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부모는 000을 강요한다.’ 
 

몇 년 전 A시에서 강의 중에 만난, 한 젊은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그 분은 대한민국의 유수 명문대를 졸업하고 약사로 일하면서 5살짜리 딸 아이를 키우는 젊고 유능한 엄마였습니다. 

시종일관 현숙하고 침착해 보이던 그가 두 번째 강의를 듣던 중 어느 순간,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쉽게 멈추지 않는 울음을 울먹이며 그가 한 말은 이랬습니다. 자신에게는 공부가, 평생 자신을 지탱해준 신이자 병적인 집착의 대상이었다구요. 오늘 이제서야 그 것을 알아차렸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가난한 농촌의 식구 많은 집에서 태어나 너무나 방치된 환경에서 자라났습니다. 대식구였지만 먹고살기에 바빠 아무도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이 없는 서러운 환경 속에서, 어떻게든 부모의 관심을 끌고 사랑받는 존재로 살아남기 위해 찾아낸 방편이 바로 ‘공부’였습니다. 이를 악물고 마치 목숨과 바꾸기라도 할 것처럼 악착같이 공부를 붙들고  늘어졌고, 그렇게 해서 좋은 성적표를 받아오면 그제서야 비로서 자기 존재를 아주 잠깐이라도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공부가  버팀목이자 유일한 친구가 되고 부모가 되고 자기 자신이 되더니, 나중에는 신이 되더랍니다. 오로지 공부 하나에 핏발 선 눈이 되어 필사적으로 살아왔고 그렇게 해서 명문대에 들어갔고, 남편도 명문대 출신만을 고집해 그렇게 결혼했답니다.

그런데..엄마가된 오늘, 자기가 발견한 것은 5살짜리 딸 아이에게 미친 듯이 공부를 강요하며 학대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라면서 아프게, 아프게 오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5살이 된 아이에게 초등학생이 배우는 국어와 수학 선행학습을 시키면서 조금만 모르면 불같이 화를 내고, 하나라도 틀리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참지 못하고 길길이 날 뛰는데 어느 날엔가는 아이를 때리려고 들고 있던 후라이팬을 높이 쳐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후라이팬을 떨어뜨리고 스스로도  망연자실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답니다. 내가 미친 것이 아닌가하면서요 ..그 엄마가 말했습니다. 이제야, 이제야 알겠다고, 자신이 왜 그렇게 아이에게 그토록 미친듯이 공부를 강요했는지 알겠다며, 그동안 너무나 힘들었을 아이 생각에 아주 오래도록 흐느껴 울었습니다.

공부가 유일한 삶의 방편이자 존재감을 인정받을 수 있게 해준 생명줄이었던 그 엄마는 내 자식도 공부가 아니면 죽을 것 같은, 세상으로부터 버려질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에  그 어린 아이에게 공부를 그토록 강요했던 겁니다...제가 알고있는 어떤 아버지는 조실부모하고 혼자서 억척같이 자수성가한 사람인데, 세상은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굳게 믿어온 탓에 아이들을 강하게 키운다고 추운 겨울 한밤중에도 불러내어 눈속에 세워놓고 기합을 주곤 했습니다. 그 것이 상처가 되어 아이들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장성해서도 지우지 못했구요.
이제 아시겠나요? 부모의 상처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의 삶속에서 교묘하게 행복을 갉아 먹는지..어쩌면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부모는 부모자신의 상처부터 보아야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불안한 부모는 000을 강요한다.’는 말의 000에는 어떤 것들이 해당될까요? 불안한 부모는 자신의 불안을 잊기 위해 찾아낸 신봉 대상-즉 일, 공부, 종교, 운동, 악기, 먹는 것 등등을 자식에게 강요합니다. 그 것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 믿음은 여러분 안의 상처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그리고 그 상처의 치유와 성장을 위해 여러분은 오늘, 어떤 배움의 장소로, 어떤 치유의 장소로 나아가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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