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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읍 옥촌마을의 이야기문화탐방/栢江 위성록 이야기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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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19  13: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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栢江 위성록/장흥위씨 씨족문화연구위원

관산읍 옥당리 3구 옥촌(玉村)마을은 옥산(玉山)의 첫자 "玉"과 신촌(新村)의 끝자"村"을 합하여 불려지고 있다. 남도의 영산(靈山) 천관산(723m)에서 발원한 농안천과 부용산(609m)에서 발원한 성산천은 용전마을 앞에서 합류하여 죽천강(고읍천)을 이루면서 마을 앞 바우쟁이 들판을 적셔주고 있다. 이 물줄기는 죽교리와 지정리 앞 들판을 경유하여 죽청포구에 다달아 득량만 바다로 유입된다.

   
 

옥촌마을을 기준하여 동쪽으로는 죽교리 1구·옥당리 4구와 경계하고, 서쪽으로는 용전리와 경계하며, 남쪽으로는 옥당리 2구 옥동마을과 경계하고, 북쪽으로는 남송리와 경계된다. 인근에는 관산읍 소재지 옥당리 1구 옥당마을, 옥당리 4구 평화촌마을이 위치하여 행정기관과 상권이 집약되어 있어 주민들은 다른 마을 주민에 비교하면 불편 없이 생활하고 있다.

   
 

2001년(辛巳) 정부지원금, 주민 헌성금, 출향인 헌성금 등 일금 54,180,000원을 들여 마을 중앙 도로변에 마을회관을 새롭게 건축하였다. 현재 마을 주민은 80여호가 거주하고 있다. 이중 장흥위씨가 400여년 거주해오면서 현재 35호이다. 함평노씨는 7호로 입향조의 10~11대손(相, 炳 항렬)이 살고 있으며, 후손은 440여년 이어져왔다. 그 밖에 밀양박씨, 김해김씨, 인천이씨, 압해정씨, 남평문씨, 은진송씨 등 여러 성씨가 거주하고 있다.

   
 

■ 옥산(玉山)마을 고려 때부터 인근 당동을 내당곡, 옥산을 외당곡 이라는 지명으로 불리었다. 문헌에 의한 외당곡의 대표적 입촌자는 1580년경, 관암(冠巖) 노 홍(魯 鴻 함평人 16세, 1561~1619)이다. 公은 종4품 수군만호와 훈련원부정 관직을 지내고 임진왜란 이치전투, 정유재란 당포해전 등 여러 전투에 참전해 功을 세웠다. 특히 1598년 정유재란 때 당포해전에서 큰 활약을 하였다.

   
 

조정에서는 1604년(선조 37) 공훈(功勳)을 기리는 당포 앞바다 승첩지도(세로 150cm, 가로 80cm)를 제작하여 선조(宣祖)가 참전 공신들에게 하사하였다. 1605년 선무원종2등공신에 훈록되고 타계 후 호조판서에 추증되었다. 1972년 1월 29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었다. 후손 노병천(27세, 1947년생)이 소장해오다가 현재는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公의 묘소는 용산면 월송리 산 114번지 제송마을 앞 야산에 위치하며, 매년 11월 첫째주 일요일 묘전에서 3位 시제를 모신다. 나주시 문평면 거평사(居平祠)에 배향되었다. 公은 함평군 학교에서 외당곡으로 입촌한 연유는 내당곡 출신 장흥위씨 관산 오덕파(五德派)의 장자로 군자감정(정3품 下)에 제수된 위덕홍(21세, 1537~ ?)의 차녀와 혼인하여 장흥위씨 집안과 유대하면서 가세(家勢)를 형성하였다.

