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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부 다소, ‘웅치방 웅점소’예강칼럼(131)/박형상/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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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10  17: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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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중후기와 조선시대 내내 장흥府에 속하던 ‘웅치방, 회녕방, 천포방’ 3방(坊)이 1914년에 보성군에 이속되어 ‘웅치면, 회천면’ 2면(面)으로 편제되었다. 위 3방지역이 그때부터 보성 땅으로 바뀐 것인데도, ‘당대사정, 당대인물’이 무시되면서 장흥과 보성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문화적 마찰이 심해지는 것 같다. 장흥 관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보성 논자들의 행태를 정리해 본다.

1. 먼저 기록을 본다. <세종실록지리지, 장흥도호부> 편에 나온 장흥 다소 13에 ‘웅점소, 가을평소’가 등장한 반면에 <세종실록지리지, 보성> 편에는 나오지 않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장흥>에 ‘웅점소’가 府東쪽 15리로, ‘가을평소’가 府東쪽 31리로 나온 반면에 <신증동국여지승람, 보성>에는 나오지 않는다. 장흥읍지 <정묘지,1747>에 '웅치방, 회녕방, 천포방' 기록이 그대로 남아있다

2. 웅치방 “웅점소(熊店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요즘 보성군은 장흥 ‘청태전(돈차)’의 유사품이라 할, 사각형 병차(떡차)를 개발하여 이른바 고려 ‘뇌원차’ 명칭으로 농업유산 인증을 받으려 시도하는 모양이다. 평소 ‘녹차 수도’를 자부해오던 그들이 고려 전통차 복원 운운함도 퍽 생경한 모습인데, 마치 동북(東北)공정을 펼치는 중국인들 같다. 웅치면과 회천면 지역이 원래 속해있던 시절의 장흥府 역사는 아예 외면하고서 제반 사정이 보성군의 독자적 전통인양 재포장하려 한다. 그들은 ‘당대역사, 당대지명, 당대인물’에 고개 돌리고서 오늘 하루를 강조하기에 바쁜 것 같다.
옛 장흥府에 내내 속하던 ‘웅치방, 회령방, 천포방’ 3방 영역이 1914년경에야 보성군 ‘웅치, 회천면’으로 이속된 역사적 사실에 침묵해 버린다. 이에 보성군 역사에서 그들 전통茶 연원을 찾기 어려워지자,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장흥부 13 茶所’를 통째로 부정하고 나섰다. 아마 장흥府와의 역사문화적 연고성을 차단하기 위함일 것. 예컨대, 장흥부 13茶所는 茶所가 아닌, 13所에 해당한다면서, 그 시절 장흥府에 기록된 ‘웅점소, 가을평소’도 일단 부정하고 난 후에 “현재의 보성 땅에 ‘약찌미’ 자생차 마을이 있다”고 돌려 말한다. 그리하여 장흥부 茶所로 기록된  ‘웅점(熊店)소’에 대하여 “단지 金을 채굴하던 금소(金所)일 뿐이고, 그 위치는 현 장흥읍 금산(錦山.錦城)에 해당하니, 현 보성군 웅치면 ‘약찌미’ 자생차 마을과는 무관하다”고 강변한다. 현 장흥읍 ‘금산’ 마을이 일제기에 등장한 사정을 모른 데서 견강부회 억지를 부린 것. 1911년 <조선지지>에도 錦山은 아직 없다. 속설로 金매장설이 있으나 실제는 금광채굴과 무관함에도 ‘熊店=錦山=金所’를 바로 동일시함은 보성 논자의 독단에 불과하다. 또한  <대동지지> 역시 “웅점소가 웅치방이 되었다.”고 기록하고서 그 웅치방 영역을 ‘장흥부 치소 東15리~東30리 구간’으로 말하고 있음에도, 보성 논자는 “장흥府 東15리 웅점소 茶所는 결코 현 보성군 웅치면에 존재할 수 없다.”고 우겨댄다. 그런데 <보성군지, 보성군 마을유래지>를 보면 온통 ‘일본기업 등의 녹차, 다원, 일본품종 이야기’만 있을 뿐이지 달리 ‘전통자생차, 뇌원차’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들 입장에서는 현재의 웅치면 약산(藥山)마을 藥찌미 자생차를 내세울 수 도 있겠는데, 그렇다한들 그 위치 자체부터 ‘엣 장흥부 웅치방 지역’일 뿐이고 ( 그 고려와 조선시대 웅치 땅이 어디로 떠나갔겠는가?), 장흥의 ‘보림사 다약(茶藥)’ 전통과 장흥의 ‘茶所 웅점所 전통’과 ‘청태전 전통’의 복합물에 해당할 것. 현재의 장흥 땅에는 농원차밭이 아닌, 야생차밭이 나름대로 남아있다. 요컨대 그 웅치와 회천이 장흥 땅에 속하던 시절,  장흥府 장흥땅 茶史 기록에 토산(土産)茶와 토공(土貢)茶가 함께 있었던 것이고, 특히 장흥府 13茶所가 그  토공으로서 茶貢 역무를 수행했을 것. 재미있는 점은 보성 논자들이 ‘장흥부 13 茶所’를 열심히 부정하면서도 정작 ‘보성군 기록에 나타난 향, 소, 부곡과 뇌원차 관련성’ 여부에는 침묵한다는 것. 거듭 말씀드리지만 <보성군 기록>에는 ‘다소 웅점소, 다소 가을평소’가 나오지 않는다. <장흥부 기록>과 <흥양현 기록>에 ‘가을평소’가 등장하는 것, 어떤 보성 논자가 “가을평이 한자말 노원에 해당한다.”고 전제하고서, “그 ‘노원’이 ‘뇌원’으로 불려지면서 ‘뇌원차’ 유래가 되었다”고 풀이함은 가히 보성식 아전인수라 할 것. 보성의 ‘노동, 노산’을 ‘뇌동, 뇌산’이라 발음하며, 전라도 장성 ‘갈재 노령’을 ‘뇌령’이라고 부르는가? 한 마디 보태면, 장흥府 기록에는 13茶所 말고도 ‘자기소, 도기소’가 별도로 병기되어 있으니, 함부로 합계 13所로 단정하고서 ‘금소, 와소, 옹점, 자기소’라 편의적으로 왜곡하지 말기를 당부 드린다.

