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암 박이달(1577~1621). 약400여년전 장흥 땅에 묻힌 경상도 사람이다. 인천李씨 李덕생의 사위가 되면서, 용산 하금에 들어왔으며, 밀양박씨 찬성공파 장흥 입향조로, '송당 朴영(1471~1540)'의 5세손이다. 자신에게 '병주(倂州)'가 된 장흥 땅에 적응하며, 고향 선산(善山)을 그리는 심경을 詩로 남겨놓았다. “倂州는 제2고향” 뜻은 중국 시인 '가도'의 "각망 병주시고향(却望 倂州是故鄕)"에서 유래했다.
'朴이달'은 혹 1592년경 임난 초기에 善山에서 왜군을 상대로 유격전을 이겼던 善山부사, '반곡 정경달(1542~1602)'을 알고 있었을까? 그 善山을 다시 다녀오지 못했을까? <정묘지,1747>는 '朴이달'을 따로 기록해놓지 않았다. 합리적 복거택리(卜居擇里) 철학을 견지한, 그는 실사구시적 생활인이었다. 데려온 가노(家奴)를 해방하고, 서당을 개설하고, 귤 농사도 했던 모양. 그 호가 芝菴인데, 영지(靈芝)버섯을 채취했을 금곡 자지산(紫芝山)이 그 詩에 등장한다. '이앙(移秧)'법도 언급했다. 마침내 倂州 紫芝山 기슭에 묻혔으며, 동쪽을 바라보는 묘소와 비석은 용산 남포에 사는 11세 후손에 이르렀다. 그 당시 용산 하금에는 '金여중(1591년 진사), 李승(1606년 진사)'이 있었다. ('金여중'은 '李승'을 기리는 만시에서 "一里東西共卜隣"이라 했다.) 이하, <밀양박씨 파보>에 실린 <芝菴시고, 詩16수>의 일부인데, '병주(倂州) 長興'과 '사향(思鄕) 善山'을 오가는 경상도 선비 가슴이 그려진다. 조상이 남긴 기록은 뿌리를 찾는 후손들에게 옛 기억을 간직할 기회를 주는 것이리라.
- 긍지(矜持)
睡起徘徊活水原 잠 깨어 쇠끼미샘 찾아가면서
隣居上舍到荊門 이웃 ‘진사’ 집 문안인사 중에
登床爲問吾先祖 등상에서 내 선조 물어오기에
自說松堂五世孫 '송당 오세손'이라 말씀 드렸네
<주> 이때 '상사(上舍)'는 '李승‘보다는 ’金여중'일 것.
- 우거 구년(寓居 九年)
密城君後善山人 밀성군 후손으로 善山 사람
一寓殊方九餞春 어쩌다 타향살이가 9년째
野老村童多熟面 노인 아이 자주 얼굴 익혀져
相逢到處語詢詢 어디서 만나든 다정한 인사
- 병주 고향(倂州 故鄕), 제2의 고향
讀罷彖經立晩凉 읽던 책 덮어둔 서늘한 저녁
十年往事一滄桑 지난 십년에 상전벽해 세상
往來眼慣湖山面 살다보니 눈에 박힌 호남땅
不是他鄕是故鄕 타향이 아닌, 여기가 곧 고향
- 복거(卜居)
遊山觀水意何如 '유산관수'에 다 뜻이 있다네
朝採荊薪暮釣魚 아침 땔나무 줍고 저녁엔 낚시
擇不處仁焉得智 '불인처' 擇하면 어찌 깨우치리
古來賢哲擇隣居 고래로 ‘현철’은 이웃 가렸네.
- 귤수(橘樹)
南國西風橘滿枝 남국 가을바람에 유자 주렁주렁
經霜金色最華滋 서리 맞아 금색 되면 최고의 맛
渡淮何必飜成枳 ‘회수’ 건너면 하필 탱자 되는데
惟患居人不比知 사람들 그 사정 몰라 근심한다네
- 착지소감(鑿池所感), 연못을 파고서
紫芝山下設書堂 ‘자지산’ 아래 書堂을 개설하고
蔬鑿庭前半畝塘 뜰앞에 반이랑 작은 연못 팠네
引灌溪流池自滿 계류 끌어대 연못 가득 채우니
要防春旱進移秧 봄 가뭄에도 ‘이앙’이 가능하네.
- 우봉 향우(偶逢 鄕友)
萍水無常夏日長 타향살이 무상하고 여름날 길어
手扶黎杖過龍崗 지팡이 휘젓고 ‘용강’을 지나다
偶因詩酒逢三友 우연히 詩酒 세 친구를 마주치고
鼎坐松陰說舊鄕 솔 그늘 앉아 옛 고향 말한다네.
- 사향(思鄕), 고향 생각
身多所碍事多違 몸이 안 좋고 일들이 어긋나도
留滯遐鄕未得歸 먼 타향이라 돌아가지도 못해
철罷茶盃成午睡 찻잔 내려두고 낮잠에 빠지니
故原松栢夢依依 고향 先瑩 풍경이 꿈속에 아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