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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동마을 공예태후 탄향지와 오덕 생가 사연, 효자송문화탐방/栢江 위성록 이야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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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11  10: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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栢江 위성록/장흥위씨 씨족문화연구위원

남도(南道)의 영산(靈山) 천관산(723m) 동맥 끝자락 장천동 계곡 기슭에 자리한 당동마을은 고려조 1040년 장흥임씨 시조 임 호(任 顥)가 송나라의 혼란한 난을 피해 고려에 들어와 개척한 터로 잡아 성촌되어 오늘에 이른다.

   
 

고려와 조선시대에서는 마을 이름을 당곡(唐谷)으로 불리다가 정월 대보름날 무병장수와 풍년을 기원하는 마을 제사를 지내면서부터 마을 이름을 당동(堂洞)으로 칭하였다고 전한다. 경계지역인 옥동마을 밭자락에 1974년 관산고등학교가 개교한 후 인근 밭자락에 현대식 주택단지 당월마을이 조성되었다. 이곳까지 포함하여 옥당5구 당동마을이며 50여호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성씨로는 장흥위씨 15호, 수원백씨 7호, 압해정씨 3호 외 기타 성씨들이 거주하고 있다. 배산(背山) 천관산을 중심으로 우측은 방촌리, 좌측은 옥당3구 옥산마을, 앞쪽은 옥당2구 옥동마을과 각각 경계된다.

관산읍 옥당리 당동길 36-1 송곡(松谷) 위경량 가옥은 당동마을 깊숙한 안쪽에 위치하면서 유서 깊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 장흥임씨 사부자 평장사 출생지
문하시랑 동중서 문하평장사 정경공 임의(任 懿), 중서시랑 동중서 문하평장사 문숙공 임원숙(任元淑), 문하시중 문충공 임원후(任元厚), 중서시랑 동중서 문하평장사 문헌공 임원준(任元濬)의 출생지로 추정된다.

● 고려 인종왕비 공예태후 임씨 탄생지
공예태후 임씨(1109~1183)는 고려 17대 인종왕비로 문하시중문충공 임원후(任元厚)의 따님이요, 정경공 임의(任 懿)의 손녀로 이곳에서 탄생이 추정된다. 1126년(인종4년)에 왕비로 책봉 된 후 18대 의종, 19대 명종, 20대 신종 3왕의 어머니이다. 당시 장흥은 정안현으로 영암군에 소속되었는데 인종 때에 공예태후의 탄향이라 하여 장흥으로 사명(賜名)하고 부(府)로 승격시켰다. 지금의 장흥군은 공예태후에 연유한 것이다.

   
 

● 임란공신 위씨 오덕(五德) 출생지
성균 진사 당곡(唐谷) 위 곤(魏 鯤)의 오자(五子) 판사공 위덕홍(魏德弘) 군자감정, 청계공 위덕의(魏德毅) 병조참의 죽천사 배향, 운암공 위덕관(魏德寬) 부호군, 호조판서공 위덕화(魏德和) 죽천사 배향, 안항공 위덕후(魏德厚) 제용감판관 등 오덕(五德)의 출생지이자 장흥위씨 관산파의 성지(聖地)가 된다.

● 독립지사 덕암(德菴) 위석규(魏錫奎) 출생지
선생은 1883년 이곳에서 출생한 후 1906년 을사늑약으로 국외로 망명하여 중국, 러시아 등지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하다가 1913년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1987년 건국훈장애족장(제1668호)을 서훈하였고, 장흥군 주간으로 천관산 장천동 입구에 의열비를 세웠다.

● 성균관 고문 의재(毅齋) 위석한(魏錫漢) 출생지
선생은 제8대 장흥향교 전교, 성균관 고문, 유도회 총본부 고문을 역임하여 유도진흥에 공헌하였다. 오덕생가 터 회복과 1964년 존재(存齋) 위백규 선생을 곡성군 영귀서원(詠歸書院)에 1974년 청계(聽溪) 위덕의 선생을 광주시 황산사(黃山祠)에 배향케 하는 등 숭조돈목(崇祖敦睦)에 기여했다.

