) 
죽을 곳에서 죽음으로 그 이름을 얻었다네.
=시제 〈安重根[Ⅱ]〉 / 『율산 한성택(전남 순천 별량 1888~1962)』2020-3-26 최초발표

해당 한시 3수는 모두 <安重根>이란 제목으로 작시되어, 시인 율산의 유고집에 실려 전한다. 이 3편의 한시가 쓰여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시대적인 흐름을 미뤄봤을 때 3.1운동을 전후가 아닌가 생각되는 대목이 보인다. 투철한 애국심을 구구절절 떠올리는 시구(詩句)가 당시의 시대상과 분위기를 알 수 있게 한다. 시구에서 잘 보이듯이 [죽을 곳에서 죽음으로 그 이름을 얻었다]고 했으니 직유적인 표현이 곱다.

[사림(士林)들은 몰래 제사모시니 명성이 여기 머물다]고 했으니 日人들 몰래 가만히 모여 제사 모시며, 존경심을 지역민들도 한시를 지어 뜻을 기리면서 바친 헌시(獻詩)다.

安公志氣月同靑 (안공지기월동청)
안공의 의지와 기개는 달과 같이 해맑고
難事能爲大義成 (난사능위대의성) 
어려운 일을 능히 하고 큰 뜻을 이루었네
流水茫茫山寂寂 (유수망망산적적) 
흐르는 물은 아득하고 산은 극히 고요한데
士林行祀亦留名 (사림행사역유명) 
사림들이 제사모시니 명성이 여기 머무네.
=시제 〈安重根[Ⅲ]〉 / 『율산 한성택(전남 순천 별량 1888~1962)』2020-3-26 최초발표

율산 시인이 일군 한시 세 수는 100여년 가까운 세월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집필자가 자식들에게 해당 시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필 당시엔 조선의 독립과 연관된 내용을 한마디만 해도 처벌받았기 때문에 안중근의 이름은 마치 금기어와 같았을 것이다. [흐르는 물은 아득하고 산은 고요하기만 한데]라고 했으며 [사림들이 옹기종기 제사를 모시니 명성이 여기 머무네]라는 가냘픈 속삭임이 숨어있다.

3. 현상(現狀)
1) [현상(現狀)]의 속뜻과 동양평화론에 얽힌 배경의 세계

[현상]은 국어사전만 봐도 8개의 동음이의어가 나온다. 본 동양평화론 발제(發題)에서 보이는 [現狀]은 현재의 상태, 또는 지금의 형편을 뜻하고 있는가 하면, [현상(現象)]은 관찰할 수 있는 사물의 모양과 형태를 뜻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현상(現想)은 <사람의 두뇌 속에 상상(想)으로 떠올라 있는(現) 이미지(識)>라는 뜻으로 쓰인다. 현상(玄裳), 현상(懸象), 현상(顯賞), 현상(現像), 현상(懸賞)] 등도 있다. 현재의 상태, 또는 지금의 형편 등을 뜻하고, [현상(現狀)]은 존재하고 있는 그대로라는 뜻을 담고 있어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한 차원 높은 가장 넓은 뜻으로는 모든 존재현상을 지칭하는 뜻으로 쓰인다. 이어서 조금 넓은 뜻으로 다음 두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를 지칭하고, 가장 좁은 뜻으로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으로 특별히 한정한다는 뜻 등 다소 폭넓게 담았다(여기서는 가장 좁은 뜻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조금도 조선에 틈을 주지 않고 1905년 강압으로 을사조약을 맺는다.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조약이다. 이의 원명은 [한일협상조약이며, 제2차한일협약, 혹은 을사5조약, 을사늑약(乙巳勒約)]이라고 한다. 이듬해인 1906년 2월에는 서울에 통감부가 설치되고, 조약 체결의 원흉인 이토가 초대통감으로 취임한다. 통감부는 외교뿐만 아니라 내정 면에서까지도 우리 정부에 직접 명령을 집행하게 하는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음은 우리 조야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조약에 따라 한국은 외교권을 일본에 박탈당하여 외국에 있던 한국외교기관이 전부 폐지되고 “영국ㆍ미국ㆍ청국ㆍ독일ㆍ벨기에” 등의 주한공사들은 공사관에서 철수하여 본국으로 돌아가는 신세가 되었다. 이에 대해 우리 민족은 여러 형태의 저항으로 맞섰다. 장지연(張志淵)은 11월 20일자 『황성신문』에 논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발표하여 일본의 침략성을 규탄하고 조약체결에 찬성한 대신들을 공박하자, 국민들이 일제히 궐기하여 조약의 무효화를 주장하고 을사5적을 규탄하면서 열렬히 조약 반대투쟁에 나섰다. 이러한 사실이 세계 각국에 알려지면서 이듬해 1월 13일 『런던타임즈』지가 이토의 협박과 강압으로 조약이 체결된 사정을 상세히 보도하였으며, 프랑스 공법학자 레이도 프랑스 잡지 『국제공법』을 통해 1906년 2월호에 쓴 특별기고에서 이 조약의 무효를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하는 등 큰 사단이 벌어졌다. 국내에서 쏟아진 백성들의 함성보다는 외국에서 쏟아 붓는 목소리가 더 컸다.

