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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의 역사~ 이순신 조선수군재건로 현장답사를 다녀와서(2)▲다존 위 성/관산읍
관리자  |  ch23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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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25  10: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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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의 장흥
위와 같이 지금이야 장흥지역 내에서 여러 사료를 많이 찾아내어 확인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대충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사이에 일어난 구전(口傳)된 이야기로 범벅되고 말아 그냥 ‘임진난 무렵’이라고 퉁치고 지나갔었다. 반성되는 부분이다. 사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세월이 바뀌고 다른 외지인들이 들어와 거주하게 된데서, 장흥 회령포진에서 정유재란 때 삼도수군통제사의 취임식이 있었다는 사실 마저도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럼에도 임진난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소재(素材)가 여전히 전승되고 있다, “천관산에서 소나무를 베어 전선을 수선하고 판옥선을 만들고 귀선(거북선)으로 고쳤다”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장흥군청 문병길 면장은 아예 “장흥군 회진면 덕산리 답1번지가 선소이고, 정유재란에 판옥선을 전부 귀선으로 제작하였다”고 기고하고, 강의도 한다.
그러나 장흥군 회진면 덕산리 답1번지는 존재하지도 않으며, 회진면 덕산리 1번지는 덕산리 산속이다. 산속 선소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일이다.) 이순신 장군은 정유년 8월18일 회령진에 도착해 이것저것 점검 지시하며 판옥선의 갑판이 깨진 것도 수리하라고 이르고(이충무공 행록: 이분) 그동안 있었던 일을 보고 받고 조사 지휘하였을 것이다.
다음날 19일에는 유지(諭旨)와 대장기에 숙배하게 하여 군기를 확립했는데, 이 자리에 배설이 뱃멀미를 핑계로 나오지 않아 그의 속리 이방을 잡아다 곤장 20대를 쳐서 엄하게 다스린다. 그리고 하룻밤 더 머무르고 20일에 회령진이 좁아 불편하다는 이유로 영암군 이진(梨津: 지금은 해남군: 전남도 지정문화재)으로 옮겨 간다. 이것이 <난중일기>와 <행록>의 전부다. 필자 생각으론 천관산에서 나무를 배어 거북선으로 건조 또는 개조할 시간과 판옥선을 건조할 여건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또 이수경 선생은 “이충무공이 명랑해전을 보성 열선루 시점부터 기획했다”고 주장했다. 기가 막힌다. 전선 몇 척을 수습할지도 모르고 어떻게 싸움이 전개될지도 모를 한 달 후의 일을 미루어 알고 있다고 마치 직접 본 것처럼 말한다. 이 구상을 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시간은 정유년 9월16일에 이르기 까지 거의 한달 동안 강진, 완도, 해남과 진도, 목포 안쪽바다에 머물며 배를 수습 수선하고 어떻게 적을 막을 것인가? 궁리함과 동시에 선조의 수군폐지론과 맞서 각고의 시간을 거치는 과정 중에 최종적으로 결정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뼈에 살을 너무 많이 부치면 본질에서 벗어나게 되어있다. 충실한 자료에 입각할 때라야 그 결전장소 선택시점을 합당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 너무 의욕이 넘치면 선과 도를 넘기 십상인데, 역사적 객관성여부에 대한 냉정한 고찰이 필요한 때이다.

●글을 마치며
물론 이 글과 자료가 전부는 아니다. 연구자마다 관점이 다르고 생각이 달라 이 글도 부족한 점이 있고, 공격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안다.
지금 장흥군에서는 확실하고 검증된 자료를 중심으로 그 생각과 관점이 다른 사람들이 한 자리에서 토론하거나 발표를 하여 장흥군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에 대해 하나의 객관적 선(線)을 제시하여야 한다. 하나의 기준과 선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자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터무니없는 수준의, 날조 왜곡 주장은 아예 차단하자는 것이다. 물론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도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
일이 잘못 처리되면, 정당한 자긍심도 찾을 수 있는 역사현장의 문화적 복원이나 행사내용이 서로의 공격대상이 되고 정치적 다툼의 장(場)이 되어 지역과 사람이 서로 부딪치고 말아 우리가 계속 지키고 살아야 하는 장흥 땅의 명예가 실추되고 말 위험성도 크다.
그래서 역사는 팩트(fact)에 기초하여야 하고 객관적 사료와 사실로 증명되어야 제 구실을 한다. 역사는 스토리텔링 창착이 아니다. 원사료, 1차사료 원전확인과 역사적 현장의 현지확인에 소홀한 노기욱 이수경 선생의 각성을 촉구하며, 아울러 장흥군수님, 전남도 도의원, 장흥군 군의원의 각별한 관심을 촉구한다.

〈참고문헌〉
 ▲ 난중일기(이순신), 이충무공전서(이은상 번역본)▲장흥읍지,  정묘지(1747,장흥향교), 장흥지(1940,장흥향교)▲이병혁, 장흥도호부 수군만호진 회령포 연구, 정유년 여름의 기억▲박형상, “단치도 회령포” 등 장흥신문 기고문▲장흥부지도(1872년: 규장각 소장)▲기타 원전 재인용 -백사집(이항복),백호집(윤휴),은봉전서(안방준),징비록(유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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