장흥임씨 대종회, 장흥위씨 기묘보, 수원백씨로 제주목 판관을 지낸 백기호(白基虎 1823~1891)의 후손 소장 족보 등 자료를 참고하면 이 터의 최초 주인은 고려 때 장흥임씨의 시조 임 호(任 顥)로 추정된다. 1040년경 이곳에 터를 잡아 임씨들의 발상지이며, 17대 인종왕비인 공예태후의 탄향지로 정확한 연혁(沿革)은 알 수 없으나 장흥임씨들은 고려가 폐망하기 前인 1300중반 년까지 300여년 정도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집터의 두번째 주인은 탐진최씨로 1300중반 년부터 조선초 1500년까지 150여년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번째 주인은 장흥위씨다. 1500년경 최수동(崔壽東)의 사위인 강릉참봉 위진현(1483~1564)이 정착한 후 아들 성균 진사 당곡위 곤(1515~1582)이 이곳에서 아들 덕홍(德弘 1537~?), 덕의(1540~1613), 덕관(1547~1628), 덕화(1551~1598), 덕후(1556~1615) 등 5형제를 낳아 가문(家門)이 중흥(中興)하였다. 그 후 청계 위덕의의 아들 성균 진사 국천(菊泉) 정헌(1570 ~1643)이 1630여년까지 거주하다가 이후 거소를 인근 옥산으로 옮겼다. 장흥위씨는 이곳에서 130여년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네번째 주인은 1630~1790년까지 어느 성씨가 거주하였는지 알 수 없다. 160여년 가량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섯번째 주인은 장흥위씨다. 관암(冠菴) 위상정(1732~1799)의 차자(次子) 위도방(1773~1831)이 1790년경 거주하여 후손들이 1916년까지 126여년 동안 거주하다가 관산읍 성산리 성자동으로 잠시 거소를 옮겼다.

여섯번째 주인은 수원백씨(백우인의 딸 몽임)가 1916~1950년간 34년 거주하였다.

일곱번째 주인은 장흥위씨다. 성산리 성자동에서 20여년을 거주하던 의재(毅齋) 위석한(1900~1982) 선생은 광복 후 1946년 현 당동마을 효자송 주변 새터로 이사와 거주하면서 지난날 선조님들과 자신이 어린시절에 거주했었던 오덕 생가를 매입할 기회를 보다가 1950년 백우인의 딸 백몽임으로부터 매입하였다. 현재 의재 선생의 후손 소유로 사손(嗣孫) 경량이 거주하고 있다.

   
 

추원각(追遠閣)은 제례문화 변화에 맞춰 2013(癸巳)년에 덕운(위황량), 송곡(위경량)등 후손의 주도로 건립하였다. 주벽 초헌(樵軒) 위윤조(1841~1916) 등 39位 신위(神位)를 봉안(奉安)하고 매년 4월 둘째 주 토요일에 제향한다.

   
 

2016년 새봄 덕운(德雲) 위황량은 출입 대문에 앙지문(仰址門 우러러보는 터)이라 써 현판을 걸었다.

   
 

방촌리 출신 호곡(壺谷) 위일환(1910~1977) 선생은  집 앞 개천 바위에 "唐谷進士魏公遺庄"이라 새겨 남겼다.

장흥임씨 대종회에서는 오덕(五德) 생가를 수회 자신들에게 되팔라고 하였다. 그러나 의재 선생 후손들은 천신만고 끝에 되찾은 집을 다시 팔수는 없었다고 한다. 임씨들은 1040년 시조 임호(任顥)가 송나라 정세가 혼란하여 난을 피해 고려에 들어와 개척한 터이자, 공예태후가 태어났던 곳으로 추정되는 집을 되찾지 못해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당동마을 입구의 부지를 매입해 1998년 성지(聖地)정안사(定安祠)를 창건하였다. 지금의 위경량 가옥은 장흥임씨, 장흥위씨의 선대 얼이 전해 내려 오고 있어 후손 모두가 우러러보는 유서 깊은 소중한 터이다.

효자송은 장흥군 관산읍 옥당리 166-1번지에 효자송이 위치한다. 나무 높이 9m, 흉고둘레 4.10m, 가지 길이 10m, 수령 170년 가량으로 1988년 4월 30일 천연기념물 제356호로 지정되었다.

   
 

나무의 유래는 당동마을에 거주한 위윤조(1841~ 1916), 백기충, 정창계 3분은 소년시절 밭농사를 많이 지은 어머님들의 휴식장소로 하기 위해서 나무를 심어다고 한다. 위윤조는 소나무를 심고, 백기충은 감나무를 심었으며, 정창계는 멀구슬나무(고련자)를 심었다는 설이 傳해오고 있다. 감나무는 효자송 기세에 짓눌려 소나무 아래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멀구슬나무는 목질이 강인하지 못해 폭풍우에 견디지 못하고 절단 도괴(倒壞)를 반복하다가 봄이면 새순이 나왔으나 2010년경 완전히 소멸되었다. 효자송 소나무는 하단부 가지가 비스듬히 뻗었고 우산형으로 수세(樹勢)가 왕성하게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쉼터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1985년 옆으로 뻗은 가지가 찢어진 것을 장흥위씨 청계공파 초헌종중(관리자 : 위경량)에서 돌기둥으로 받쳐 세워 현상을 유지하고 있다. 천관산 도립공원을 찾아 장천동 계곡으로 들어가는 입로에 天下一松 孝子松의 자태에 모두가 한결같이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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