2) [현상(現狀)]에서 보이는 동양평화론 사실적인 배경
안중근 동양평화론은 [서문]에 16문단, [전감]에 40문단을 배열했고, [현상ㆍ복선ㆍ문답]은 모두 빈집이었다. 고른 평설을 순서대로 위 [3개집]에도 10문단씩 배열한다.

   
 

(11) 그러하면 산현유붕(山縣有朋) 내목희전(乃木希典)씨의 경략(經略)이 필히 무산되었을 것이며, 또한 마땅히 이 때 청국정부와 주권자의 야심이 폭발해서 묵은 원한을 갚게 되었을 것이면서 때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12) 이른바 만국공법(萬國公法)이라느니 엄정중립(嚴正中立)이라느니 하는 말들은 모두 근래 외교가(外交家)의 교활한 무술(誣術)이니 족히 말할 바가 못된다. 병불염사(兵不厭詐) 출기불의(出其不意) 병가묘산(兵家妙算) 운운하면서 관민(官民)이 일체가 되어 명분 없는 군사를 출동시키고 일본을 배척하는 상대가 극렬 참독(慘毒)해 졌다면 동양 전체가 휩쓸 백년풍운(百年風雲)을 어떻게 할 것인가.
(13) 만약 이와 같은 지경이 되었다면 구주(歐洲) 열강이 다행히 좋은 기회를 얻었다 해서 각기 앞을 다투어 군사를 출동시켰을 것이다.
(14) 그 때 영국은 인도 「홍콩」 등지에 주둔하고 있는 수륙(水陸) 군대를 병진시켜 위해위(威海衛) 방면에 집결시켜 놓고는 필시 강경수단으로 청국정부와 교섭하고 캐어물을 것이다. 또 「프랑스」는 「사이공」 가달마도(加達馬島)에 있는 육군과 군함을 일시에 지휘해서 「아모이」 등지로 모여들게 했을 것이고, 「미국」ㆍ독일」ㆍ「벨기에」ㆍ「오스트리아」ㆍ「포르투갈」ㆍ「희랍」등의 동양 순양함대는 발해 해상에서 연합하여 합동 조약을 예비하고 이익을 균점할 것을 희망했을 것이다.
(15) 그렇게 되면 일본은 부득불 밤새워 전국의 군사비(軍事費)와 국가재정(財政)을 통틀어 짠 뒤에 만주 한국 등지로 곧바로 수송했을 것이고, 청국은 격문을 사방으로 띄우고 만주 산동 하남(河南) 형량(荊襄) 등지의 군대와 의용병을 급급 소집해서 용전호투(龍戰虎鬪)하는 형세로 일대풍운(一大風雲)을 자아냈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형세가 벌어졌다면 동양의 참상은 말하지 않아도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16) 이 때 한ㆍ청 양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약장(約章)을 준수하고 털끝만큼도 움직이지 않아 일본으로 하여금 위대한 공훈을 만주땅 위에서 세우도록 했을 것이다.
(17) 이로 미루어 보면 한ㆍ청 양국 인사의 개명(開明) 정도와 동양평화를 희망하는 정신을 족히 알 수가 있다. 그러하니 동양의 일반 유지들의 일대(一大) 사량(思量)은 가히 뒷날의 경계가 될 것이다.
(18) 그런데 그 때 러ㆍ일 전역(日露戰役)이 끝날 무렵 강화조약(講和條約) 성립을 전후해서 한ㆍ청 양국 유지인사(有志人士)의 허다한 소망이 다 절단되어 버렸다.
(19) 당시 러ㆍ일 양국의 전세를 논한다면 한번 개전한 이후로 크고 작은 교전(交戰)이 수백 차례였으나 「러시아」 군대는 연전연패(連戰連敗)해서 상심낙담이 되어 멀리서 모습만 바라보고서 달아났다. 일본군대는 백전백승하고 승승장구하여 동으로는 「블라디보스토크」 가까이까지 이르고 북으로는 「하얼빈」에 육박하였다. 사세가 여기까지 이른 바에야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이왕 벌인춤이니 비록 전 국력을 기울여서라도 한두 달 동안 사력을 사해 진취(進取)하면 동으로 「블라디보스토코」을 뽑고, 북으로 「하얼빈」을 격파할 수 있었음은 명약관화한 형세였다.
(20) 만약 그렇게만 되었다면 「러시아」의 백년대계는 하루아침에 필시 토붕와해(土崩瓦解)의 형세가 되었을 것이다. 무슨 이유로 그렇게 하지를 않고 도리어 은밀히 구구하게 강화를 청해 (화를) 뿌리째 뽑아버리는 방도를 달성하지 않았는지 애석한 일이다.

