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설이 뒤덮힌 세계의 고봉들을 누가 등반을 할까.
올려다 보면 까마득 하고 등성이마다 아찔한 위험이 도처에 산재해 있는 8,000m 안팎의 산봉우리들은 미지의 영역이다. 그 영역에는 사람들이 제법 수월하게 왕래할만한 길 따위는 애초에 없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래도 사람들은 고봉을 등반 한다. 성취와 명예를 위해서이다. 전문적인 등반가들이 길을 만들고 개척하여 정상을 정복하는 것은 평생의 꿈으로 사람들을 충동질 한다. 이렇듯 고봉을 등반하기 위한 과정에 없어서는 안될 사람들이 있다. 소위 ‘세르파’라고 하는 현지 안내인들이다.

1953년 5월29일 세계의 최고봉이라고 일컫는 에베레스트 정상을 최초로 등반한 사람은 뉴질랜드인 ‘에드먼드 힐러리’였다. 위대한 등반가로 회자되는 힐러리의 등반을 안내한 세르파는 ‘텐징 노르가이’라는 현지인이었다. 힐러리의 최고봉 등반은 등산의 역사에서 세르파의 존재가 확인되고 그들의 역할에 대한 관심과 조명이 고조 되었다.
‘패스 브레이킹(Path Breaking)이란 합성 단어가 있다.
패스((Path 사람들이 지나 다녀 생긴 작은 길) 이란 뜻과 브레이킹( Breaking 깨뜨리다)의 합성어로 그 뜻은 기존의 틀을 따르지 않고 남들이 생각도 하지 않고 가지도 않은 새로운 길을 개설하는 개척자를 비유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이 합성어는 위의 글에서 인용된 텐징 노르가이 같은 세르파들이 없는 길을 만들어 내고 길이 될만한 지형을 찾아 내어 드디어는 정상에 이르게 하는 개척과 인내와 고행의 역할을 감당 하는 ‘세르파’에게서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에베레스트 같은 미지의 고산高山  만년설이 뒤덮인 극한의 수천 미터 높이의 고산을 등반 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강인한 등반가라 할지라도 세르파의 조력이 없이는 불가능 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알려진 것은 이윽한 후의 일이었다.  최고봉의 정상을  등반한 명예는 등반가의 것으로 알려 지고 있으며 등반의 과정에서 ‘패스 브레이킹’ 의 숨은 능력을 발휘하여 미지의 길을 찾고 안내하여 드디어는 정상을 정복하는 명예와 찬사에 세프파의 존재는 거론되지 않았다. 세계의 유명 등반가들의 성공적인 고봉 정상의 정복 그 뒤에는 세르파와 존재와 패스브레이킹의 ‘길찾기와 길 만들기’의 사실을 우리는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르파들은 기존의 틀을 과감하게 극복하여 보다 능률적인 등반로를 개척하는 지혜를 발휘 하였다. 그래야 자신들을 고용한 등반가들이 성공적으로 정상을 등반 할 수 있다는 당연한 의무감이었을 것이다. 등반가와 세르파간의 계약에 혹은 ‘성공 보수’가 포함 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수가 없다. 어쩌면 정상의 정복에 관한 이면의 계약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계약은 양측이 필요한 조건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흥군청의 공직자들이 어떤 정책의 기획에 기존의 관념을 깨뜨리고 개척하는 성공적인 사례도 있을 것이다.
현장 행정의 수십년간 경험과 민의가 반영된 그래서 혹은 획기적이라고 인정 할 수 있는 정책의 성공담은 많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간 공직에 종사하였던 선후배의 지인들이 정년을 한 후에 회고담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흘리면서 그 행간에 특정한 사안을 거론하는 경우가 있었다. 군정의 한 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고 이제는 보편화 되어 있는 사안이 자신과 자신의 팀이 열성적으로 추진하여 그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사실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회고에 얹혀진 성공담이 허언이거나 과장은 아닐것으로 여겨 진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가 구체적으로 기록되고 전해 진다면 그들의 성공적인 행정 수행은 귀감이 되고 예화가 되면서 후배들에게 이어지고 도전하고 개척하는 행정 풍토의 조성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직자들의 직무 수행을 공복公僕이라는 카테고리에 국한 하지 않고 패스 브레이킹의 철학이 칭찬과 박수를 받고 더불어 합당한 성공 보수가 보장 된다면 발전과 희망의 미래를 기약하는 진입로의 청신호가 되지 않을까.

저작권자 © 장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