장흥위문에서는 성균진사 위 곤(20세, 1515~1583)과 아들 청계(聽溪) 위덕의(21세, 1540~1613)는 내당곡에서 거주하였다. 이후 손자 국천(菊泉) 위정헌(22세, 1570~1643)이 1627년(丁卯) 내당곡에서 외당곡에 입촌하여 함평노씨와 장흥위씨의 세거촌이 형성되었다. 마을 뒤 금산(錦山 130m 가량)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고 그 안의 소쿠리 형국(形局)이다. 우측에는 나지막한 조산(朝山)이 마을을 보호하고 있다. 아침 햇살에 이슬 맺은 조산이 구슬처럼 빛나 보여서 옥산(玉山)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마을 뒤 금산(錦山)에는 국천(菊泉) 위정헌이 1627년 동강재(東岡齋)를 건축하여 여러번 중수를 거치면서 강학 장소로 사용되었다. 후손들은 학문을 익혀 조상을 숭상하는 전통적 유교문화를 중요시해왔다. 이곳은 중와(重窩) 위홍량(32세, 1881~1961) 선생이 후학을 양성한 장소였으나, 건물이 낡고 신학문 확산에 따라 선생이 타계한 후 1965년 파옥 철거되었다.

조산(朝山) 한쪽에는 옥암(玉岩) 위상언(26세 1687 ~1742)의 묘각 금선재(錦仙齋)가 위치했으나, 1990년경 청소년들의 불장난으로 인해 전소되었다. 묘소는 조산 자락에 위치하며, 매년 4월 첫째주 일요일 묘전에서 옥암공 등 이하의 선조 18位 시제를 모신다. 아우인 신재(愼齋) 위상경(26세, 1691~1753)은 인근 옥동마을로 분가 입촌하여 성촌되었다.

   
 

춘헌(春軒) 위계반(31세, 1848~1939) 선생과 아들 중와(重窩) 위홍량 선생은 학문이 뛰어나 후학을 강학하고 위선사(爲先事)에 앞장섰다.
 춘헌 선생은 1916년(丙辰) 장흥위씨 4차 병진보(丙辰譜), 중와 선생은 1957년(丁酉) 5차 정유보(丁酉譜) 편찬시 도유사를 맡아 주관하고 춘헌집과 중와유고 문집을 남겼다. 후손과 문하생들은 학덕을 기리기 위해 1984년(甲子) 옥산마을 입구에 유적비와 학행비를 삼가 세웠다. 현재 주민 45호 중, 장흥위씨 25호, 밀양박씨, 김해김씨, 남평문씨 등 기타의 성씨가 거주하고 있다.

■ 신촌(新村)마을은 1800년경 곡은(谷隱) 위도술(27세 1775~1837, 안항공 6대손)이 옥산에서 분가하여 밭 자락 평야지대에 새로운 마을이 조성되어 신촌이라 명명하였다.

   
 

이후 1810년경 함평노씨가 옥산에서 입촌한 후 20호 이상 거주하였다. 관산읍 옥당리 소재지에서 용전리 방향으로 가는 도로(칠관로)를 중심으로 좌측 금산(錦山) 아래와 마을 회관이 위치한 지역은 옥산(玉山), 우측 평야지대는 신촌(新村)에 해당된다. 장흥임씨, 김해김씨, 압해정씨, 은진송씨 등도 입촌하여 한때 50호 이상의 마을을 이루었다. 현재는 35호 중, 장흥위씨 10호, 함평노씨 7호 외 김해김씨, 압해정씨, 은진송씨 등 기타의 성씨가 거주하고 있다.

옥촌마을 태생 현대의 대표적 인물은 위동열(1923 ~20117, 의학박사), 위 흡(1930~2019, 임학박사 전북대학교 농대학장), 위성태(1940년생, 제38대 장흥향교 전교), 위일현(1941~1995, 마드리드 무역진흥공사 지사장), 위용복(1945년생, 서울시 양천구의회 초대 의장), 위계찬(1949년생, 초등학교장), 위계출(1950년생, 주가나 대사), 위성락 (1954년생, 주러시아 대사), 위효복(1952년생, 관산농협 조합장), 노경배(12대 종손 1959년생, 전남향군(주) 대표이사), 백형인(1959년생, 예비역 육군 대령), 위형량(1961년생, 순천지청 사무국장), 노효숙(1963년생, 국가직 1급 관리관), 위수미(1964년생,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장흥군협의회장),  정봉태(1971년생, 변호사), 노홍석(1980년생, 용인시 동백요양병원장)등 이다.

자문 : 아산(雅山) 위성태(1940년생, 제38대 장흥향교 전교), 노영일(前 중등학교 교사, 1946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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