3) [현상]을 통해 본 동양평화론 시적인 지향세계 : 현상 10개 문단에 의함
위 문답을 포함하는 제안 작품으로 불러 앉혀 명예로운 자리로 앉혔다. 아래 율시 한 편의 첫째 [기구]는 승구를 끓어 당겼고, 둘째 [승구]는 전구를 끓어내 화합했으며, 셋째 [전구]는 넷째 [결구]와 어울림 한 마당을 【현상】이란 대문이 보다 잘 채워질 수 있도록 얹어 두었다. [현상]이 끝마무리를 잘 불러들인 조력제란 역할만은 손쉽겠다.

論中現狀感懷長   (론중현상감회장)
獨立精神萬古芳   (독립정신만고방)
力說東平扶社稷   (역설동평부사직)
强調世秩立紀綱   (강조세질립기강)
淸兵續敗追從貌   (청병속패추종모)
日隊連乘强壓光   (일대연승강압광)
主理昭詳傳後學   (주리소상전후학)
精微分析孰敢忘   (정미분석숙감망)
=敍光『東洋平和論【現狀】』의 決心과 感想
동양평화론 중 유독 현상(現狀)에 감회가 더 크다는데
안 의사의 그 독립정신만은 영원토록 만고에 아름답네
동양평화를 역설하면서 혼신을 다 해 사직을 도왔고
세계 질서를 강조하면서 온전한 기강을 내세었구려
청나라 병사들 속패(續敗)로 전모를 추종하게 되었고
일본 군대가 연승하니 일본은 세계의 강압한 빛이었네
주된 이론과 자상함으로 두루 밝혀 후학들에게 전하니
정밀하게 분석한 동양평화론을 누가 감히 잊었겠는가.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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