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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廣州)이씨 십운과공파, 그 사위들예강칼럼(78)/박형상/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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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12  10: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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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초에 정착한 장흥의 낙남(落南) 토성이었음에도 그간 잊혀져왔다. 보성 쪽 '광주(廣州)이씨 둔촌공파(派)'보다 먼저 장흥 쪽에 '둔촌공 이집'의 동생 '십운과공'의 자손들, '廣州이씨 십운과공派'가 이미 있었다.
남효온(1454~1492)의 <조대기>에 나온 '이침(李琛)', 신잠(1491~1554)의  <관산록>에 나온 '李참봉'이 십운과공派에 해당한다. '십운과공派' 내력은 <廣州이씨 갑진보(1724)>에서 확인된다. <갑진보> 부록에 <둔촌형제 자손보, 찰방공 자손보>가 들어 있다. (그 '찰방공 비(庇)'의 동생이라는 '수(遂)' 집안은 <갑진보>에 없다.) 오늘은 "찰방공 庇" 집안이야기에 한정한다.  선초 '장흥에 유배온 입향조로 전해지는 이두신(李斗信)'이 있고, 그 아들로 '찰방공 이비(庇)'가 있었다. '李庇'의 자식들로, "숙(叔)자 4형제(숙경,숙강,숙정,숙명)"가 있는데, 그 혼맥을 보면 조선 초,중기로 넘어가는 장흥 향촌인맥을 가늠할 수 있다. 대표 사례로 찰방공 李庇의 "둘째 이숙강"은 영광金씨 김필(1426~1470)을 사위로 맞이한다.

김필 집안의 낙남(落南)에는 廣州이씨 처가집 인연도 있는 것이니, '김필, 김괴' 부자는 서울 거주자로 문과 급제를 했음에도 그 집안이 내려왔던 것. '둘째 李숙강'의 아들 李발동(군수), 첫 손자 李맹균(1495년진사)의 후손으로, 1519년 문과급제자 ‘이지분(李之분,1487~1542)’이 있다. 李지분의 사위되는 죽산安씨 '안정(安艇)'은 세칭 '삼안현감 安범(1460~1523)'의 손자요, 1522년 문과 갑과급제자 安수잠(1486~?)의 아들이다. 安艇의 아들은 '동애 安중묵(1556~1607)'으로 장흥 남산 봉명대에서 소요했고, 安艇의 손자는 1613년 진사 '남파 安유신(1580~1657)'으로 용산 포곡에 묻혔다. 李지분의 다른 사위 수원白씨 '백호'는 정해군 백수장(1469~1543)의 손자이다. 그 '둘째 李숙강'- 이발동을 잇는, 둘째 손자 李중균 사위는 1534년 문과급제자 광산金씨 '김협(金浹)'이고, 그 金浹의 사위가 바로 1555년 진사 '괴봉 위대용(1530~1610)'으로 장흥 행원리 입향조이다. 기왕에 그 시절 혼맥관계를 살펴보면, 위대용의 아들 '위홍주'는 1568년 진사 '죽천 박광전'의 문인으로 그 사위가 되었다가, 상처(喪妻) 이후에 나주나씨 나사침(1555년,생원)의 사위가 된다.
