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가自悔歌는 존재 위백규(存齊 魏伯珪  1727-1798)의 가사문학 작품이다.
17세기 장흥의 실학과 학문과 문학의 지평을 열었던 존재공은 가히 천재적인 학자이며 문인이였다, 존재공의 실학적 업적은 근간에 들어 조명받고 연구되고 있지만 그이의 문학 작품 또한 수작이었다. ‘농가’와 ‘농가라’로 이어 지는 시편들은 사실적이고 서정적인 문학성으로 회자되고 있다.

필자는 존재공의 작품 중에서 특히 ‘자회가’를 좋아한다. 252행에 이르는 작품으로  중편시의 분량인 이 시편은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는 과정과 희한을 너무나 사실적이고 감성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읽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게 한다.

-아비는 하늘 되고/어미는 땅이 되사/피 살을 나누어/ 이 몸이 생겼으니/~로 시작하여 부모가 자식을 낳고 한없이 기뻐하며 세상의 모든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양육하는 애정이 절절이 묻어 나고 있다.
-아들이라 기쁘신가/무슨 일을 보시려고/마른 자리 나를 주고/젖은 자리 찾아 가며/나쁜 밥은 덜어 내고/오는 잠을 놀라 깨며/배고픈가 젖을 주고/추울런가 품에 안아/~ 그렇게 금이런가 옥이런가 길러낸 자식들이 성장하여 성인이 되고 혼인을 하고 자식을 낳자 그때부터는 부모의 존재를 뒷방 늙은이로 대접하게 된다.
늙은 부모들은 젊은 자식과 손자들에게 소외되어 희한과 외로움의 노년을 보내야 하는 정황은 어찌 그 시대만의 이야기일까.
옛날도 저 옛날이었던 17세기의 시대에 존재공이 가사문학으로 창작하였던 자회가는 아마도 이웃 이웃들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위 핵가족으로 변화하는 세태 속에서 “가족”이라는 참으로 소중하고 아름답던 공동체가 붕괴되는 사연들을 수없이 접하게 된다.


젊은 부모와 유년의 자녀들이 함께 살던 시점에서는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가족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부모들이 지극 정성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저 고귀한 삶을 결코 배반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보모의 사랑을 어찌 잊을 것인가. 이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고 그래서 성공하여 효성을 다할 것이다. 부대끼며 챙기며 우애를 나누는 형제자매들과의 이 애틋한 사랑은 어느 때가 되어도 소중하게 간직될 것이다.
이러한 초심들은 사는 형편이 변화하고 세상의 이해타산에 밀리면서 변화하게 된다. 그 변화의 이야기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했을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존재가 “가족”이라고 이야기들을 한다. 가족을 생각하면서 역경을 이겨 내었고 가족이 있어서 슬픔을 극복하였고 가족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고통속에서 헤어 나왔다는 이야기들이 애틋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피와 뼈를 나눈 가족이라도 매냥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혹은 지금 가족의 누군가에게 서운함과 배신감을 안고 있다면 감정의 기복을 조절 하여 아름다웠던 때를 회상해 보자. 그리고 이 아쉬운 감정이 주체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때 누구에게 의지하고 위로 받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가족... 그 공동체는 우여곡절의 종착역일 것이다.
가족은 건강한 사회를 지탱하는 최소이면서도 가장 확실한 믿음의 공동체인 것이다.
오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지칭한다.


이 오월에 우리 모두가 가족의 존재를 다시 한번 음미하면서 아름답고 행복한 일상을 회복 하자. 우리의 선인 존재공이 자회가에서 표현하였던 가족간의 윤회가 절실한 교훈으로 다가 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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