貧女吟(빈여음)[3]/허난설헌
밤새워 쉬지 않고 베를 짜며 살아가는
베틀 소리 삐걱 삐걱 처량하게 울리고
베틀에 짜진 한필이 누구 옷감 이던가.
夜久織未休    ??鳴寒機
야구직미휴    알알명한기
機中一匹練    終作阿誰衣
기중일필련    종작아수의

조선 여인들이 했던 주된 일은 길쌈을 하는 일이었다. 사대부 여인들은 식속을 거느리는 일이 주된 일이었지만 평민부인들은 대체적으로 무명베, 명주베, 삼베 등 사계절에 따라서 바꾸어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봉제(縫製)의 일이 거의 전부였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돈을 벌기 위해 부잣집 처자의 시집갈 옷을 만들기도 하는 일을 밤새워 했다. 베틀에는 옷 베가 한 필이나 짜져 있건만 / 이 옷 베가 누구의 옷감이 되려는지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이 옷 베는 누구의 옷감이 되려는 것인지(貧女吟)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배율 셋째수다. 작가는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으로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이다. 당대 문벌가에서 자란 그는 재주가 뛰어나고 용모가 출중하였으며 시문에도 능해 나이 8세에 저 유명한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지어 여신동(女神童)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전한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밤 늦도록 쉬지 않고 베를 짜며 사는데 / 베틀 소리만 삐걱삐걱 처량하게 울리구나 // 베틀에는 옷 베가 한 필이나 짜져 있건만 / 이 옷 베가 누구의 옷감이 되려는지]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가난한 여인의 노래3]로 번역된다. 조선 전기도 마찬가지였지만, 임진 병자 양란이 지나고 난 삶은 더 어려웠다. 문화적으로는 더 나아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적인 병리 현상은 더욱 심했다. 시인은 임진왜란 이전에 살았지만, 이런 아픔을 더 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시인은 이런 시대적인 상황에서 처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남의 길삼을 해 주는 일이 전부였음이 시상 속에 폭신하게 녹아 있다. 그래서 밤 늦도록 쉬지 않고 베를 짜며 살아가고 있는데, 베틀 소리만 삐걱삐걱 처량하게 울리구나 라고 했다. 시인의 한숨 소리와 삐걱거리는 베틀 소리가 서로 어울려 가난의 아픔을 더했을 지도 모른다.

화자의 후정은 차곡차곡 짜져가는 옷 베를 보면서 누구네 처자의 집으로 갈 것인가를 되묻게 된다. 그리고 한탄한다. 베틀에는 옷 베가 한 필이나 잘 짜져가고 있건만, 이 옷 베가 누구네 처자의 옷감이 되려는지 모르겠다는 다소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옷베의 주인을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그 신랑감은 누구네 양반대 도령이 되어 오붓한 부부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될 수 있어 보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밤늦도록 배만 짜니 베틀 소리 처량쿠나, 베틀 옷베 한 필이나 누구 옷감 되려는지’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夜久: 밤이 늦도록. 織: 베를 짜다. 未休: 쉬지 않는다. ??: (?-칠 알. 가볍게 두드리는 행위인 의성어) 삐걱삐걱. 鳴: 울다. 寒機: 베틀 소리가 처량하다. // 機中: 베틀 가운데. 一匹: 한 필. 練: 누인 명주. 終: 결국에는. 作阿: ~이 되다. 직역하면 ‘언덕을 짓다’로 ‘소유’가 되다. 誰衣: 누구의 옷.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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