金浹의 손자 김헌(金憲,1561~1592)은 1570년 문과급제자 '丁경달(1542~1602)'의 사위가 된다. 金憲의 사위는 1621년 알성시 갑과장원 보성宣씨 ‘선세휘(1582~1638)’이다. 이제 다시 廣州이씨 '참봉 이지번(李之蕃)'을 본다. 그 ‘李숙강-이발동’을 잇는 이중균(이맹균의 동생)의 큰 아들이 바로 "덕릉참봉으로 알려진 李지번"으로, 당시 장흥의 廣州이씨 기둥이라 할만 했다. '신잠'의 <관산록>에 나온 '李참봉'으로 짐작되는, 그 “李지번”의 사위들 면면이 나름 쟁쟁했다. 첫사위는 청풍金씨 김준의(金遵義)로, 부친 金세걸(1474~1543)은 김필의 아들 ‘김괴(1450~1482’)의 사위이고, 그 ‘김괴’의 아들이 바로 '월봉 김광원(1478~1550)'이다. 李지번의 둘째사위는 보성宣씨 선중륜(1537년, 무과장원)으로,1513년 생원 선우빈의 둘째아들이고, '기봉 백광홍(1522~1556)'의 사돈되는 선대륜의 동생이다.('선대륜-선봉장'을 잇는 아들들이, 즉 백광홍의 외손자들이 '世'자 형제들 '선세기,선세강,선세휘'이다.) 李지번의 세째사위는 장흥위씨 '당곡진사 위곤'(1515~1582)으로 백광홍과 1549년 사마시동방으로, 그 다섯 아들이 위씨집안을 크게 이룬, '德'자 五德형제들이다. 참봉 李지번의 '큰아들 李경춘'의 사위가 남평文씨 '문위세(1534~1600)'로 1567년 진사이며, 그 ‘文위세’의 자형(姉兄)이 바로 진원朴씨 '죽천 박광전(1526~1597)이다.(그는 처남 문위세와 함께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도산서원을 출입하였고, '광해군 사부, 임란의병장, 시호 문강공'이다. '청주金씨 동백정'의 첫 기문을 썼다.) 다시 廣州이씨 이야기로 돌아가, 위 李경춘의 아들 ‘李홍정’은 수원백씨 '백호'의 사위가 된다. 李경춘의 둘째사위 廣州안씨 '안담(安曇,1504~1564, 참봉)'의 세거지는 충남 당진이었다.
李지번의 둘째아들 '이만춘(李萬春,1530~?,생원)'은 '백광훈(1537~1582,진사)'과 1564년 사마시동년이다. 앞으로 돌아가, 李중균의 '둘째아들 이지운(李之芸)'은 1519년 무과급제자로, 그 사위가 하동鄭氏 현감 정강옥이고, 정강옥의 사위가 옥봉 백광훈이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찰방공 李비(庇)의 “4叔아들” 중에 "세째 李숙정"의 사위가 생원 정세(鄭稅)이고, 그 외손녀 사위가 '눌재 박상(朴詳,1474~1530)'이다. "첫째 李숙경"의 아들 이침(李琛) 묘소는 장동 북자리 북교에, "둘째 李숙강"의 아들 이발동(李發東)과 일부 후손들은 용산 포곡 억불산록에 모셔져 있다. 이런 혼맥 관계로 확인되듯, 조선 중기로 넘어가는 그 시절 장흥의 廣州이씨십운과공派 위상은 상당했을 것. '부서방 송호'와 '부동방 천곡' 등에서, 특히 '4숙(叔)' 중에 “둘째 李숙강”의 라인, 즉 이발동,이중균,이지번,이경춘,이홍정,이요흠,이시망,이송룡,이만원' 등이 장흥 땅을 지켜왔다. 안타깝게도 후대에 십운과공派 집안은 별다른 급제자 관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李홍정,李요흠'은 수원白씨의 사위가 되며, '李준망,李송무,李송룡'은 장흥선비들 문집과 문인록에 그 이름이 나온다. 마침 장흥위씨 '위산보,위정보' 묘소가 용산 포곡에 있음은 廣州이씨 李송룡이 ‘위정보’의 사위라는 인연도 있었을 것. 또한 李지번의 6대손 '이만원(李萬元,1671~1733)'이 장흥 府西坊 송호(松湖)에 있던 '청은정(淸隱亭)'에서 '은거한 사실이 <장흥읍지 정묘지>에 나온다. 덧붙이면, '廣州이씨, 영광金씨, 청풍金씨' 간에는 상호친화적 혼맥관계가 유지된 듯 하다. 예컨대 '廣州人 언보 이준망(李俊望)'의 처남은 '청풍인, 감호 김정화(1639년 진사)'이고. 그 외손자는 '영광인, 천곡 김급(1682년 진사,1711년 대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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