3. 장흥府에 연원한 웅치방 판소리 사연들-  장흥 서편제 판소리를 잇는 보성 강산제 판소리도 있다. ‘박유전’의 강산제 역시 장흥부 웅치방 웃강산 마을에 기반한 것.
필자는 오래 전에 보성 웃강산 주민의 초청으로 그곳 현지를 답사한 일도 있다. 그들 소리꾼들은 장흥府 치소 신청(神廳)을 출입했으며, 장흥府 부산방에서 기재재를 돌아넘어 웅치방 강산에 이거하여 소리판을 가꾼 장흥선비도 있었다. 그 남쪽 회천면 정씨일문 보성소리 연원도 그러하다. 회천 소리꾼들은 보성읍쪽이  아니라 장흥 안양면과 장흥읍으로 통하는 해변길을 오가며, ‘소리판’을 벌이고 ‘당골판’을 관장하며, ‘장흥신청 판소리’를 간직했던 것.

4. 덧붙이는 말- 매헌 윤봉길 의사는 "예청홍객 다정석(禮靑洪客 多情席)"을 말하셨다. ‘예산, 청양, 홍성’ 등 내포문화권 출신의 정겨운 합석을 그렇게 표현한 것. 그렇다면 우리 ‘장흥, 강진, 보성’ 사람들 역시 왜 그렇게 결속하지 못하랴. ‘장강보 3군’이 참여하는 관광지도, 지역화폐, 스포츠교류, 판소리교류, 현대문학, 3군읍지사료 공동출간, 3군 茶문화대회를 왜 추진하지 못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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